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의 기쁨은 정상에 올랐을 때 가장 크다.
그러나 나의 최상의 기쁨은 험악한 산을 오르는 순간에 있다.
길이 험하면 험할수록 가슴이 뛴다.
인생에 있어서 모든 고난이 자취를 감췄을 때를 생각해 보라.
그 이상 삭막한 것은 없으리라.
-니체-
대룡산에서 바라본 삼악산 안마산 드름산 향로봉
춘천의 어머니 산
인간이 산을 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늘에 가까워지고 싶어서지 않을까? 신을 만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정상에 올라도 신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이라곤 발아래 펼쳐진 경이로운 광경, 이로부터 유리구슬 속의 세상을 살피는 신의 시선을 유추해 내진 않았을까.
춘천의 지붕인 대룡산에 올라서 산신의 시선을 따라가 본다.
매년 1월 1일 아침이면 춘천 사람은 대룡산에 모여 시산제를 올리고 한 해의 산행을 시작한다.
이렇게 시산제를 올리는 까닭은 대룡산이 춘천의 주산主山이기 때문이다. 대룡산은 춘천의 지붕으로 춘천 사람의 어머니 품속 같다.
대룡산의 한 줄기가 흘러내려 소양강 곁에 자리를 잡으니 이 산이 봉의산이고 춘천의 진산鎭山이다.
대룡산이 춘천의 진산인 봉의산을 낳고 따뜻하게 품고 있으니 이 때문에 대룡산을 춘천의 어머니 산이라 부른다.
대룡산은 흙으로 이루어진 육산肉山으로 산등성이가 완만하며 남북으로 길게 이어져 있다.
일단 산등성이에 오르면 완만하게 이어지는 숲길을 만나게 된다.
임도를 따라서 길게 이어진 숲길은 완만하고 넓어서 산림욕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산등성이 곳곳이 산림욕장이어서 산 어디서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어머니 품속같이 포근하다.
대룡산에 전해 오는 두 가지 이야기에서 대룡산의 힘과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하나는 병자호란(1636) 때 춘천 유생인 지계사池繼泗가 춘천향교 대성전에 모셔져 있던 공자를 비롯한
성현의 위패를 대룡산 호성암護聖巖(바위굴)에 옮겨서 보존했다가 안전하게 다시 향교에 봉안한 이야기다.
이 일을 춘천부사 이정형李廷馨이 기록하여 ‘춘천지계사호성비春川池繼泗護聖碑’로 남아 있으며 이 비는 춘천향교 입구에 세워져 있다.
다른 하나는 효자 반희언 이야기로 겨울철 딸기를 먹고 싶어 하는 어머니를 위해 대룡산을 헤매고 다니며 딸기를 찾아내고
병든 어머님을 위해 산삼을 얻어낸 곳이 대룡산이다.
여기에 딸기와 산삼을 찾으러 다닐 때 반희언을 태워주었던 호랑이 또한 대룡산 산신인 호랑이였다.
이처럼 대룡산은 무엇이든 내주는 어머니 같은 산이다.
도심에서 바라본 대룡산 전경
대룡산 활공장에서 바라본 금병산 전경
공지천의 발원지
비나 눈이 쉼 없이 쏟아져 홍수가 지거나 비나 눈이 내리지 않아 가뭄이 들면 고을의 원님은 비와 눈을 그쳐 달라는
기청제祈晴祭와 비와 눈을 내려 달라는 기우제祈雨祭나 기설제祈雪祭를 신에게 올렸다.
춘천에서 이러한 제를 올리는 첫 번째 장소가 소양강과 자양강이 만나는 지점인 용연龍淵이었고(현재는 의암호가 되어 제를 올리지 않음),
두 번째 장소가 대룡산大龍山이다. 둘 다 용龍이라는 단어가 공통적으로 들어 있다. 음양오행에 따르면 용은 방위로 동쪽,
계절로는 봄이며 비를 상징한다. 농사에 있어 물은 소중하고 절대적 가치를 지닌 상징적 존재다.
대룡산 여기저기에서 샘물이 솟아 사계절 물이 끊기지 않으니 대룡산은 춘천의 ‘샘통泉桶(천통)’이라 불릴 만하다.
춘천에서 가장 큰 지천인 공지천도 대룡산에서 발원하니 그 생명력의 근원이 이 산에 깃들어 있음을 공감하게 된다.
신의 눈으로 굽어보는 최고의 조망터
대룡산의 백미는 춘천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산과 도심을 흐르는 강이며 시가지 모습을 헤아려 볼 수 있는 전망대다.
산 정상부의 전망대에 서면 춘천의 산하와 시가지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쪽으로는 삼악산 대금산 주금산 연인산 명지산 북배산 몽덕산 수리봉 화악산이, 북으로는 용화산 청평산 사명산이,
남으로는 유명산 용문산이, 동쪽으로는 가리산이 꿈틀대는 용처럼 시야에 잡힐 듯 가물거린다.
시가지 가운데 봉의산은 도심을 어루만져 주고, 소양강과 자양강은 유유히 도심을 관통하며 가슴을 시원스레 뚫어준다.
가리산 아침놀과 화악산 저녁놀은 그 가운데서도 백미로, 아름답기 그지없다.
대룡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노을은 자연의 순리를 존중하고 스스로 겸손하라 말한다.
산은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정상을 잠시 빌리는 것처럼 자연의 순리인 겸손을 배우는 곳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