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부터 연재를 시작한 ‘백세시대 멋진 골드’의 주인공을 찾기란 쉽지 않다.
멋진 분들 대부분이 ‘겸손’이 필수라 다들 인터뷰를 고사한다.
이번 달 주인공 정을섭 씨도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주변에 봄내 소식지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아 그들의 권유와 설득으로 겨우 승낙을 받았다.
불의와 싸우는 자식 응원하던 엄마
‘민주화운동 하던 아들의 어머니, 춘천 시민사회의 거름이었던 일꾼, 지금은 손뜨개 인형을 만들며 노년의 행복을 가꾸며 사는 분’
그녀를 추천해준 이들이 공통으로 들려준 이야기다.
젊은 시절 정을섭 씨(86)의 직업은 공무원이었다. 결혼 후 2남 1녀를 키우면서 직장을 관두고 전업주부가 됐다가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자 다시 YWCA에 취직했다.
“큰아들이 서울대 80학번으로 입학했는데 2학년 때 민주화운동으로 투옥됐어요. 정치범들은 독방을 쓰는데 그게 안쓰러워 매일 기차를 타고 영등포구치소로 면회 갔죠.”
처음에는 아들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결국 그녀도 불의에 맞서 싸우는 아들 편이 됐다. 당시는 연좌제가 폐지된 시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가족은 계속 핍박을 받았다.
“남편이 사업을 했는데 계속 뭐가 막혔고 저 역시 계속 퇴사하라는 외압을 받았어요. 방송국 취업 준비하던 딸은 1, 2차 시험에 통과해도 매번 신원조회에 걸려 최종 합격이 안 됐어요. 그래도 한 번도 오빠 원망하지 않고 우애가 좋았죠.”
이제는 이런 얘기 하기도 싫은데 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미안했다. 다 잊고 사는데 찾아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을 들추는 불청객이 된 기분이었다.
“요즘도 저는 드라마 같은 건 잘 안 봐요. 연합뉴스나 YTN 같은 시사뉴스를 틀어 놓고 있죠. 나이 들어도 관심사가 그런 데서 안 벗어나네요.”
시대의 요구에 응답하던 일꾼
정을섭 씨는 춘천 시민사회단체 활동도 많이 했다.
“아마 YWCA 역사상 그런 유능한 일꾼은 전무후무할걸요. YWCA에서 하는 살림도우미 교육과 알선 제도 아시죠? 당시는 살림도우미를 출장파출부라고 했는데 그걸 처음 만든 분이 정을섭 씨예요.”
그녀와 함께 일하고 오랫동안 지켜본 한 지인의 말이다. 지인의 얘기를 그녀에게 들려줬더니 그게 뭐 내가 잘한 일이냐고, 그저 맞벌이가 많아지던 시대라 그런 서비스가 필요해서 만들어진 거란다. 시대의 요구였을 뿐이고 그 요구에 응답했을 뿐이라며 몸을 낮춘다.
환경운동연합 대표 일도 했는데 당시 동강댐 건설 반대 운동과 새만금 간척사업 반대 운동에도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국정농단으로 나라가 시끄럽던 2016년에도 촛불을 함께 밝혔다.
“나이 들어서 어울리지 않게 그랬구나 싶기도 한데 국민이 누려야 할 것을 위정자들이 누리는 걸 보니 가만있을 수 없더라고.”
나이에 맞게 늙는 것 받아들인다
손뜨개 인형을 만든 지는 10년 정도 되었다. 나이 들어 심심해서 시작한 취민데 어느새 전시회를 네 번이나 연 인형작가가 됐다.
“애들 키울 때 양말도 뜨고 옷도 뜨고 많이 했지. 요즘은 떠 줘도 안 입으니 인형이나 뜨자 하고 만든 건데 하다 보니 너무 좋아요. 인형 뜨개지만 인형이라 생각 안 하고 사람을 만든다고 생각해요. 다 만들고 났을 때 얼마나 뿌듯한지 몰라요. 친구들 생일 때 하 나씩 선물해도 좋아요.”
요즘은 인형 뜨개 외에 다른 낙을 찾고 있다. 아들딸이 애들 봐달라, 강아지 봐달라 하며 수시로 엄마를 찾지만 그래도 역시나 남는 시간이 많다. 걷는 게 좋다고 해도 나이가 있으니 한계가 있고 맨날 편하게 누워 있을 수도 없어 뭔가 새로운 관심사를 모색 중이다.
더 늙고 나이 드는 게 두렵지는 않냐고 물었다.
“80, 90세 되면 다들 이제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하지. 그게 다 노인네들이 그냥 하는 소리지. 물론 괴롭고 아플 때는 이제 끝났으면 좋겠다 싶지. 근데 생명이라는 게 마음대로 되나. 하나님이 주신 건데.”
나이에 맞게 살고 하늘에 순응하며 사는 것. 그녀의 얘기를 들으니 갑자기 마음이 편해졌다. 단 한 번의 만남으로도 왠지 의지가 되는 사람. 그런 그를 만나 행복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