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미가 축구를 못 하고. 박찬호가 피아노를 못 치는 것이 문제는 아니잖아요. 누구나 모든 분야를 다 잘할 필요는 없는 거죠.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설정하지 못하고, 누군가 정해준 방향으로 가야 해서 문제가 되는 것 같아요.”
소설가 전석순(38) 씨를 김유정문학촌에서 만났다. 2011년 ‘철수사용설명서’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전 씨는 그 책을 통해 10여 년 전에 했던 이야기가 아직도 유효하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했다.
# 청춘에 관한 이야기 ‘철수사용설명서’
‘철수사용설명서’는 평범한 29세 백수 철수에 관한 이야기다. 철수의 제품 규격 및 사양으로 시작하는 도입부와 제품 보증서가 담긴 마지막까지, 이 책은 철수를 기계처럼 설명하고 그렇게 취급한다.
“당시 꽤 파격적인 내용이었어요. 철수를 냉장고나 세탁기 등 기계처럼 취급하고 스펙으로만 판단해도 괜찮다고 표현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사람들을 스펙으로만 판단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상황이 나아진 것이 아니라 더 나빠진 것 같아 당황스럽죠.”
# 30대의 목소리로 쓴 새로운 ‘춘천’
전 씨는 올 초 ‘춘천, 대한민국 도슨트 4’라는 책을 냈다. 출판사에서 춘천 출신으로 여전히 춘천에서 글을 쓰고 있는 그에게 ‘한국의 땅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 시리즈 가운데 춘천 편을 청탁한 것. 처음엔 거절했다. ‘나보다 더 잘 쓸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거야’라는 마음이었다. 출판사는 거듭 요청했다. 30대의 목소리로 1990년대나 2000년대 춘천에 관한 이야기를 원한다 고 했다. 전 씨는 기존의 춘천 소개서와 다른 결로 읽힐 수 있는 책을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수락했다.
태어나서 살고 있는 곳이라 다 알 것 같았는데, 막상 글을 쓰려니 모르는 게 많았다. 그는 기사와 인터뷰, 단행본, 영상 등 많은 자료를 찾아보며 춘천에 대해 많은 것을 새롭게 알게 됐다고 했다.
“익숙한 공간인데, 그곳에 깃든 이야기나 사연이 더해지면 그 공간이 새롭게 보이잖아요. ‘춘천’을 읽으시는 분들도, 그런 감정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 김유정문학촌 상주 작가
김유정문학촌의 상주 작가가 된 전 씨는 4월부터 매일 김유정문학촌으로 출근하고 있다. 그는 매일 출근하는 것도, 4대 보험이 적용되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김유정문학촌을 소개하는 원고를 매달 써야 하고, 연말까지 문학촌을 홍보하는 유튜브 영상도 6편 찍어야 한다.
춘천에서 활동하는 작가와 감독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과 함께 학교를 찾아가 ‘찾아가는 문학교실’도 운영하고, 문학상담소를 통해 독서와 글쓰기 등 문학과 관련된 고민을 함께 풀어 나가고 있다. 김유정문학촌의 SNS 계정을 만들어 홍보하는 것도 그의 일이다.
“예전에 김유정문학촌은 잠깐씩 둘러보고 가는 곳이었는데, 이제 이곳에서 매일 김유정 작가와 문학촌을 홍보하는 일이 하 게 됐네요.”
# 그리고, 소설가 전석순
상주작가가 되기 전 그의 하루 일과는 단순했다. 읽고 쓰기의 반복이었다. 카페를 갈 때도 있고 도서관을 갈 때도 있지만 항상 하는 일은 읽고 쓰기의 반복이다. 읽고 쓰는 내용은 항상 다르지만, 표면적으로는 단순해 보이는 작업이었다. 요즘은 출퇴근과 함께 김유정문학촌 홍보라는 새로운 업무가 주어졌지만, 소설 구상은 늘 그의 일이다.
“무인사회에 대해 주목하고 있어요. 사람을 한 명도 안 만나고 살 수 있는 세상이 곧 올 것 같아요. 법률 상담도 인터넷으로 하고, 은행에 가서도 대면 창구보다는 ATM 등 자동금융거래단 말기로 일을 처리하죠. 사람을 만나는 일이 큰 권력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 코로나19 여파로 더 심화 된 것 같기도 한데, 그런 무인사회에 대해 글을 써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