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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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68

2021.9
#봄내를 품다
최돈선의 골목이야기⑰
매미 우니 가을이 오네, 칠전동

칠전동漆田洞. 풀이하면 옻나무를 심은 동네란 뜻이다.

그러면 이 동네엔 옻나무가 많을 텐데 옻나무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드름산이나 향로산에 가야 간간이 옻나무를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강원도는 춘천과 원주에 옻나무 묘목을 수천 그루 심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런데 춘천에 심은 옻나무는 지금 사라지고 없다.

하지만 지금 원주지역은 옻나무단지가 조성되어 옻을 통한 옻칠공예가 번성 중이다.

하지만 춘천은 무슨 이유인지 ‘창내’라 불렀던 옛 이름이 지금은 옻나무 없는 ‘칠전동’으로 바뀌어 불리고 있을 따름이다.



춘천의 관문인 칠전동은 옛날엔 소나무가 울창한 산골이었다.

일제강점기엔 면사무소와 지서가 있었고, 신남초등학교가 있었다.

그 후 면사무소와 지서가 없어지고, 1934년에 설립한 신남초등학교가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옛날 교사가 헐리고 그 자리에 신축한 교사가 오렌지와 청색으로 화사하다.

학교가 설립될 당시에도 있었을 벚나무는 봄이면 수천의 꽃등을 달고 학교 마당을 환히 밝힌다.



금병산



아침에 눈을 뜨면 금병산 정상이 길게 하얀 구름 띠를 두르고 둥둥 떠 있다.

어느 땐 유화물감 번진 회색 구름 사이로 옅은 오렌지빛 아침노을을 보여주기도 한다.

겨울이면 하얀눈산이 창공 위로 눈부시게 빛난다. 금병산이 시간마다 변하는 모습을 본다는 일은 즐겁다.

동쪽의 해는 금병산보다 먼 대룡산에서 솟는다. 그것이 칠전동 드름산을 건너 삼악산에서 진다.

때로는 황금빛으로, 때로는 붉디붉은 노을로, 산과 호수가 가멸차게 물든다. 그때면 드름산 옥수사나 삼악산 봉덕사 종이 은은히 울린다.

서울에서 춘천으로 들어오는 국도는 새로이 4차선 길이난 지 오래되었다. 벌써 40년이 넘었다.

예전의 2차선 도로는 지금도 드름산을 우회하여 신연강 다리를 건넌다.

예전 길이건 새로운 길이건 춘천에 들어가려면 칠전동을 관통해야 한다.


아침이다.

나는 아내와 아파트를 나선다. 올 2월에 아내와 칠전동으로 와 살기 시작했다.

곧 봄이 되자, 백 년은 좋이 견뎠을 신남초등학교 벚나무가 환하게 꽃을 피웠었다.

그리고 여름이 왔다. 이내 가을이 올 터이다. 아니 벌써 선선한 바람이 드름산으로부터 내려오기 시작한다.

예전엔 드름산을 얼음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올여름 그렇게 무더웠어도 새벽이면 살갗이 선뜩하여 얇은 이불깃을 여며야 했다.

칠전동은 춘천 중심가보다 1도나 2도가 낮다고 하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지금 8월의 아침. 산빛은 짙푸르다. 골목은 아침해가 떠오르자 햇살에 드러난 건물과 거리가 그늘과 선연히 대비된다.

신남초등학교 앞 골목엔 식물원이 들어섰다. 의암댐 가는 길섶의 대지식물원이 얼마 전에 이곳으로 옮겨왔다.

이른 아침인데도 이미 물을 흠뻑 먹은 화초들 이파리마다 물방울이 맺혀 있다. 60대 주인 내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대지 식물원(위)과 깔롱헤어



식물원과 이웃한 ‘깔롱헤어’ 유리창에 블라인드가 내려져있고, 출입문 쪽으로 희미한 불빛이 흘러나온다.

깔롱쟁이란 우리말로 멋쟁이란 뜻인데, 과연 그런 걸까.

하여튼 저 미용실을 며칠 전에 갔었다. 앉자마자 나는 눈을 감았고,

전기 이발기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었고, 삭삭삭 가위질이 몇 번 왔다 갔다 하는가 싶더니, 금세 끝났다고 한다.

채 5분이 안 되는 시간인 듯싶었는데…. 눈을 떠 보니 말끔하다.

들어가서 눈 깜짝할 사이에 머리가 깎인 집이 식물원과 마주하고 있다.

나는 이 ‘깔롱헤어’를 마법의 미용실이라 부르련다.


골목길은 무하無河에 흐르는 개울과 같습니다

이 길을 지날 때

우리는 한 마리 왜가리처럼 느긋해집니다


최성각 환경작가의 책 ‘산들바람 산들 분다’에 나오는 풀꽃상 이야기 한 구절이다.

오래전 풀꽃상은 동강비오리나 보길도 해변 돌멩이, 가을억새에게 주어졌는데, 4회엔 ‘골목길’에 그 상이 주어졌다.

골목길은 삶이 흐르는 시이기 때문이라 했다.

칠전동 골목길은 큰 대로를 사이에 두고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다.

물론 대로에 건널목이 있지만, 칠전동 사람들은 육교(반달교)를 천천히 건너다닌다.

사람과 자전거만 다닐 수 있는 이 반달교는 한 고등학생의 죽음으로 세워졌다.

건널목이 멀어 무단횡단으로 길을 건너던 고등학생은 달려오는 자동차에 치여 사망했다. 바로 그 자리에 놓인 다리이다.

이 반달교가 남쪽 마을과 북쪽 마을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셈이다.


육교 반달교



북쪽 마을은 초등학교와 병원, 상가가 형성되어 있고, 아파트촌이 상가를 에워싸고 있다. 남쪽 마을보다 사람이 많이 사는 곳이다.

지대가 높은 곳엔 공원이 있는데, 바로 곁에 김정金鼎의 묘가 있다.

김정은 고려 후기 신돈의 개혁정치에 참여했던 인물이다. 공민왕 20년 신돈이 축출되자 김정도 유배되었으나 그 행적을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영조 때 후손 춘천부사 김화택이 지금의 터에 김정의 글자가 새겨진 지석을 발견함으로써 김정의 묘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묘 바로 건너편 남쪽 마을에 솟을대문이 우뚝 선 광산 김씨 재각이 있는데 모술재라 하여 그곳에서 매해 제향이 올려진다.


광산 김씨 김정 묘



남쪽 마을 꽃차



북쪽 마을은 유난히 맛집이 많다. 나는 ‘차이나객잔’도 가보았고, ‘오소리국밥집’도 가 보았다.

골목마다 커피집이 즐비한데, ‘미스터 리’가 내가 가본 유일한 커피집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 바로 앞이어서 들른 집인데 맛과 향이 뛰어나다.

‘칠전횟집’과 ‘가평애향식당’은 널리 알려진 맛집으로 유명하다.

다른 맛집도 훌륭하겠지만, 사실 내가 다녀본 맛집 몇 군데만 소개했을 뿐이다. 


북쪽 마을 시가지와 금병산


둥글게 위로 굽어진 다리 밑으로 자동차가 씽씽 내달린다.

남쪽 마을은 북쪽 마을보다 더 조용하다. 오히려 스산할 정도로 정적이 감돈다.

하얀 건물이 많아 백색의 골목이 여기저기 뻗어 있다. 남쪽 마을 집들은 규모가 제법 크다.

이곳에 강원지방조달청과 자동차등록사업소, 그리고 우체국이 있다. 막다른 골목 너머가 라데나 골프장이다.

부촌 마을이어서 그런지 길가에 꽃들이 많다.

어느 집은 온통 수목원처럼 꾸민 집도 있다. 울타리 너머에도, 벽에도 문 앞에도 꽃들이 피어나고 진다.

길 옆 카고 트레일러 안에 봉숭아꽃, 사랑초 등 온갖 화분 등속이 가득 채워져 있다. 


계속 서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어느덧 건물들이 만들어 놓은 골목이 사라지고 오솔길이 나타난다.

코스모스가 한 무더기 피어나 바람결에 한들거린다.

벌써 가을인가. 무궁화꽃 울타리를 지나자 길은 비포장인데, 문득 오른쪽으로 길 하나를 발견한다.

스쳐 지나가려다 아내와 함께 그 길로 접어든다. 약간 경사진 언덕길을 넘으니, 놀랍게도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어쩌면 비밀의 화원으로 진입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눈앞에 무궁화 묘목장이 펼쳐지는데, 꽃들의 색깔들이 매우 다양하다.

흰색, 노랑, 붉은 꽃, 보랏빛 무궁화 등 이루 헤어릴 수 없는 무궁화들이 제 이름표를 제가끔 달고 정렬해 있다.

이름도 생경한데 어딘가 아우라가 느껴진다. 고주몽, 고요로, 파랑새, 삼천리, 홍단심 등 그 종류가 수백가지는 될 듯 싶다.

무궁화 단지를 끼고 돌아내려 가다 보니 짐승의 발자국과 짐승의 똥을 발견한다.

똥이 마르지 않은 것으로 보아 새벽에 이 길을 지나다녔다는 걸 알 수 있다. 고라니 발자국이네. 아내가 말한다.

그렇군. 멀리 새파란 잔디가 펼쳐진 것을 바라보며 내가 대답한다.

라데나 골프장으로 우리도 모르게 들어온 것이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골프를 즐기는 모습도 보인다.

어디선가 난데없이 매미 한 마리가 싸르륵 내 곁을 지나 저쪽 소나무 숲으로 날아간다.

매미들이 그 숲에서 일제히 날개를 비벼대며 운다. 분명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나팔음이다.


무궁화 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