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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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49

2020.2
#봄내를 꿈꾸다
백세시대 멋진 골드 2
나누는 사람 정용언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라는 책이 있다.

1993년 출판돼 지금까지 10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다.


“혼자만 잘 살믄 별 재미 없니더.

뭐든 여럿이 노나 갖고

모자란 곳을 두루 살펴 채워주는 것.

그게 재미난 삶 아니껴.”


농사꾼 저자 전우익 씨의 말이다.

사실 잘 살든 못 살든 혼자는 재미가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까.

백세시대 멋진 골드 2호는 전우익 씨처럼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를 외치며 주변 이웃들을 돌보는 정용언 씨다.





이 나이에 일이 있다는 것에 감사


지난 1월부터 <백세시대 멋진 골드> 인터뷰 기사를 연재 중이다. 기사가 나간 후 곧바로 봄내편집실로 멋진 골드 2호를 추천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춘천에 가난한 예술가들 작품도 사주고 자주 만나 밥도 사주는 좋은 어르신이 있다”는 것.

소개를 받고 보니 언제가 시청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적이 있는 분이었다. 그때 품 안에 시집을 쌓아 안고 있던 모습이 생각났다.


“지난번에 전윤호 시인 시집 <정선>을 여러 권 가져와서 나눠주시던 선생님 아니세요?”라고 물었더니 맞다고 했다.

정용언. 나이 68세. 현재 퇴계농공단지에 있는 ‘세가온’이라는 회사의 회장이다.

“말이 회장이지 오너는 따로 있습니다. 저는 그냥 경영만 맡아서 하고 있지요. 도로 표지판 등 각종 철재 구조물을 만드는 회사예요. 제 회사는 아니지만 많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이미 은퇴하고도 남을 나이에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고 했다. 좋은 일 많이 하신다고 들었다 했더니 낚시나 골프 등 따로 취미가 없어서 그저 남들 취미에 쓰는 돈을 나누는 거라며 별거 아닌 양 얘기한다.






예술하는 후배들 고통 나누고 싶다


그의 사무실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벽에 걸린 그림들이다. 서현종, 이잠미, 정현우, 김춘배 등 춘천지역 유명 작가들의 그림이 마치 갤러리처럼 걸려 있다.

“이잠미 화가의 그림은 색감이 너무 좋아요. 정현우 화백은 그림 속에 독특한 내용이 담겨 있어 좋아합니다. 시인 중에는 조현정 시인을 좋아해요. 얼마 전에 <별다방 미쓰리>라 는 시집이 나왔는데 정말 좋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에게 호평을 받고 있지요.”


주로 오전에 사무실에 나와서 일을 보고 오후에는 예술하는 후배들과 만나서 노는데 그게 사는 낙이라 했다.

“혹시 후배들이 선생님이 좋아서가 아니라 술값 내줘서 만나는 거 아닐까요?”

들으면 섭섭할 수 있는 질문을 던져봤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쿨하다.


“뭐 그럴 수도 있겠죠. 그렇다고 해도 뭐 저는 재밌습니다. 요선동에 평창이모네라고 있는데 거기서 막걸리 마시며 얘기 나누면 정말 즐거워요. 예술하는 사람들이 혼이 맑은데 함께 어울리다 보니 저도 사람이 돼가는 것 같습니다.”

작가들의 그림이나 시집을 사주는 것이 그들 생계에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 능력 범위에서 그들의 고통을 분담하고 싶다고 했다.


혹자는 그를 ‘춘천의 메디치’라고 말한다. 15~16세기 피렌체의 예술가들을 후원하며 피렌체를 르네상스의 중심이 될 수 있게 만들었던 이탈리아 명망가를 빗대어서 하는 말이다. 하지만 실제 그가 예술가들을 위해 쓰는 돈이 어마어마한 수준은 아니다. 조금 여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베풀 수 있을 정도다.

정용언 씨를 ‘백세시대 멋진 골드’로 추천해준 분이 이런 얘기를 했다.


“어쩌면 정용언 씨의 기사가 나가면 그 기사를 보고 아, 왜 나는 그 생각을 못 했지? 하면서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에 관심을 가 져 줄 사람이나 기업이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소망도 있습니다.”



전국소년체전 강원도대표로 선발된 춘천복싱체육관 소속 복싱 꿈나무들과 파이팅을 외치는 정용언 씨(왼쪽에서 두 번째)



복싱 꿈나무 키우는 할아버지 회장님


정용언 씨는 젊은 시절부터 운동을 좋아해서 스포츠 꿈나무들에게 관심이 많다. 30년 동안 야구협회에서 일하며 야구 꿈나무들을 키웠고 지금은 춘천시복싱협회 회장으로 있으면서 복싱 꿈나무들을 돌봐주고 있다. 복싱이라는 종목의 특성상 가정형편이 어려운 청소년들이 많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만나 밥도 사주고 특별히 더 어려운 청소년들은 장학금을 주거나 비타민, 녹용 같은 영양제를 구해다 먹인다.


아이들은 정용언 씨를 ‘할아버지 회장님’이라 부르며 매우 잘 따른다.

“지금까지 춘천이 소년체전에서 메달 하나 없었어요. 올해 서울에서 소년체전이 열리는데 우리 춘천복싱체육관 아이들이 도 대표로 많이 선발됐어요. 이번에 유망주들이 많은 만큼 메달 획득이 가능하리라 확신합니다.”


젊어서 싸움질도 하고 그래서 누군가를 아프게 한 적도 많기에 그는 늘 반성하며 살고 있다고 했다. ‘나누며 살자’를 생활신조로 삼고 사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신기한 사실은 나눌수록 항상 더 크게 돌아오는 신비한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도 어느 선술집에서 후배들과 막걸리 한잔을 기울이고 있을 그를 생각하면 가슴이 따뜻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