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1월 8일 오후 3시
해사한 새색시처럼
가을은 유난히도 투명해
맑고 아름다워
그러니까, ‘춘천은 가을도 봄이지’
시민들 조용한 발걸음으로
나붓나붓 봄내극장으로 오네
티켓을 한두 장씩 사서 대기실에 앉아
적조했던 친구를 만나
조용히 담소를 나누네
깊어가는 가을창 저 너머엔
삼악산 저녁해는 지고
단풍나무는 더욱더 붉게 타오르네
이제 호수는
기억 멀리 잃어버린 꿈을
다시금 피워내게 되리
그렇게 가슴에 품은 시가 되어
몽글몽글 안개의 꿈이 되리
영혼의 반딧불 날아오르듯
아름다운 내밀의 등불 하나둘
고요히 빛나게 되리
1부 노래가 된 춘천
오후 네 시 극장 안, 객석은 만석
숨을 죽이고 실내등이 꺼지고
캄캄한 어둠에 잠긴 시민들
슬라이드 서치라이트, 쏴아 무대로 쏟아지자
기타 든 두 가수 나타나 ‘안개중독자’를
연주하네
죽은 이외수가 환생한 듯 그의 시
‘사랑아 그대가 떠나고 세상의 모든 길들이 지워진다’
간절한 녹우의 목소리로 전해져 오네

녹우의 노래는 계속되네
박제영 시인의 시
‘춘천이 아니면 언제 사랑할 수 있을까
춘천이 아니면 언제 이별할 수 있을까’
이어서 녹우가 작사하고 엄태환이 작곡한
‘석사동 먹자골목’이 흘러나오네
‘후회와 미련의 술잔이 오가고
한 겹씩 풀린 어둠이 저만치 달아난 자리’
아, 가수이면서 시인인 녹우
그는
‘불 켜진 이층방 잠들지 못한 한 사람
창밖을 내다보는’그 한사람
그래그래 시가 노래이지
노래가 시이지
춘천은 언제나, 그 누구나 시인이지
2부 낭송가는 훌륭한 연기자 그리고 시인
낭송가는 시만 멋지게 읽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낭송가는 또 하나의 음악이요 춤이요 사랑이죠
김귀선 님
어디선가 홀연히 나비처럼 날아온 흰나비의 사람
그이는 고요히 날개 접고앉아 허림 시인의 시를 노래하죠
‘어쩌다 춘천이라도 가는 날이면
소양강가 작은 카페에 앉아
창밖의 호수를 내다보는’허림 시인.
그는 오래오래 강물소릴 들어요
물론 관객석에 앉은 시민들도 시인이에요
상상을 펼쳐
깊은 안개 속 강물소릴 들어요
그런데요
참 이상도 해라 춘천은 지금 가을 놀랍게도 봄을 실어 오는 목소리가 있어요
유안진의 시를 중국어로 노래하는군요
이우 님이 유안진의 ‘춘천은 가을도 봄이지’를물 흐르듯 낭송하는군요이분의 쌍둥이 자매 이설 님은 권준호 시인의
‘아름다운 춘배형’을 낭송하고요
그래요
멀리 중국에서 춘천으로 유학 와서 낭송회에 참석하니 얼마나 뜻깊은 일인가요

이어서 머리 하얀 우리 어머니 김연숙 낭송가 최돈선 시인의 시 ‘어머니 뭐하셔요’를 낭송할 땐 눈물을 적시는 시민들이 많았어요
어머니란 말만 들어도 가슴에 그 어머니의 감자꽃이 피어나니까요
그걸 어찌 잊겠어요

왼쪽부터 김귀선, 김연숙 낭송가
그리고 최삼경 님의 신작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를 낭송가 경은영 님이 멋지게 낭송했어요
‘쓰러질 만큼 간절함이 커지기 전에그대 오는가’
사실은 아무도 기다리지 않은 게 아니라 간절히 기다렸다는 역설이 담겨 있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춘천의 소설가 봄봄의 김유정을 연이어 낭독할 땐 우리 모두 위대한 작가를 품은 자부심으로 긍지를 가졌지요
여미숙 낭송가의 고운 자태는 우아한 선녀 같았지요
끝으로 박정대 시인의 시 ‘네가 봄이런가’를 김진규 님이 낭송했어요
이분 김진규 님이 바로 시를 사랑하고
시와 더불어 살고
춘천을 시의 도시로 만들어가는 진정한 시인이죠

왼쪽부터 여미숙, 경은영, 김진규 낭송가
시의 드라마가 끝난 후
한 편의 잘 짜여진 드라마였어요
김진규 님의 마지막 멘트 후 한동안 시민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지요
출연자들이 다시 무대로 등장하고 함께 시민들에게 인사를 한 뒤엔 하나 둘 무대로 나와 악수하고 얼싸 안고 잘했다고, 훌륭했다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지요
감동이었어요
아름다워요
이런 말들을 주고받는 사이 어느새 모두들 어깨춤을 추기 시작했어요
다시금 또 다른 낭송과 드라마가 펼쳐지려는 듯
사람들은 시가 되고 춤이 되고 어울림이 되었어요
오랫동안 그렇게 저마다 시간을 잊은 거예요
아듀! 또 만나요
정말 고마웠어요 다들 행복하세요*


‘춘천은 가을도 봄이지’ 시낭송콘서트를 마친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