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간 30분에 걸쳐 각기 다른 사설 담은 12곡 막힘없이 노래
소리 공부 4년 만에 각종 국악경연대회 휩쓴 ‘국악 신동’
‘경기 12잡가’를 완창하는 안유빈 양(2019.11.24.)
‘12잡가雜歌’란 우리 노래가 있다. 100년 전 조선 시대 말기 서울·경기 지방 소리꾼들이 불렀던 속요俗謠로, 현재 국가무형문화재 57호이자 경기 명창들의 주된 연주곡이다. 경기민요의 핵심으로 무대 중앙에 앉아 부르기에 좌창坐唱이라 하기도 한다.
세련된 가사와 미려한 창법이 돋보이는 12잡가는 유산가, 적벽가, 제비가, 집장가, 소춘향가, 선유가, 형장가, 평양가(8잡가) 와 달거리, 십장가, 출인가, 방물가(잡잡가) 등 총 12곡으로 구성 된다. 원로국악인 묵계월·이은주·안비취 명창이 12잡가 예능 보유자들이다.
이 경기 12잡가를 춘천시 사북면 지촌초등학교 5학년 안유빈 양(11)이 완창, 국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4학년 때인 지난 해 11월 24일 서울인사아트홀에서 12곡 전체를 3시간30분에 걸쳐 흐트러짐 없이 불러 최연소 완창 기록을 세운다.
“7살 때부터 배웠어요. 할머니께서 국악학원에 다니면서 취미로 소리를 하셨는데, 할머니를 따라다니다가 저도 해보고 싶어서 시작했어요. 노래가 신났고 재미있었어요.”
남다른 소질이 있었던 것일까. 소리를 배운 지 불과 2개월 만에 KBS국악프로그램에 출연해 인기상을 받았다. 그때부터 사북면 원평리 집에서 경기도 김포에 있는 국악학원을 오가며 본격적으로 소리 공부를 시작했다.
매주 토요일 아침 7시면 할머니와 함께 원평리 집에서 출발해 춘천시내로 나와 지하철 혹은 버스 편으로 김포로 향했고, 학원에서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공부한 후 밤 10시가 넘어서야 귀가하는 일과를 4년째 이어오고 있다. 어린 나이에 소리를 배우러 멀리 김포까지 다니는 게 지루하거나 힘들진 않을까.
“아뇨, 재미있어요. 가끔 엄마랑 가기도 하는데, 엄마는 처음 엔 국악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는데, 점점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기뻐요.”
재능은 금방 드러났다. 8살 때인 2017년 ‘대한민국평화통일국악경연대회’에서 초등부 금상을, 9살 때는 ‘안비취대상 전국민 요경창대회’에 출전해 초등부 금상을, 10살 때는 같은 대회 초등부 최우수상을 받았다. 지난해 열린 제8회 청주아리랑 전국국악 경연대회에서도 유초등부 대상을 받는 등 출전하는 대회마다 두 각을 드러냈다.
-선생님은 누구시니?
“노, 경 자 미 자 선생님이세요.”
어린 소녀답지 않게 존댓말 표현이 정확하고 자연스러웠다. 스승인 노경미 경기명창에 대한 존칭 역시 각별했다. 소리 공부 외에 꽹과리, 장구도 익혔으며 가야금도 배우는 중이다. 해마다 학예회 때는 사북면 어르신들을 초청해 효孝공연 코너를 갖기도 한다.
지난날 예인들은 ‘스승을 넘어서는’ 청출어람靑出於藍을 가장 큰 영예이자 제자의 도리로 알았다. 하지만 21세기에 출생한 신세대 안유빈 양의 꿈은 훨씬 크고 넓었다.
“우리 민요가 아직 세계에 잘 알려져 있지 않잖아요? 세계적으로 우리 민요와 소리를 널리 알리는 그런 명창이 되고 싶어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는 사실을 어떻게 간파했던 것일까. ‘백문이불여일견’이라, 인터넷 유투브(YouTube)에 서 ‘안유빈 경기잡가’를 검색, 어린 소리꾼의 당차고 싱그러운 노래부터 감상해 보시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