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치마 옷자락이 바람에 ‘사라락’ 날리고, 그 가운데에 생활한복 디자이너 한진영 씨(34)가 있다. 생활한복은 전통한복의 고운 선은 살리면서도 일상생활에서 편하게 입을 수 있도록 활동성까지 살린 옷이다. 한 씨는 5년째 생활한복만 입다 보니 이제 다른 옷은 어색해서 입지 못하겠다고 한다. ‘사라락’은 한 씨가 운영하는 생활한복집으로, 육림고개에서 4년째 생활한복을 알리고 있다.
젊으니까, 망해봐도 괜찮아
한 씨는 대학에서 의류학과를 전공할 때부터 유독 한복이 좋았다. 양장과 한복을 모두 배우면서 ‘50대쯤 마지막 직업으로 한복집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의류 디자인 회사에 취업했다. 저임금과 야근에 시달렸다. 1년쯤 버티다가 다른 일을 알아봤다.
여행사로 이직, 콘텐츠 제작과 홍보 마케팅 일을 2년간 했다. 여행은 좋아하지만, 직업으로 대하니 생각과는 좀 달랐다. 직장을 관두고 여행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부모님이 계시는 춘천에서 살기로 마음먹었다. 결혼하기 전, 부모님과 시간을 함께하면 좋을 것 같았다. 춘천에 내려와서는 창업을 결정했다. 이왕 새롭게 시작하는 일,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아직 젊으니까, 망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생활한복 마니아 단골 생겨
중앙시장에 3평 규모의 생활한복집을 열었다. 5년 전의 일이다. 우선 많이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었다. 혼자 계속 작업을 하면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SNS에 제작한 옷 사진 등을 올렸다. 6개월 만에 첫 손님이 찾아왔다. 자신이 디자인하고 제작한 옷을 입고 춘천 관광을 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행복을 느꼈다.
1년여 만에 육림고개로 이전했다. 중앙시장 골목 안에 있을 때는 SNS 등을 보고 주로 젊은 층이 찾아왔다. 이전 후에는 가게 앞을 지나다니며 관심 있게 본 사람들까지 찾아와 50대 이상의 생활한복 마니아 단골이 생겼다.
특별한 날 말고 매일 입을 수 있도록
마니아 단골은 사라락에서 한복을 맞추는 반면, 관광객 등 젊은 층은 1~2시간씩 대여해 입는 경우가 많다. 특히 사라락 생활한복은 대여비가 저렴해 찾는 고객이 많다.
“제가 입으려고 만든 옷이잖아요. 누군가 입고 나가서 돌아다니면, 자동으로 홍보가 돼요. 예쁘게 입으면 사람들이 어디 옷이냐고 묻기도 하거든요. 저는 직접 세탁도 하니까, 비싸게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보통 한복은 결혼식이나 돌잔치 등 특별한 날 입잖아요. 저는 학생이나 직장인이 ‘생활한복데이’ 같은 날을 만들어 단체로 입고 출근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요. 그런 경우 하루종일 대여해도 저렴하게 빌려 드리려고 하고 있어요.”
한 씨는 지난해 사라락이 어느 정도 안정됐다고 생각했다. 올해부터는 홈페이지 운영 등 온라인 영업을 확대하고 직원도 뽑아보려고 했는데, 코로나19로 상황이 어려워졌다. 생활한복을 대여하는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겼고, 단골손님도 조금씩 뜸해지고 있다. 춘천시평생학습관에서 생활한복 만들기 강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강좌 개강도 무기한 연기됐다.
내가 만든 옷 입은 사람들 볼 때 행복
“저는 사장으로서, 돈 버는 일에는 소질이 없는 것 같아요. 평생학습관 강좌가 연기되면서 사라락으로 직접 배우러 오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분들께 제작 과정을 알려 드리는 것이 더 보람되고 재미있어요. 교육 과정을 마친 후 직접 제작한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너무 행복해요. 입기 편하면서도 아름다운 디자인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제가 디자인한 옷을 입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