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옛날 신문에 나온 춘천의 기사와 사진을 보면서 그 시절 춘천사람들의 모습을 기억해 보는 코너입니다.
신북읍 발산리 삼한골
피서避暑라고 하면 더위를 피하는 일을 말한다. 한창 혹서기酷暑期인 요즘 시원한 계곡과 바다가 저절로 그리워진다. 바다는 없지만 우리 춘천은 삼악산, 구곡폭포, 등선폭포, 지암리, 삼한골 등의 아름다운 산과 계곡 호수가 어우러져 예로부터 피서지로 각광을 받았다. 특히 수도권 지역에서 가까운 춘천을 선호하였는데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철도였다. 지금이야 서울· 양양 고속도로와 경춘국도 등 도로 교통도 좋아졌지만 오랫동안 ‘춘천 하면 기차!’가 생각나는 낭만도시였다.
이 경춘선의 역사는 1939년에 시작되었다. 서울 제기동역 2번 출구 근방인 성동역(지금은 쇼핑몰로 변함)에서 출발했으나 1971년 10월 5일 시종착역이 지금의 청량리역으로 변경되었다. 처음부터 단선으로 운행되던 경춘선은 2010년 12월 21일 복선 전철화하면서 시종착역이 상봉역으로 변경되고 ITX 청춘 열차의 경우 용산까지 운행된다.
두 기사는 같은 날짜인 8월 18일 기사인데 6년의 시간 차이를 두고 같은 내용으로 쓰여져서 흥미롭다. 8월 여름철 춘천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피서객이 너무 많아서 경춘선의 기차가 내려앉고, 고장나서 연착됐다는 것이다. 다만 1969년도의 기사는 성동역이 종착역으로, 75년도의 기사는 청량리역이 종착역으로 다르다.
이때는 통금이 있던 시절이었다. 막차에서 내려야 하지만 통금으로 인해 집으로 갈 수 없었다. 지방은 따로 버스를 대절해서 대책을 마련해 주기도 했지만 서울지역 승객들은 노숙을 피할 수 없었다. 1969년도 기사를 보면 객차에서 그냥 앉아 잠을 청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와 달리 1975년도 기사 사진은 그마저도 사정이 여의치 않았는지 청량리 광장 바닥에 사람들이 누워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미 만원이었으니 좌석마저 부족했을 것이 틀림없다. 밤에 철도청장 집에 전화해서 항의하던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니 지금과 같은 예매 시스템은 아니었나 보다.
코로나19로 인하여 피서 기간이 실종된 요즘이다. 아이들 방학도 짧아져 어디든 가고자 하는 맘이 굴뚝 같다. 하지만 우리 춘천이 이런 곳이다. 계곡이든 산이든 가족들과 함께 가벼운 피서를 즐겨보자.
<동아일보 1975년 8월 18일자>
경춘선 초만원승객에 주저앉은 열차 고장연착으로 5백여명 노숙
주말 임시열차가 승객을 너무 많이 태워 객차 고장을 일으켜 3시간 20분이나 연착, 통금에 묶인 5백여 명의 승객이 청량리역에서 노숙했다.
17일 오후 7시경 춘천발 청량리행 3166호 임시열차는 정원의 3배나 되는 승객을 태우고 오다 가평역에서 객차 7량 중 1량의 스프링이 주저앉아 이 객차를 떼어내느라 20분 늦게 떠났고 평내역에 이르러 다시 객차 5량의 스프링이 주저앉아 무려 3시간 20분 동안이나 연착했다.
사고가 나자 철도청은 임시열차를 배정, 이날 밤 11시 40분경에야 청량리역에 도착, 인천 수색 방면 승객 1천5백여 명은 다른 열차 편으로 수송했으나 서울 시내의 5백여 승객은 통금시간에 묶여 청량리역 광장에서 18일 새벽 4시까지 노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