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검색 닫기

VOL.352

2020.5
#봄내를 꿈꾸다
백세시대 멋진 골드 5
옛 백양리역 지킴이 박세정
옛 백양리역에 어린 왕자가 산다

경춘선 강촌역에서 백양리역 사이에 옛 백양리역이 있다.

기차가 서지 않는 옛 간이역.

그곳에 가면 생텍쥐페리 동화에 나오는 ‘어린 왕자’ 같은 남자가 홀로 그 역을 지키고 있다.





박세정. 70세. 자타공인 옛 백양리역 홍보대사.

이곳이 좋아 자청해서 지키고 있는 모습이 소행성 b612를 지키는 어린 왕자 같다.


“2010년 전철이 개통되면서 신 백양리역이 크게 생겼죠. 옛 백양리역은 5년 동안 방치되다 2015년 복원이 되었어요. 현재 춘천시 관광과에서 관리를 하고 있어요. 저는 관광과 소속 기간제 근로자고요. 매년 재계약을 하는데, 5년 됐어요.”


옛 경춘선 열차에 대한 추억이 있는 사람들이 멀리서 많이 찾아온다고 했다. 인터뷰 당일도 60대 부부 한 쌍이 찾아왔다. 아침 일찍 전철을 타고 신 백양리역에 내려서 걷다가 이곳에서 잠시 쉬고 신 강촌역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가는 코스가 기막히단다. 역사 안에서 자판기 커피 마시던 추억을 얘기하는 부부에게 그가 직접 믹스 커피를 타준다.





걷고 싶은 백양리길 홍보대사






“봄가을이면 유치원생들이 소풍으로 많이 와요. 가을에는 연극 영화과 학생들이 졸업작품 찍으러 많이 오고. 주변이 조용하고 예뻐서 찾는 이들이 많죠. 철길이 있던 자리가 흙길이니 맨발로 걸어도 좋아요. 주변에 맛있는 매운탕집도 많아요.”


그의 핸드폰에는 백양리의 아름다운 사계가 모두 담겨 있다. 일부러 사진을 찍는 게 아니라 주변 풍경이 너무 예뻐 자기도 모르게 손이 휴대전화로 간다고 했다.


“철길 따라 해바라기를 심었는데 얼마나 예쁜지 모릅니다. 나무 밑에는 상사화를 심었어요. 상사화가 백양꽃이에요. 백양리랑 이름이 똑같잖아요. 백양리역에 가면 백양꽃이 예쁘게 피어있다고 소문나면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지 않을까요?”


6월과 9월이면 메밀꽃이 핀단다. 4월과 7월에 그가 직접 씨를 뿌린다. 메밀꽃을 보러 1년에 500명이 넘는 관광객이 온다며 자랑했다.

“가을에는 요 앞 강변 억새가 또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눈 올 때 철길은 또 어떻고요.”


백양리역에 대한 그의 사랑은 끝이 없었다. 알고 보니 그가 이 곳에 특별한 애정을 갖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작고하신 아버지가 40년 동안 백양리역 철도원으로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곳은 유년 시절 그의 놀이터이자 아버지의 일터였던 것. 이제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홀로 남은 97세 노모를 그가 모시고 산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그는 중 · 고교 시절 기차를 타고 통학을 했다. 당시는 완행열차인 비둘기호가 자주 다녔다고 한다.


“강촌중과 춘천고를 나왔죠. 겨울이면 역사 안에 나무 난로를 뗐어요. 불을 쬐고 있다가 기차가 오면 타고 나갔죠. 그때는 기차가 천천히 달렸어요. 조금 늦게 도착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기차가 서서 기다려줬어요. 인정이 넘치던 시절이었죠.”





박세정 씨의 휴대전화에는 백양리 풍경이 가득 담겨 있다.


아버지의 일터, 손주들의 놀이터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크면서는 시내에 나가 살았다. 퇴계동에 살면서 제일백화점에서 의류 판매업을 했다고 한다. 아들은 원주에서 약국을 하고, 딸은 동물병원 하는 남편을 따라 수원으로 갔는데 자주 손자 손녀들을 데리고 놀러 온다고 했다.


이제 이곳은 손자 손녀들의 놀이터다. 아이들은 뛰어놀고 그는 그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 그가 사랑하는 백양리역과 손주들이 동시에 담겨 있는 사진을 꺼내 보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이곳은 사시사철 아침저녁으로 예쁜 곳이다. 실제 이곳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면 사방이 트여 새벽이면 일출이, 저녁이면 일몰이 예술일 것 같다.


“봄내지에 홍보를 많이 해서 백양리에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도록 해주세요.”

기승전 백양리 홍보다. 일관된 모습이 존경스럽다. 그의 당부가 아니어도 자주 와서 이곳을 걷고 싶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여행을 경험할 수 있는 곳. 그는 이곳을 춘천의 숨어 있는 보물이라고 말했다.

옛 백양리역. 그곳에 가면 꽃에 물을 주고 있는 어린 왕자를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