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5월 5일 평온한 휴일을 보내던 춘천에 난데없이 공습경보가 울리며 한바탕 떠들썩했던 사건이 있었다. 당시 적성국가였던 중공의 민항기가 춘천 미군기지인 캠프페이지에 불시착한 것이다.
중공과의 수교를 앞당긴 역사적인 사건으로 평가받는데, 춘천에 비행기가 불시착했던 일은 일제강점기인 1934년에도 있었다. 비행기를 직접 보는 것조차 희귀했던 시절이라 그 당시에도 큰 화제가 되었던 사건이었다.
춘천에 불시착한 비행기의 조종사는 프랑스의 여류비행가로 전년도인 1933년에 이미 프랑스 파리에서 일본 동경까지 왕복 장거리 비행에 성공했던 인물이다. 당시에는 연료 보급을 위해 여러 도시를 경유해야 하였는데 일본 동경에서 출발하여 서울에서 급유를 받아 다시 상해를 거쳐 북경으로 가야 했다.
20일 동경 하네다를 출발하여 경성으로 향하고 날라오다가 도중에 소식이 단절되었던 블란서 여류비행사 ‘일즈’양과 그 비행기는 濃霧(농무) 때문에 방향을 잘못 잡고 또 가솔린의 결핍으로 인하여 강원도 춘천군 동면 장학리에 불시착하였다. 그러나 기체와 탑승자는 모두 무사하여 ‘일즈’양이 직접 춘천으로 와서 경성 블란서 영사관에 전화를 걸고 가솔린을 보내라고 의뢰하였다.
춘천에 불시착한 ‘일즈’양의 愛機(애기) (구경하러 모인 춘천시민들이 인상적이다)
별항 ‘일즈’기가 불시착륙한 장학리는 경성으로부터 230리 가량 되는 산간으로 춘천읍의 한강 상류의 河源(하원)인데 이 급 보를 접한 경성 블란서 영사관에서는 ‘테페루’ 영사를 비롯하여 ‘마테루’ 서기관과 ‘오다’ 총독부 통역관, ‘타다마츠’ 체신국 항공계 주임, ‘모리’ 체신 기수 등이 20일 밤 춘천을 향하여 급행하였다.
21일 아침에 ‘푸락크스’ 기관사와 ‘모리’ 기수가 불시착 현장에 급행하여 기체를 검사한 결과 아무 고장은 없으나 적설이 3寸(촌)여에 달하였고 바람도 몹시 맹렬함으로 오늘의 비행은 중지하자는 설이 유력하여졌다. 그리하여 22일 아침에 춘천을 출발하게 될 모양 같다.
<每日申報 매일신보 1934.3.22.>
‘일즈’機(기) 不時着陸(불시착륙) 春川郡(춘천군) 漢江上流(한강상류)에 - 積雪(적설)과 强風(강풍)으로 今朝(금조) 出發不能(출발불능)
‘일즈’기의 불시착으로 춘천에 와 있는 ‘테페루’ 블란서 영사는 ‘라이딩산’ 사원 ‘씨푸란트’씨를 대동하고 21일 오전 11시에 강원도지사 관사로 이범익 지사를 방문하고 ‘일즈’기의 불시착에 대한 도당국의 厚意(후의)에 대하여 감사하다는 뜻을 표한 바 있었다.
<每日申報 매일신보 1934.3.22.>
李知事(이지사)에 謝意(사의) - 佛領事(불영사)로부터
블란서 공중의 여인 ‘마리즈 일즈’양은 제2차의 방일비행을 완전히 성공하고 춘천에 불시착하였다가 경성을 거쳐 24일 경성을 출발하여 목하 자기 나라로 돌아가는 중에 있는데 동양(同孃)이 경성에 들렀을 때 얼마 전 만주국 방문 비행장도에 올랐다가 상근(箱根)의 천험(天險)에서 애처로운 혼이 된 고 박경원 양을 크게 동정하고 “하늘을 집으로 삼고 다니는 우리 비행가로서 이번 우연히 강원도에 불시착하였을 때 고 박경원 양의 생각이 가슴 속에 깊이 떠올라 동정의 생각을 금할 수가 없음으로 그 유족들을 위로하는 의미로 약소하나마 이 돈을 보내달라”는 열렬한 편지와 함께 금일봉을 정상(井上) 체신국장에게 보냈음으로…
<每日申報(매일신보) 1934.3.22.>
고(故)박경원(朴敬元)양(孃)에 뜨거운 동정(同情) - 공중(空中)의 여인(麗人) 일즈양(孃) (사진은 ‘박경원’과 ‘일즈’)
박경원은 영화 <청연>의 실제 모델로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비행사라 전해진다. 실제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비행사는 아니지만 젊은 나이에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난 드라마틱한 삶 때문에 영화화된 인물이다. 영화 제 목인 ‘청연’은 그녀가 타던 비행기의 애칭이다. 춘천에 불 시착했던 일즈양이 당시에는 흔하지 않던 여류비행사로서 느끼는 동질감으로 고인이 된 박경원 양에게 위로의 의미로 금일봉을 보냈다는 내용의 기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