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옛날 신문에 나온 춘천의 기사와 사진을 보면서 그 시절 춘천사람들의 모습을 기억해보는 코너입니다.
우리 정월 대보름 행사 중 편싸움 놀이가 있다. 횃불, 돌멩이, 줄 등을 이용해 마을별로 편을 나눠 겨루는 놀이이다. 이기는 쪽에 풍년이 든다고 믿었기 때문에 격렬해지기 십상 이었다. 때로는 심각한 부상자까지 나왔다고 한다. 그렇지만 싸움이 끝나고 나면 서로 허물을 묻지 않고 끝난 후에는 다 같이 모여 한바탕 놀이로 마무리하는 대동행사였다.
오른쪽 기사는 1922년도 춘천지역의 줄다리기 대회에 대한 것이다. 음력 정월 18일에 한 차례 겨뤘으나 진 편에서 다시 하자고 하는 내용이다. 기사에 전평리가 나오는데 전평리는 옛 미군부대 자리 부근이다. 이곳이 격전지였으며 위편과 아래편으로 나누어 싸웠다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참여하는 군중의 수인데 수천 명이 참가했다고 한다. 당시 춘천 인구가 7만 명을 조금 웃도는 점을 고려할 때 적은 숫자가 아니다. 춘천 이외 지역에서도 줄다리기 대회가 성황리에 개최됐는데, 수많은 인파가 모이는 행사인 만큼 안전사고의 문제가 제기돼 결국 헌병대와 경찰을 동원해 금지시키기도 했다. 핍박받는 조선 민중들이 같은 마을끼리 편을 나눠 겨루는 줄다리기 대회를 통해 애향심과 협동심이 고양될 것을 두려워한 일제가 일부러 금지시킨 면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덧붙이자면 음력 이월 초이레에 재시합이 시행됐는데 후속 기사에 따르면 정월에 수천 명이었던 군중이 이월에는 3만~4만 명으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아침부터 구경꾼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는 점, 노점에 세워진 음식점이 많았다는 점, 그중 한 주막이 구경꾼으로 인해 무너졌다는 점 등을 통해 당시 줄다리기 대회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줄다리기는 모두가 사랑하는 대동놀이임에 틀림없다.
春川(춘천)에 大索戰(대삭전-큰 줄다리기 시합)
- 수천 군중 모여서 굉장한 줄다리기해
춘천군 읍내 여덟 동을 둘로 나누어 하는 줄다리기 싸움은 삼십여 년 전부터 내려오는 풍속이다. 시민들의 오락으로 음력 정월이면 으레 몇천 명씩 모여서 하는 흥미 있는 놀이이지만 몇 해 동안은 한 번도 못 하고 지내다가 우연히 올 정월에 아동들의 장난이 점점 커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음력 정월 십팔 일 밤에 전평리(前坪里) 너른 뜰에 수천 명의 군중이 모여서 흥미 있게 싸운 결과 아래편이 승리를 거뒀다. 그 광경은 참으로 굉장하였다. 달빛은 명랑하고 밤기운은 온화한 데 비해 양편의 의기양양한 군중이 일심으로 내는 소리는 산이 무너지는 듯하였다.
남녀노소 구경꾼은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니 군중을 따라다니며 눈코 뜰 새 없이 경계하는 경찰의 모습 또한 장관이었다. 오랫동안 하지 못하다가 한번 경기를 시작하자 양편의 군중들은 신이 나서 다시 한번 시합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특히 이번 싸움에 진 웃편에서 오기를 내어 더욱 크게 시합을 벌이자는 제안을 하였다. 재시합을 하는 날짜는 오는 그믐날로 잡았는데 들리는 말에 의하면 이번에 좀 더 재미가 있겠더라(필자 옮김).
<매일신보 1922.2.22.>
제1회 춘천민속경연대회에서 온 힘을 다해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여성들의 모습(1975.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