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일에 맞춰 청평식암터서 다섯 번째 헌다례 올려
등산로에 포함 유적지 훼손…우회 등반로도 만들어
고려시대 문인 이자현을 추모하기 위한 헌다례 모임
춘천 청평사에는 900년 된 차 유적지가 있다. 이 유적은 고려 시대 문인 이자현(1061~1125)이라는 인물과 관련이 깊다.
이자현은 1089년(선종 6년) 과거에 급제하여 대악서승大樂署 丞이 되었으나, 관직을 버리고 춘천의 청평산淸平山에 들어가서 아버지가 세웠던 보현원普賢院을 문수원文殊院이라 고치고 당堂과 암자를 지어 이곳에서 나물밥과 베옷으로 생활하며 선禪을 즐겼다고 한다. 예종이 사람을 시켜 외삼촌에게 다향茶香과 금백金帛을 보내어 여러 번 불렀으나 사양하였다. 1117년(예종 12년) 예종이 남경南京에 행차하였을 때 왕을 만나기는 하였으나 곧 다시 문수원에 들어가 평생을 수도생활로 일관하였다. 시호는 진락眞樂이다.
이자현이 차를 마시며 수도생활을 한 곳이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유적지 안내판에는 ‘이자현 세수터’라고 표기되어 있어요. 손을 씻는 곳이 아닌 찻물을 받아 그 물로 차를 끓여 마시며 수양을 했던 곳이죠. 세수터라는 표기가 참 아쉽죠. 춘천시의 보다 적극적인 관심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고려 귀족층으로 한평생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음에도 그것을 다 뿌리치고 이곳에 와서 청렴한 생활을 한 이자현 선생의 정신은 오늘날의 현대인들에게 시 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선생의 유적을 지키고 보존하는 것이 후대의 일이고, 저희 헌다례 모임이 그 길을 열 수 있어서 영광이죠.”
청평거사 진락공 이자현 헌다례(차를 올리는 예식) 모임을 이끌고 있는 정미선 회장의 말이다.
이자현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한 헌다례 모임은 2015년 지역의 역사를 공부하는 몇몇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매년 이자현의 기일(음력 4월21일) 즈음에 다례를 올리고 있으며 올해 다섯 번째다.
“비가 와서 걱정이었는데 헌다례를 하라고 비가 그쳐준 것 같아요. 몇백 년 전 인물인 고려시대의 진락공(이자현)께 헌다례를 하는 지금, 우리는 그분과 시공을 초월하여 만남을 갖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시대의, 그분의 생각을 현재 우리가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민복 차림의 회원들이 차와 음식을 준비하고, 회원들의 4배를 시작으로 초헌, 아헌, 종헌례 순으로 헌다례가 진행됐다. 올해는 회원을 비롯해 시민 약 50명이 참가해 다례제를 함께했다.
이날 헌다례에 참석한 육동한 전 강원연구원장은 “선조들의 유서 깊은 차 유적지가 있다는 것에 놀랐다. 이 행사에 참가해서 향 깊은 우리 문화를 잘 알게 됐다”고 전했다.
헌다례를 지낸 곳은 청평 식암터다. 그곳으로 오가는데 안전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참가자 중에 이곳을 오갈 때 절벽 아래로 미끄러지는 아찔한 순간이 있었다. 또한 ‘세수터’라고 적힌 차 유적지는 오봉산을 오가는 등산객들의 등산로로 그냥 밟히고 있어 이날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시민들이 돌을 들어 우회 등반로를 만들기도 했다.
과거 선인의 유적지를 잘 보전하고 사람들에게 그 가치를 알려 문화적 품격을 높이는 것이 문화특별시를 완성하는 지름길일 것이다. 춘천은 문화특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