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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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54

2020.7
#봄내를 꿈꾸다
백세시대 멋진 골드 7
산골 유학생 돌보는 김화림
아이들도 돌보고 홀몸노인도 보살피고

사북면 고탄리 ‘별빛산골교육센터’.

이곳은 주로 서울 경기 지역에 거주하는 아이들이 농촌 유학을 와서 마음껏 뛰어놀며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마을공동체다.

이 마을에서 농가 홈스테이를 하는 아이들을 돌보는 김화림 씨가 이번 달 백세시대 멋진 골드의 주인공이다.




풍이 할머니 김화림. 72세. 산골 유학생 농가 홈스테이 운영 9년차. 5학년 손자 이풍원의 할머니라 풍이 할머니라는 친근한 이름이 붙었다.


“스물두 살에 산골로 시집와서 평생 농사짓고 애들 키우며 살았어요. 사람들 만나서 얘기하고 지내는 거 좋아해서 모임에 총무나 회장직 맡아서 봉사활동 많이 했죠. 그런데 그런 것도 나이 제한이 있더라고. 나는 아직 팔팔한데 제한을 하니 살짝 우울해지려고 하던 차에 농가 홈스테이를 맡게 됐어요.”


이곳에 유학 온 아이들은 홈스테이 농가에서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간다. 방과 후에는 센터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다가 저녁까지 먹고 7시에 농가로 돌아온다. 이곳에는 ‘풍이 할머니 농가’ 말고도 ‘애호박 할머니 농가’, ‘오이넝쿨 할머니 농가’ 등 아이들이 부르기 편한 이름의 농가들이 홈스테이를 맡고 있다.


“할 일이 많아요. 아침에 밥 해 줘야지, 저녁에 놀아 줘야지. 아이들이 2주에 한 번씩 집에 가는데 그러면 대청소며 이불 빨래며 해야지. 그래도 보람 있는 일이죠. 초등학교 때 데리고 있던 아이들이 대학생이 돼서 방학이면 찾아와요. 얼마나 대견한 줄 몰라. 옛날에 할머니가 해준 음식 먹고 싶은데 어디 가도 못 먹는다며 찾아온다니까.”


1년을 데리고 있던 아이부터 6년을 데리고 있던 아이까지 그녀의 집에서 함께 지낸 아이들이 족히 10명은 넘는데 이제는 세다가 몇 명인지 잊어버렸다고 한다.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평소 같으면 농가에서 아침만 먹이면 되는데 아이들이 학교와 센터에 나가지 못해 몇 개월 동안 삼시 세끼 해 먹이느라 힘들었단다.


“아이들은 또 얼마나 심심했겠어.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무리 재미있게 놀아 줘도 한계가 있잖아. 아이들이 트럭 타고 드라이브하는 것을 좋아해서 할아버지가 자주 바람을 쐐 줬지.”






홀몸노인 위해 반찬 만들어



“할머니 덕분에 편식이 없어졌어요. 명이나물, 고사리나물, 돌나물 같은 야채 반찬도 많이 해주시는데 다 맛있어요. 무엇보다 저희를 너무 잘 챙겨주세요. 엄청 깔끔하셔서 가끔 방이 어질러져 있으면 돼지우리 같다고 혼내는데 그것도 좋아요. 잘 해줄 때 잘 해주고 혼낼 때는 혼내는 똑 부러지는 할머니세요.”


경기도 성남에서 유학 온 4학년 주현이는 엄마가 해주는 음식보다 할머니가 해주는 음식이 맛있다며 풍이 할머니 농가에서 홈스테이를 하게 된 것을 행운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매주 수요일은 풍이 할머니가 특히 바쁜 날이다. 지난해부터 마을에 혼자 사는 어르신들에게 드릴 음식을 직접 만드는 날이기 때문이다. 정성껏 만든 도시락을 배달하는 일은 아이들의 몫이다.


“저도 늙어가는 처진데 그래도 건강해서 이렇게 음식 나눔을 할 수 있으니 감사한 일이지요. 혼자 사는 어르신들 외롭지 않게 아이들이 도시락도 배달하고 마주 앉아 얘기도 나누고 오니 교육적으로도 좋고.”


풍이 할머니는 워낙에 요리를 잘하기로 유명하다. 그런데도 어디 새로운 요리 강습을 하는 곳이 있으면 부지런히 가서 또 배운다. 안 하면 자꾸 까먹으니까 배운다며 겸손하게 말했지만 뭔가 계속 배우고 도전하려는 긍정적 에너지가 느껴졌다.




홀몸노인들을 위해 도시락을 준비하는 김화림 씨(왼쪽에서 두 번째)와 마을 주민들



나이 들어도 일관된 아름다움


2남 1녀의 자녀를 두고 있는 그녀는 주변에서 ‘독립적인 여성’으로 통한다. 큰아들은 서울에, 작은아들은 같은 마을에, 딸은 춘천 시내에 살고 있는데 자식들 생활에 거의 간섭하지 않고 본인 인생을 살기 바쁘다.


“자식인데 늘 들여다보고 잘 해주고 싶지. 근데 그러기 시작하면 진짜 내 생활이 없어질 것 같아서. 수요일에 반찬 만드는 거 말 고도 한 달에 한 번씩 노인정에 반찬 해주는 게 있는데 그러려면 시장도 봐야지 바빠.”


일주일에 한 번씩 시내에 나가 친구들과 밥 먹고 차 마시는 재미도 포기할 수 없다. 젊었을 때는 시내에 사는 친구들이 부러웠는데 지금은 오히려 친구들이 산골에 사는 자신을 부러워한다며 웃는다.

순박하면서 귀엽고, 그러면서 뭔가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풍이 할머니. 그녀의 매력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살아내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멋이 아닌가 싶었다.


풍이 할머니를 늘 곁에서 지켜보는 센터의 한 선생님은 “너무 멋진 분이세요. 나이 드신 분들에게 쉽지 않은 일인데 늘 일관된 모습으로 아이들을 대하시는 모습이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센터에서 농가에 요구하는 아이들을 대하는 규칙이 있는데 정말 철저하게 지키세요. 저도 나중에 풍이 할머니처럼 늙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할머니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풍이 할머니. 그녀처럼 살 수 있다면 나이 드는 게 두렵지 않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