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가 썰렁하다. 거리를 지나다니는 차도 사람도 줄었다.
아파트 입구도 한가하고, 3월 중순이 넘도록 학교 앞도 조용하다.
하지만 골목에는 늘 그 자리를 지키는 오래된 슈퍼가 있다.
두부 한 모, 콩나물 한 봉지 사러 갈 때 들르던 작은 슈퍼다.
흔히 ‘집 앞 그 슈퍼’라고 불리는 조그만 동네 슈퍼가 이제 ‘나들가게’라는 새로운 이름을 하나 더했다.
주인과 손님 끈끈한 관계 이어져
‘나들가게’는 정이 있어 내 집같이 드나들고, 나들이하는 마음으로 가는 곳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2010년 중소소매업 유통혁신방안의 하나로 시행, 골목 슈퍼의 환경 개선작업을 돕고 간판 교체와 POS 시스템 등을 지원해줬다. 10년간 많은 동네 슈퍼들이 나들가게 간판을 하나 더 달았고, 춘천에는 나들가게 협의회에 등록된 가게가 56개 있다. 나들가게는 대부분 아르바이트생 없이 사장과 가족이 직접 운영한다. 주인과 손님의 친근한 관계가 이어지다보니 동네 이웃집처럼 지내거나 슈퍼가 동네 사랑방처럼 되기도 한다.
입점 여건 따라 다양한 상품 갖춰
춘천나들가게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이태호 사장(56)은 만천할인마트를 운영하고 있다. 이 사장은 2010년 나들가게 소식을 듣자마자 “이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첫해는 신중해지기로 했다. 다른 나들가게가 자리 잡는 모습을 지켜본 후 이듬해부터 준비를 시작, 2012년 만천할인마트 간판 옆에 나들가게 간판을 더했다.
만천할인마트 입구는 아이스크림 할인을 알리는 안내광고판, 집에서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이지웨어,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장난감 뽑기 기계 등이 놓여 있다. 가게는 구석구석 여러 가지 물건으로 빼곡하다. 초등학교 앞에 위치, 아이들을 위한 문구류 등이 벽 한 면을 차지한다. 일반 가정용품과 공산품 이외에도 에스프레소 머신, 정육 코너, 애견용품까지 있다. 5,000여개의 물건이 있다는 설명. 나들가게는 학교나 공공기관, 아파트 등 들어서는 곳의 특징을 반영해 다양한 상품을 구비하고 있다.
대형마트 등 대응 위해 공동유통망 구축
이 사장은 “작은 슈퍼로 시작해 집도 마련하고 가게도 마련한 나는 성공한 사람”이라며 “내가 성공한 만큼 다른 나들가게 회원들도 도와주고 싶다”고 밝혔다. 만천할인마트를 나들가게 로 변경한 후 다른 골목 슈퍼에 나들가게를 권하며, 소규모 슈퍼들의 공동 유통망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몇 년간의 노력 끝에 춘천나들가게협의회와 협동조합, 물류센터가 만들어졌다. 협의회에는 56개 점포가 가입돼 있고, 협동조합에는 5곳의 조합원과 30여 곳의 준조합원이 참여하고 있다. 그 가운데 20여개 점포가 물류센터를 이용하고 있다.
협의회 지원사업으로 슈퍼 수입 증가
나들가게 한 곳만의 힘으로는 어렵지만 뜻을 모아 공동 유통망을 만들면 대형마트나 편의점 등에 대응할 수 있다. 이 사장은 그 예로 나들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할인받을 수 있게 된 과정이나 고추장을 대리점에서 받을 때와 물류센터를 이용할 때 가격 차이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또 춘천나들가게협의회는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나들가게 육성 선도지역 지원사업을 수행하며 11억5,000만원을 지원받아 공동구매와 점포 리모델링, 마케팅 사업을 벌여 점포의 수입 증가에 큰 기여를 했다.
이태호 사장은 “대부분 한두 명의 가족이 운영하는 나들가게는 물류센터에서 물건을 싣고 갈 여력이 없다.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받을 수 있는 나들가게물류센터의 참여율을 높이려면 배달인력과 차량이 꼭 필요하고 그에 대한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