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옛날 신문에 나온 춘천의 기사와 사진을 보면서 그 시절 춘천사람들의 모습을 기억해보는 코너입니다.
신록이 푸른 5월이다. 봄을 봄처럼 누리지 못한 채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잔인한 봄, 3월과 4월을 보내면서 어려울 때 누가 나서서 도와줄까 생각하게 된다. 온 세계가 힘든 시기를 보내는 지금, 개인과 개인을 넘어 국가와 국가 사이의 협조와 지원 등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한국전쟁을 겪은 지 벌써 70년이 지나고 있다. 당시에 우리나라의 자유 수호를 위해 지원군을 파병한 나라들이 여럿 있다. 그 가운데 우리 춘천과 인연이 깊은 나라가 바로 에티오피아다. 당시 에티오피아는 한국에 6,037명의 군인을 파병했고 이 가운데 123명이 전사했으며 부상자도 536명이나 되었다.
그 참전용사들의 넋과 희생정신을 기리고자 춘천 공지천 부근에 참전비를 세웠고, 1968년 5월 19일 현 에티오피아 참전비 가 있는 자리에서 제막식이 열렸다. 당시 하일레 셀라시에 에티오피아 황제는 76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춘천에서 열리는 제막식에 참석했다. 정일권 총리의 기념사에 이어 “이 참전기념비는 한국과 에티오피아의 우정 기념비로 역사에 오래오래 남아 있을 것”이라는 내용의 즉석 답사를 낭독하여 참석한 모든 이의 심금을 울렸다.
피로 맺어진 두 나라의 끈끈한 우정은 아름답게 이어져 춘천 은 에티오피아의 수도인 아디스아바바와 자매결연을 맺고 두 도시 사이에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해 우리 교민들이 아프리카를 벗어나 귀국할 때 에티오피아가 큰 힘을 써주었고, 우리나라 역시 이에 보답하여 아프리카의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코로나 진단키트를 먼저 지원하였다고 한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자신의 일인 양 도와준 일들이 오래도록 빛나는 인연으로 이어지는 것은 개인만이 아니라 국가 사이에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자유수호의 역사 길이 빛 날터” 셀 황제, 에티오피아 참전비 제막
하일레 셀라시에 에티오피아 황제는 방한 이틀째인 19일 오후 18년 전 한국 동란 때 에티오피아 용사들의 격전지였던 호반의 도시 춘천을 찾아 에티오피아 한국참전기념비 제막식에 참석, 기념비를 제막했다.
이날 귀빈용 헬리콥터편으로 춘천에 내린 셀라시에 황제는 에티오피아 상원의장 아베베 중장 등 16명의 공식수행원을 대동, 정일권 국무총리 및 박충훈 부총리와 함께 예정시간보다 삼십 분 늦은 네 시 정각 경춘가도 입구에 자리 잡은 제막식장에 도착, 군악대의 주악 속에 붉은 카펫을 밟고 미리 마련된 로얄박스에 앉았다.
이역의 황제를 맞은 춘천의 하늘은 황제가 서울에 들어올 때와는 달리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갰으며 소양강 바람을 담은 오월의 훈풍 속에 연도에 몰려나온 춘천 시민들은 손에 손에 태극기와 에티오피아 삼색기를 흔들며 이 원래의 국빈을 뜨겁게 맞았다.
제막식은 지갑종 유엔 참전국협회 사무총장의 개회선언과 3군 의장대의 애국가와 에티오피아 국가 연주 속에 31발의 예포에 이어 시작되었다.
정일권 국무총리는 기념사를 통해 “18년 전 이 땅에 온 에티오피아군은 자유 수호를 위해 공산군과 강원도 지구에서 여러 차례 격전,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오늘 여기 세우는 이 기념비는 침략자에 대한 자유민의 승리의 상징으로 두 나라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때 정 총리의 기념사를 조용히 듣고 있던 셀라시에 황제는 식순에도 없는 즉석 답사를 하겠다고 요청, 로얄박스에서 단상으로 나와 “이 기념비는 한국과 에티오피아 간의 우정의 기념비로 에티오피아군은 여기서 죽었지만 그들은 자유 수호를 위해 싸우다 죽었으며 그들의 전사는 한국과 에티오피아인의 가슴에 오래오래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즉석 답사를 하는 동안 노황제의 음성은 사랑하는 에티오피아 병사들이 쓰러져간 옛 격전지에서 새삼 착잡한 감회에 사로잡힌 듯 잔잔히 떨려 나왔다.
답사를 한 뒤 셀라시에 황제는 기념비 앞으로 다가가 본비를 제막했으며 이어 정 총리·최국방장관 본스틸 유엔 군사령관 등이 좌 · 우비를 제막했다. 이때 구슬픈 진혼의 나팔이 자유 수호를 위해 이역의 산하에서 쓰러져 간 에티오피아 용사들의 영혼을 달랬으며 황제는 기념비에 화환을 바치고 고요히 묵념을 올렸다.
이어 박경원 강원도지사는 기념비를 50분의 1로 축소한 은제 기념비 모형을 황제에게 올렸으며 황제는 기념비 우측에 기념 식수를 했다.
제막식이 끝난 뒤 셀라시에 황제는 의암댐을 시찰, 호수 위에 떠있는 일곱척의 돛배에서 울려 나오는 한국 고유의 고전음악에 잠시 귀를 기울이는 등 아름다운 호반의 한때를 즐긴 다음 올 때와는 달리 귀빈용 리무진을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