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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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19

2025-12
#아이들이자라는순간 #봄내를품다
아이들이 자라는 순간 12
떨림도 리듬이 된다면
김병현 선생님이 전하는 학교 이야기

 


“우리 강원 학생 공연에 나갈 거야. 준비하자!”

춘천에서 열리는 강원 학생 락 페스티벌에 참가할 거라는 말에 아이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정말요? 아, 너무 떨리는데.”

“아, 쌤! 우리 아직 그 정도 실력 안 돼요~.”

작년 공문을 찾아 미리 양식을 작성해 두고 올해 안내가 오자마자 잽싸게 신청했다. 선착순으로 10개 학교만 모집하기에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우리 학교 밴드부는 1학년 8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입에 도움 되지 않는 동아리는 살아남기 힘든 현실에서 해체의 위기도 있었지만 그래도 아이들의 열정 덕분에 살아남았다.


아주 오래전 내가 신규로 이 학교에 발령받았을 때, 밴드부 ‘이매진’을 만들었다. 젊은 우리는 날이 좋으면 벤치에 앉아 벚꽃엔딩을 부르고 악기를 두드렸다. 그 아이들 중 몇은 지금도 음악을 하고 있다.

10년 만에 돌아온 학교에 이매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밴드의 참맛을 알려주고 싶어 다시 아이들을 모았다. 좋아하는 노래를 정해 악기를 연습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의 소리를 들어가며 뚱땅뚱땅 맞춰가는 과정은 어떤 수업 못지않게 교육적이기 때문이다.


떨린다며 페스티벌 참가를 망설이던 아이들은 금세 노래 두 곡을 정했다. 아이들 감각에 맞는 요즘 밴드의 노래다.

이제 엄청난 노력과 연습으로 공연을 준비하면 된다. 하지만 연습 과정도 우여곡절이 많다. 아무리 개인 연습을 해도 밴드는 합주가 중요한데 다 같이 모여 연습하는 게 쉽지 않았다. 수아는 학원에 가야 하고, 지은이는 과외가 있다. 기타든 드럼이든 악기 하나가 비면 완성도 있는 연습을 하기 힘들다. 더구나 두 곡 다 일렉 기타의 솔로 연주가 하이라이트인데 유나는 계속 같은 부분에서 실수를 한다.

“쌤, 저 슬럼프인 것 같아요. 계속 같은 데서 틀려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흠…. 대입 면접 지도를 하면서 운동부 학생들에게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슬럼프를 어떻게 극복하냐는 질문에 그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슬럼프는 제 단점을 잘 알 수 있는 시기인 것 같아요. 그럴 때는 훈련을 일부러 더 열심히 해요. 그럼 어느샌가 더 성장해 있어요.”유나에게 이 말을 그대로 전해주었다. 지금이 바로 한 뼘 자랄 수 있는 기회라고.


밤늦게까지 유나의 연습은 계속되었다. 마침내 유나는 손끝에 굳은살이 단단하게 생겼다. 연습이 진행될수록 아이들은 합이 맞아갔다. 서로를 쳐다보며 들어갈 부분과 나갈 부분을 확인했고, 유나가 맡은 기타 솔로는 가장 자신 있는 부분이 되었다. 몇 주 동안 두 곡을 번갈아 가며 연습하는 게 아이들에게는 퍽 지겨웠을 것이다. 짧은 영상과 즉각적 반응이 범람하는 시대, 협력보다는 자신에게만 몰두하는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반복하고 천천히 함께 나아가는 시간들은 고된 도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 덕분에 아이들은 분명 성장했고, 하나의 음악을 완성할 수 있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공연 날. 애니메이션 박물관으로 향했다. 강원 곳곳에서 모인 학생들이 보인다. 우리 빼고 다 실력자 같다. ‘원통리 야수들’이라는 다소 코믹 과격한 우리 이름과 달리 다들 세련된 이름이다.

“괜찮아. 저 아이들한테는 우리 이름이 제일 세 보일 거야.”농담으로 서로의 긴장을 푸는 아이들이 귀엽다. 화려한 조명과 스태프들의 분주한 움직임 속에 리허설이 시작되었다. 아이들 표정이 긴장으로 굳어있다. 연습 때는 잘하던 부분도 삐걱거린다.

“선생님, 진짜 떨려요. 어떡하죠?”

떨려도 할 수 없다. 이제 진짜 공연이고 우리는 무대에 올라야 한다.

“너희는 누구보다 열심히 연습했어. 지금 떨리는 건 당연한 거야. 그 떨림도 즐기자! 이 무대는 단 한 번뿐이니까. 실수해도 괜찮아. 친구들이 이 노래를 함께 완성해 줄 거야. 내가 아는 너희는 최고의 밴드야!”아이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뚜벅뚜벅 무대에 오른다. 거친 숨소리가 먼 객석의 내게까지 들리는 듯하다. 드럼 스틱이 예비 박자로 신호를 준다. 마침내 그동안 함께한 시간의 꽃봉오리가 터지듯 힘찬 연주가 시작된다. 떨림이 리듬이 되는 순간이다.


< 덧 >

경연이 아닌 공연으로 치러진 행사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서로를 향한 아이들의 응원이었다. 각지에서 모인 아이들은 음악을 한다는 공감대로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 손뼉 치고 환호했다. 조금 틀리는 건 상관없었다. 경쟁이 사라진 무대는 모두의 축제가 되었다. 공연을 마친 우리 아이들도 응원봉을 흔들며 신나게 축제를 즐겼다.

학교에서의 배움 또한 경쟁보다는 서로를 향한 응원이 되길 바란다. 학창 시절이 다시 없을 축제이기를 바란다. 아이들이 자라는 시간을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하다.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