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조 빙상 도시’ 춘천의 기억
춘천 빙상의 역사는 100년이 됐다. 최초의 기록은 1929년 강원도체육협회가 개최한 전춘천(全春川)빙상경기대회다. 1930년대에는 춘천군체육협회 주최로 겨울마다 대회가 열렸다. 250m, 500m, 1,500m, 5,000m 등 기록 경쟁 외에도 학교와 마을끼리 팀을 이뤄 계주를 펼치는 등 본격적인 겨울 스포츠 축제였다.

소양강 유리알 은반(銀盤)은 ‘윈터 스포츠’의 성지였다. 일제강점기 당시 춘천농업학교(현 강원생명과학고) 빙상부가 활동했고, 춘천고등여학교(현 춘천여고)에서는 체육 수업이 있었을 정도로 스케이트는 남녀노소가 즐기는 겨울철 오락거리이자 운동이었다. 춘천사람의 ‘스케이트 유전자’는 이때부터 각인돼 대를 이어오고 있다. 조선체육협회가 1921년 서울 명동에 스케이트장을 만든 이후 민간에 스케이트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으니, 1920년대 춘천에서 이런 대규모 대회가 열리고 학생들이 학교에서 스케이트를 배웠다는 기록에서 시민들이 얼마나 일찍이 빙상의 매력에 눈을 떴는지가 엿보인다.
전통·인프라·입지, 춘천이 최적지
춘천시는 국제스케이트장 유치 도전을 선언하며, 100년의 빙상 역사를 되살릴 새로운 준비에 나섰다. 태릉국제스케이트장 이전 부지 공모사업을 신청하면서 춘천에 새로운 국제스케이트장을 세우기 위한 도전장을 내밀었다.
국제스케이트장은 스피드 스케이팅, 쇼트트랙 등 다양한 빙상 종목 국가대표 선수들의 훈련장이자, 국내외 대회 유치를 위한 필수 시설이면서 시민과 아마추어 생활체육인들의 연습 공간인 핵심 스포츠 인프라다. 지금까지는 1971년 건립된 태릉국제스케이트장이 이런 역할을 해왔다. 연간 15만~19만명이 이용할 정도로 규모가 큰 데다 빙질이 좋아 아마추어 동호인들에겐 스케이팅에 집중할 수 있는 ‘빙상인의 천국’으로 불린다.
하지만 대한체육회 선수촌 내 태릉국제스케이트장은 조선 중종의 태릉(泰陵)과 가까워, 조선왕릉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철거 논의가 계속됐다.¤지난해 8월 대한체육회가 이전을 위한 부지 선정 절차를 미루기로 하면서 사업 공모가 잠시 중단됐지만, 국가유산청이 유네스코에 제출한 보존관리계획에 따라 시설을 옮겨야 하는 상황이다.
춘천에 태릉을 대체할 신규 국제스케이트장이 건립된다면 국내 빙상 수요를 그대로 끌어올 수 있다. 국내 수천 명에 달하는 엘리트 빙상 선수들의 일상 훈련 외에도 국내·국제 대회 등 필수 이용 규모가 꾸준할 것이라는 기대다.
400m 국제규격 링크와 생활체육 및 상업 공간 등 부대시설이 들어서면 춘천은 100년 전통을 잇는 대한민국 겨울 스포츠의 중심 도시로 재도약할 수 있다. 소양강과 공지천이 더 이상 얼지 않게 되면서 잠시 자리를 내어주긴 했지만, 1960~1970년대 굵직한 빙상 경기 대회를 개최했던 춘천의 위상을 생각한다면 국제스케이트장 유치는 원조 빙상도시의 뿌리를 다시 세우는 길이다.

춘천은 역사, 문화, 교통 인프라, 입지 등을 고려했을 때 국제스케이트장 유치의 최적지다. ITX를 통해 청량리역에서 춘천역까지 1시간 이내에 닿을 수 있으며, GTX-B 노선 연장과 동서고속철 개통, 제2경춘국도 등 교통 인프라 개선 요소도 확실해 엘리트 빙상 선수들과 수도권 동호인들의 수요를 고려했을 때 입지 조건이 탁월하다.
게다가 국제스케이트장 건립 후보지(송암동 137번지 일원)는 송암스포츠타운 내 국공유지로, 토지 보상이나 행정 절차 등 착공 지연 문제로부터도 자유롭다. 이미 배수 작업과 평탄화를 완료했고, 기반 시설을 정비하고 입간판을 설치하는 등 현장 관리에도 나섰다. 주변엔 여러 종목의 스포츠 시설이 클러스터를 형성해 선수들이 훈련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갖췄다. 인근에 강원체육중·고가 있어 학생들이 시설을 활용해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기에도 유리하다.
시민이 만든 ‘은반의 도시’ 춘천의 시간이 다시 흐른다
최근에는 국제스케이트장을 향한 지역사회 열망이 고조되며 시민들의 자생적인 유치 활동이 활발하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강원지역에 동계 스포츠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크게 확대된 만큼, 스케이트에 대한 시민의 관심과 요구 목소리도 높다.
‘은반의 도시’ 춘천은 시민들의 손끝에서 다시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올해 8월에는 춘천시체육회 소속 임시 기구인 ‘춘천국제스케이트장 범시민유치위원회’가 출범했다. 시민, 사회단체, 기관이 참여하는 민간 주도의 추진 조직으로, 국제스케이트장을 유치하기 위해 춘천시민이 뜻을 모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춘천 국제스케이트장 범시민유치위원회는 올해 8월 발족식을 갖고, 국제 스케이트장 공모 재개에 대비해 범시민적 유치 기반 다지기에 나섰다
국제스케이트장 유치 도전에 나선 이후, 150여 개 단체가 응원 캠페인을 벌였으며, 스케이트 동아리 40개가 결성됐다. 특히 지역에서 열린 스포츠 대회를 중심으로 다양한 릴레이 응원을 펼치며 지지를 보내고 있다. 국제스케이트장 유치 서명운동엔 춘천 인구의 11%인 3만2,000여 명이 참가해 힘을 보탰다.
춘천시 차원에서도 올해 5월 국제스케이트장 유치를 위한 TF를 구성하는 등 적극적으로 춘천 스케이트장 유치의 필요성을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사업 공모 재개 이후에는 춘천국제스케이트장 범시민유치위원회 주도로 유치 결의대회를 진행할 계획이다.
공지천 얼음 위를 씽씽 내달리던 어린이들은 벌써 중년의 나이가 됐다. 스케이트 DNA를 뼛속에 새긴 춘천시민들은 유년 시절의 이 경험이 추억으로만 남지 않게 해달라고 염원한다. 다시 한번 옆에 있는 이의 손을 잡고 빙판을 가를 수 있도록, 춘천에 들어설 국제스케이트장을 기대한다. 그러면 비로소 100년 역사를 잇는 ‘원조 빙상도시’ 춘천의 시간이 다시 흐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