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북쪽으로 바라본 국사봉 전경 (사진 KBS 제공)
소나무가 대나무에 말하길
“눈보라 몰아쳐 온산 가득해도 나는 굳세게 머리 세워서
부러질지언정 굽히지 않는다오.”
대나무가 소나무에 대답하기를
“높아질수록 쉬이 부러질 터라 나는 청춘을 고이 지킬 따름이니
머리 숙여 눈보라에 몸을 맡긴다오.”
- 이식李植, 소나무와 대나무 대화(松竹問答)
춘천 도심의 동남쪽에 자리한 금병산은 병풍처럼 드리워 춘천을 품어준다.
금병산 자락은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안마산으로 줄기를 드리우고,
안마산 줄기는 다시 완만하게 서쪽으로 낮아지며 국사봉에 이른다.
국사봉 줄기는 서쪽으로 향로산에 이어지고 향로산 줄기는 두 갈래로 나뉘어 완만하게 낮아지며
봉황대와 부벽정에 이르러 그 여정을 멈춘다.
이 가운데 봉황대는 예전 하중도로 가던 선착장 옆의 야트막한 봉우리고,
부벽정은 지금의 춘천 MBC가 자리하여 시내를 전망하는 봉우리다.
향로산은 봉의산과 마주한 우리 춘천의 안산案山이고 안마산은 가볍게 등산하기 좋은 말안장 모양의 산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안마산과 향로산 사이에 국사봉이 자리하고 있다.
국사봉은 나라 국國 선비 사士 봉우리 봉峯 자로 지어졌고,
여기서 국사國士는 온 나라 사람이 높이 떠받드는 지조 있는 선비를 일컫는 말로, 애국지사愛國志士의 준말이다.
국사봉에는 산 이름에 걸맞은 춘천 선비들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소나무 아홉 그루를 심어 태극단을 만들다
국사봉은 퇴계동에 있는 높이 203.3m의 야트막한 산으로, 춘천 선비의 나라 사랑 정신이 짙게 서려 있는 곳이다.
일제강점기였던 1919년 1월 22일에 대한제국의 황제로 백성의 희망이자 기둥과 같았던 고종이 승하하였다.
그러나 춘천 어느 곳에도 마음 놓고 슬퍼할 장소가 없자,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슬픔을 토로하고 황제의 제사를 지내며 독립을 염원하고 선비의 지조를 지킬 장소로 국사봉을 택했다.
당시 춘천의 선비 200~300인이 국사봉에 올라 대한제국의 상징인 태극 모양의 단을 만드니,
태극단은 소나무 아홉 그루를 헌정하여 심어서 이루어졌다.
태극에는 세상은 낮아지면 반드시 높아지고 흩어지면 다시 모여서 본래의 모습을 회복한다는 순환적 세계관이 담겨 있다.
이러한 뜻을 담아 국사봉 정상에 소나무를 헌정하여 심어서 태극단을 만들었다.
아홉 그루의 소나무를 심어서 태극과 팔괘를 만들고, 지금 나라를 잃어 참혹하고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지만
반드시 이 고난을 이기고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겠다는 광복의 뜻을 담았다.
소나무 태극단에 광복의 뜻을 담다
소나무는 시 그림 글씨에 있어서 친근한 소재이며 지조 있는 선비를 상징한다.
공자는 “매섭게 차가운 겨울을 지낸 뒤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알 수 있다.(歲寒然後知松栢之後彫也)”라고 하여
소나무의 굳센 기상을 말하였다.
소나무는 부러질지언정 굽히지 않는 지조 있는 선비의 풍모를 드러내는 원형 심상心象의 하나이다.
국사봉에 태극단을 만드는 일은 김영하 선생이 주도하였고 여기에 뜻있는 춘천의 선비 200여 명이 힘을 합쳤다.
태극단을 세워서 나라 잃은 통한을 피눈물로 달래는 한편 대한독립을 간절하게 소망하였다.
국사봉에 소나무 태극단이 설치되자, 춘천의 선비들은 앞다투어 국사봉에 올라 제를 올리고
조문과 시문을 지어서 독립의 필요성과 일제의 만행을 기록하고 이를 세상에 알렸다.
일제는 글을 지은 선비들을 투옥하여 고문하며 선비의 지조를 꺾으려 했다.
그러나 3년 상이 끝날 때까지 춘천 선비들에 의해 망제는 면면히 이어졌고 글도 함께 지어져 광복의 밑거름이 되었다.
국사봉망제탑 (사진 심창섭 제공)
국사봉망제탑은 춘천 선비의 표상
1993년 우리 시는 이러한 춘천 선비의 지조와 정신을 높이 여겨 후손에게 영원히 전하고자 탑을 세웠다.
그것이 바로 ‘국사봉망제탑國士峯望祭塔’이다.
망제탑의 화강석 기단에는 무궁화를 돋을새김했고 상부에는 무궁화 꽃봉오리 모양의 돌을 올려놓았으며
탑의 몸돌에는 기문과 시문을 오석烏石에 선명하게 새겨 놓았다.
망제탑 주변에 김영하를 비롯한 춘천 선비들이 황제의 죽음을 슬퍼하고
조국 광복을 염원하며 심었다는 태극단 소나무를 다시 보게 할 수는 없을까!
산림청 설문조사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로 소나무가 선정되었다.
애국가 가사인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것 같이 국사봉 위에 소나무를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