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7억 복권 대박 봄내골에서 터졌다
우리나라 반백 년의 복권 역사에서 최고 금액의 당첨금 대박이 봄내골에서 터졌다. 무려 407억2,295만원에 이르는 로또복권 19회 차(6월 20일 현재 916회 차) 1등 당첨금이었다. 2003년 4월 12일 SBS TV의 공개추첨을 통해 당첨된 이 금액은 강산이 두 번 바뀐 지금까지도 독보적으로 최고액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단군 이래 최고액인 셈이다.
“춘천에서 복권 대박이 터졌다!”는 소식이 삽시간에 퍼지면서 ‘복권의 명당’이라거나 ‘복권의 성지’라는 별칭까지 얻게 됐다.
어찌 보면 거북하고 호사스럽기 그지없는 봄내골의 이 별칭은 정상의 당첨금 기록이 깨지지 않아서인지 아직도 무슨 신화처럼 심심하면 주민들 사이에 회자膾炙되고 있다.
명당에서 거머쥔 단군 이래 최대액
호사가들은 지난 5월 23일 추첨한 제912회 차 로또복권 1등(당첨금 14억9,350만원)이 다시 이 고장에서 터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저마다 복권 명당이라고 호들갑을 떨며 당시를 다시 떠올렸다.
전국적인 관심을 모은 복권 대박이 터지기 전후에도 당첨 소식은 간간이 이어졌다. 1970년대 주택복권 1등(500만원) 당첨을 비롯, 크고 작은 복권 당첨들이었다.
그렇다면 봄내골은 과연 복권의 명당인가?
어느 풍수 전문가는 방송에 출연해 “분명 복권의 명당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다 “신비스러운 풍수의 작용이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도움을 주는 요소들이 분명 자연 속에 잠 재돼 있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이런 내용이 방송된 TV 화면 하단에는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개인적인 의견’이라는 자막이 주석으로 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춘천이 복권의 명당이라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인다. 사상 최고 액수의 당첨금이 나온 데다 1등 당첨 소식이 심심찮게 들렸기 때문이다.
로또 복권 추첨 장면
중앙로2가에는 복권 마니아들에게 널리 알려진 복권가판점이 있다. 이곳이 바로 초대박 신화를 탄생시킨 곳이다. 그 이전에도 당첨금 8,000만원의 주택복권 1등이 두 번이나 나왔고 그 이후에도 로또 1등 당첨이 세 번이나 더 나왔다. 제376회(2010년 2월 13일) 19억원, 제406회(2010년 9월 11일) 21억원, 제 840회(2019년 1월 5일) 20억원의 당첨금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복권가판점과 50m 거리에 있는 복권 판매점 역시 두 차례나 1등 당첨자를 배출했고, 인접한 두 군데의 판매점에서도 각각 두 차례와 한 차례씩 1등 당첨자가 나 왔다는 것이다.
물론 복권이 많이 팔려 확률상 우위가 되거나 어쩌다 재수가 좋아 당첨되었다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횡재의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고 재수가 좋았을 뿐이지 도드라지게 행운 이 깃들고 운수가 좋은 곳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긴 전북 익산시에서도 제 907회 로또복권(2020년 4월 18일) 추첨에서 1등이 나온 후 2등이 3주 연속 무더기로 쏟아져 화제가 된 적이 있다.
‘007작전’처럼 이뤄진 당첨금 수령
국내 복권 사상 최고액의 당첨금을 거머쥔 봄내골 일확천금一攫千金의 주인공은 당시 40대 초반의 경찰관으로 부인은 간호사인 맞벌이 부부였다.
이 복권은 중앙로2가 로또복권 가판대에서 의경에게 심부름을 시켜서 샀다. 복권 숫자 6개가 찍힌 단돈 1만원짜리 한 장이었다.
좋은 꿈을 꿨거나 행운에 대한 기대가 부풀어서가 아니었다. 당첨 확률이 814만5,000분의 1로 희박해 막연한 기대만 가졌었다. 추첨 방송을 보면서도 4등에 당첨됐겠거니 여겼다. 나중에 확인한 결과 1등에 당첨된 사실을 알고 밤잠을 설친 후 이튿날 가족들에게 털어놨다.
뒤늦게 행운의 숫자 6개(6, 30, 38, 39, 40, 43)를 꼼꼼히 재 확인한 후 국민은행 춘천지점에 연락을 했다.
국내 복권 사상 최고액인 407억원의 복권을 탄생시킨 중앙로2가 로또 판매점
이때부터 지점이 발칵 뒤집혔다. 직전 18회 차의 1등 당첨자가 나오지 않아 이월된 157억원에다 당회분 250억원을 합쳐 총 407억2,295만원인 거액이었기 때문이었다. 즉시 신원 노출에 따른 휴유증을 막기 위해 철저한 보안 유지에 들어갔다. 당첨금 수령 절차도 동선動線을 여러 번 사전 점검 해 타인의 접촉을 완전 봉쇄한 가운데 ‘007작전’을 하듯 이뤄졌다. 실수령액은 소득세 23%를 제외한 313억5,667만원이었다.
이 와중에 가까운 사람들을 통해 입소문이 전해졌다. 사실 확인과 갖가지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과 단체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당첨자 가족들은 일상생활이 마비될 정도의 몸살과 후유증을 앓았다.
결국 직장에 사표를 내고 잠적했다. 세인의 관심을 피해 해외여행을 다녀온 후 거처도 당시 서울의 최고급 아파트로 옮겼다. 이민설 등 온갖 억측과 소문이 꼬리를 물었다.
이런 가운데 당첨자 가족을 후유증과 부작용에서 보호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해졌다. 지역의 관심과 움직임에 화답이라도 하듯 당첨자가 당첨 2주 만에 취한 선행도 대박이었다.
우선 복권 심부름을 한 의경에게 사례금을 줬다. 그리고 사회복지재단 설립을 위해 강원일보사에 20억원, 자신이 근무하던 춘천경찰서 희망장학회에 10억원, 두 자녀가 다녔던 초등학교에 2억원 등 모두 32억원을 선뜻 쾌척했다. 그 이후에도 봄내골에서 선행을 이어가 큰 감동을 안겨줬다.
전국 경찰서 가운데 최우수장학회로 발돋움한 희망장학회의 산파역을 맡은 후 지금도 꾸준히 후원자로 활동하고 있는 강원 경찰의 대부격인 전수산 전 춘천경찰서장은 요즘도 가끔 당첨 자와 조우遭遇하고 있다.
당첨자의 근황을 묻자 “지금도 공직에 몸담았던 정든 봄내골을 떠나게 된 것을 아쉬워하고 있다”면서 “우리 사회의 귀감이 되는 삶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알려줬다. 또 인터넷 복권 사이트에는 “큰돈을 탕진하지 않고 기부활동을 한 후 사업가로 헌신하고 있다”고 당첨자의 미거美擧를 복권사업 우수사례로 소개하고 있다.
이외에도 믿기조차 어려운 일들이 알음알음 전해지고 있지만 베일에 가려져 있던 비하인드 스토리들이 뒤늦게 들춰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택복권으로 점화된 복권 열풍
세계의 복권 역사는 무척 길다. 원시적 형태이기는 하지만 중국 진나라와 로마 시대부터였다.
근대적 복권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476년 이탈리아의 도시국가인 모데나에서 국가의 세입을 늘리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보다 훨씬 뒤인 1947년 제14회 런던 올림픽 출전비를 마련하기 위해 발행했던 올림픽후원복권이 효시이다.
그 후 1969년 9월 15일 주택복권이 발행되면서 전 국민의 관심 속에 대중화의 물결을 타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최초로 정기 발행하기 시작한 주택복권 1회는 서울에서만 50만 장이 팔렸다. 한 장의 판매가격이 100원(당시 청 담배 한 갑 가격과 같음)이었으니 총 수입이 5,000만원이었던 셈이다. 이때 1등 당첨금은 300만원이었다. 무슨 당첨금이 그렇게 적냐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당시 서울의 서민주택 한 채 값이 200만원 안팎이었으니 결코 적은 돈은 아니었다.
숫자가 적힌 원형 과녁 회전판에 화살을 쏴 당첨번호를 정하는 과정이 전국에 생중계됐다.
“준비하시고~ 쏘세요!” 하는 유행어가 이때 만들어졌다. 손에 복권을 움켜쥐고 어느 숫자에 화살이 꽂혔는지를 보여줄 때는 누구나 돈벼락을 맞기를 고대하면서 가슴이 뛰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훗날 “쏘세요!”를 외쳐대는 이 방식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시해 사건을 떠올리게 만든다는 이유로 사라졌다. 대신 숫자가 적힌 공이 뒤섞여 회전하다 구멍으로 빠져나오게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1등 당첨금도 1978년 1,000만원으로 오른 후 1981년 3,000만 원, 1983년 1억원, 2004년 5억원으로 가파르게 수직 상승했다.
1947년 올림픽후원복권이 발행되고 우리나라 복권의 대명 사격이었던 주택복권이 2006년 없어지기 이전에도 단기적이기는 하지만 즉석복권 등 숱한 복권이 발행됐었다.
바로 애국복권(1956년 전쟁복구비 충당을 위해 10회 발행)을 비롯, 산업박람회복권(1962년), 무역박람회복권(1968년), 서울올림픽복권(1983년부터 1988년까지 298회 발행), 엑스포복권 (1990년 발행된 즉석복권) 등을 꼽을 수 있다.
407억 로또 대박 주인공의 기부로 강원일보 사회복지재단과 춘천경찰서 장학회의 선행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건전한 복권문화 정착되길
복권 열풍은 주택복권 독주 시대의 마감과 함께 새로 등장한 로또복권(최초의 온라인복권)이 등장하면서 더 뜨거워졌다.
이 바람에 2003년에는 국내 연간 복권판매액이 무려 4조 2,342만원으로 치솟았다. 가히 열풍이 아니라 광풍이라고 표현할 만했다.
결국 복권시장의 90% 이상을 독차지하기 시작한 로또복권의 위세에 밀려 관광복권과 녹색복권 등도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고 말았다.
이미 916회차 발행(6월 17일 추첨권)이 끝났지만 돈벼락을 맞은 당첨자들이 모두 행복을 누리고 있을까? 전혀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갑자기 안겨진 횡재를 자신의 실력 덕분인 것으로 착각해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을 한꺼번에 갈아엎어 버린다.
이런 가운데 여러 가지 시행착오가 거듭되면서 대박이 쪽박으로 바뀌게 되는 게 삽시간이다. 그래서 1등 당첨자들의 개운치 않은 몰락 스토리가 차고 넘친다. 심지어 결혼 20년 차였던 어느 50대 부부는 1등 당첨 후 남편의 폭언과 무시에 항의하다 망치로 남편을 살해하는 끔찍한 범죄를 저질러 쇠고랑을 차고 마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로또 1등 당첨이 몰고 온 비극이요, 저주가 아닐 수 없다. 한탕주의를 위한 몰빵 구매와 묘행에 기댄 사행성 복권구매가 건전한 사회의식을 좀먹고 있기도 하다.
“엄청난 돈은 얻었지만 평범한 일상생활을 잃어버렸다”는 대박 당첨자의 말이 “인간의 행복은 주변 환경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달렸다”는 존 로코의 말을 연상시킨다.
묻지마식 복권 열풍에 매달려 건전한 복권문화를 그르치게 되는 것도 오로지 마음먹기 나름임을 뒤늦게 읽게 된다.
김길소 한국전래오락연구소장. 춘천 태생. 1970년 강원일보사에 입사해 편집국에서 강원도 전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취재했다.
편집국장, 논설주간, 상무, 전무이사를 지낸 후 언론중재위원회에서 위원과 부위원장으로 언론사와 피해자의 중재 역할을 해 왔다. 사진제공 강원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