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골에 어느 곳보다 가장 먼저 봄이 찾아오는 곳이 있다.
해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면 추운 겨울을 이겨낸 꽃들이 가장 먼저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하는 강원도립화목원이다. 사시사철 꽃이 피는 곳이니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제주도의 유채꽃보다 먼저 꽃망울을 터트리는 곳이기도 하다.
녹색학습장과 문화휴식공간으로 두각
‘봄의 전령사’들이 앞다퉈 싹을 틔우는 강원도립화목원이 지난 1996년 사농동 화목원길에 착공된 것은 봄내골의 행운이었다. 엉겁결에 갑자기 화목원 후보지를 물색하다 육묘장이 있는 곳이 눈에 띄었다. 손쉬운 방법을 찾아보니 도심지 인근 도로변에 있는 평지가 선택됐다.
산림박물관도 마찬가지였다. 전국에 널려 있는 13개소의 산림박물관 가운데 다섯 번째로 개관한 도립산림박물관(2002년 10월)도 정부 차원의 강력한 산림정책에 떠밀려 서둘러 개관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그래서 봄내골 주민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언론의 요란스러운 스포트라이트도 비켜 갔다.
그러나 총 사업비 111억 9,300만 원(국비 30억 원, 도비 81억 9,300만 원)을 들여 3년간의 공사 끝에 1999년 5월 강원도립화목원이 개원했다. 그 뒤를 이어 강원도산림박물관도 총사업 비 112억7,600만 원(국비 56억3,800만 원, 도비 56억3,800만 원)을 들여 착공 5년 만인 지난 2002년 연거푸 개원했다.
번듯한 모습이 드러나자 지역의 관심과 시선도 달라졌다. 비록 울창한 숲 속이 아닌 도시 인근의 좁은 평
지에 마련됐지만 녹색학습장과 체험공간뿐만 아니라 문화휴식공간으로 한몫을 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강원산림개발연구원과 같은 산림 유관기관까지 집합체를 이뤄 봄내골과 강원도가 무릇 ‘산림의 수도首都’나 ‘산림의 왕도王都’임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곳으로 자리 잡았다.
이 무렵 강북에 있는 인근의 육림공원, 위도유원지와 더불어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주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청명晴明은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는 뜻이다. 절기상 춘분春 分과 곡우穀雨 사이에 끼어 있다. 해마다 양력으로 4월 5일 즈음이다. ‘부지깽이를 심어도 싹이 난다’고 할 정도로 만물이 움트는 계절이다. 국가적으로는 나무를 심고 가꾸는 식목일이 들어 있기도 하다.
하지만 들쑥날쑥한 꽃샘추위 속에 아직은 겨울 풍경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모처럼 느끼는 봄기운과 코로나19 사태가 안 겨준 시름을 털어내고 추운 겨울을 이겨낸 장한 모습을 보려고 강원도립화목원을 찾았다.
계절마다 화려한 꽃망울 연출
▲강원도립화목원 입구에 들어서자 ‘분수의 광장’이 첫눈에 들어왔다. 하늘 높이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내 무더운 여름철 가장 인기가 있는 곳이다. 왼쪽에는 유리온실(1.872㎡) 3채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사계식물원으로 불리는 온실은 △난대 △관엽 △다목식물원 △생태관찰원으로 이뤄졌다.
식물들이 잘 자라도록 기온을 유지하고 있어 다소 무덥고 습하다. 다양하고 희귀한 식물들을 살피다 보니 땀이 흘러내리는 걸 모를 정도다.
자동화시스템을 갖춘 유리온실은 무려 400종류에 6,425그루의 희귀식물을 품고 있으니 그럴 만하다. 또 식물원 안에는 높이 12m짜리 철제 전망대가 마련돼 화목원 전체를 조망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하늘 높이 치솟은 메타세쿼이아 숲에서부터 이어진 오감체험정원의 탐방로(2.5㎞) 주변에는 ‘숲속의 쉼터’, ‘맨발로 걷는 길’, ‘야외공연장’ 등의 아기자기한 테마공원이 마련돼 있다.
강원도립산림박물관 개관식(2002.10.31.)
전체 보유식물이 무려 1,816종에 8만5,000그루나 된다. 벌써부터 사계절마다 꽃마을을 연출하려는 준비에 바쁜 모습이다. 해마다 자연학습과 체험 프로그램, 꽃축제, 국화·야생화· 분재전시회를 비롯, 음악회와 어린이날 잔치가 펼쳐져 오랜만에 찾아왔음에도 낯설지 않다.
정원과 화단 곳곳에는 다양한 동물 캐릭터와 조화를 이뤄낸 포토존이 마련돼 인증샷은 물론 결혼기념 사진을 찍기 좋은 명소로 소문나 있다. ‘화목정花木亭’이라고 쓴 현판이 붙어 있는 조 선시대 전통양식의 팔각정(36㎥) 주변에는 한국미를 뽐내는 돌다리와 연못에 동전을 던져 소원을 빌어보는 물레방앗간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마치 지난 1950년대부터 1960년대 후반까지 전국의 벚꽃 구경 봄나들이객 수백만 명이 운집하게 만들었던 서울 창경원의 축소판을 보는 듯하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을 타고 날아드는 봄향기 속에 벌써 겨울이 지나 봄이 찾아왔음을 절감케 한다.
어느새 움트는 자연의 향연이 파이프오르간을 틀어놓은 것처럼 다가왔다.
우리나라 산림 일대기가 한눈에
한 울타리 안에 있는 ▲강원도립산림박물관은 2002년 10월 지상 2층과 지하 1층에 연면적 1,872㎡ 규모의 건물을 지어 개관했다. 전시실과 영상실, 4D입체영상관, 식물유전자원연구실 수장고가 마련돼 있다.
우선 1층 로비를 거쳐 안으로 들어가자 △숲체험관이 나온다. 호랑이, 반달가슴곰, 산양, 수리부엉이 같은 천연기념물과 멸종 위기의 동물박제들이 살아 있는 것처럼 전시돼있다. 2층의 △자연과 산림을 주제로 한 전시실에는 나무의 씨앗이 싹튼 후 자라나기까지의 광합성 작용의 원리와 꽃가루받이가 영상과 모형으로 전시되어 있고, 산림의 생태와 자연의 먹이사슬 등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산림과 생활관은 아름다운 강원도 산림의 비경과 선조들이 나무를 베고 깎고 다듬을 때 썼던 전통목공용구와 손때 묻은 생활용구가 옛날의 산촌생활을 보여준다. △산림의 이용과 미래관은 강원임업발전사와 목재의 특성, 목공예, 미래의 숲 등 네 가지 주제를 담았다. 강원도 임업의 역사와 미래를 한눈에 내다볼 수 있는 이 전시관에서는 화전 정리 사업의 역사가 눈길을 끌었다.
이 밖에 산림과학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목공예전과 같은 기획전시와 체험교육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었다. 소장 사료와 물품(797종에 7, 611점)의 보존과 전시뿐만 아니라 교육 기관으로서도 자리매김하고 있어 돋보였다. 마치 우리나라 산림산업의 일대기를 되돌아보고 앞날을 내다볼 수 있는 산교육장이라는 느낌이다.
개원 이래 400만 명 가까이 다녀가
강원도립화목원에는 개원 이래 20여 년간 400만 명에 가까운 관람객이 다녀갔다. 어린이들을 동반한 가족나들이나 학생들의 체험학습과 견학이 대부분이다. 가끔 단체로 버스를 타고 오는 관광객의 모습이 보이지만 나이 드신 어르신들에 치우쳐있다.
마치 마을 부근에 화단을 가지고 있으나 정작 같은 생활권에 있는 봄내골 주민들은 자주 들르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겨울잠에서 깨어나 봄단장과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소독을 하려고 지난 3월 3일까지 임시 휴관 후 재개관했는데 실외 관람만 가능하고 실내 온실과 박물관은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3월 20 일 기준).
국립시설에 견줘 투자 예산과 운영비가 턱없이 적어 철 따라 옷을 갈아입기에도 버거운 듯한 모습도 눈에 띈다.
나무를 심고 푸른 숲을 가꾸자는데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더구나 강원도의 생활권 안에 있는 도시숲은 0.16%로 전국 최하위(159만460㏊ 가운데 생활권 도시숲 2,563㏊)에 불과한 실정이다(강원연구원 정책 메모 참고).
춘천시가 오는 2050년까지 ‘1억 그루 나무 심기’ 프로젝트를 적극 추진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일 죽어도 사과나무를 심자’는 속담은 산림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파릇한 새순이 안겨준 자연의 속삭임 속에 ‘희망의 알람’ 소리를 들으며 독일의 소설가요, 시인이었던 노벨문학상 수 상자 ‘헤르만 헤세’의 시구詩句를 떠올려 본다.
나무는 내게 언제나 사무치는 설교자였다
나무와 이야기할 줄 아는 사람
나무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은 진리를 경험한다
나무는 교훈이나 비결을 설교하지 않는다
삶의 가장 근원적인 법칙을 노래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