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가 내다보이는 기와집골 풍경
조루조 데 키리코 <거리의 우수와 신비> (1914)
- 기와집골
나는 지금도 키리코의 그림 <거리의 우수와 신비>를 종종 떠 올린다. 그 그림은 우수에 가득 차 있다. 어떤 신비함이 내재된, 슬픔 같은 그 그림은 세상과 격리된 영혼의 골목이다. 노란색인지 주황색인지 모를 곧은 길과 굴렁쇠 굴리는 그림자 소녀, 그리고 흰 벽의 긴 건물을 잊을 수 없다. 보이지 않는 어른의 외로운 그림자와 지팡이를 나는 잊을 수 없다.
나는 ‘그 골목에 가면’이란 제목의 시를 쓴 적이 있다. 그 시는 이렇게 시작된다.
늘 그리운 편지처럼 그 골목에 가고 싶다.
그 골목엔 잃어버린 바퀴 때문에 울고 있는 노란 장난감 자동차가 버려져 있고…(중략)
그 골목에 가면 어느 날 지친 구름 몇 송이 솜사탕장수 막대기에 걸려 있다. 그것은 달콤한 피로, 백만 년 동안의 길고 긴 잠인 것이다.
나는 그렇게 긴 잠이 들어버린 골목으로 가려 한다. 모두들 떠 나버린 텅 빈 골목엔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울고 있는 장난감 자동차. 이 노란 장난감 자동차는 바퀴 하나를 잃어버렸다. 그렇게 아이들은 골목에서 무엇인가를 하나씩 잃어 가며 자랐다. 아이들은 골목에서 색색의 알록달록한 구슬을 잃어버렸고, 밤새 곱게 접은 딱지를 잃어버렸고, 비석치기 돌멩이와 공깃돌과 굴렁쇠를 잃어버렸다. 장난감 자동차와 플라스틱 레이저칼과 물총과 장난감권총을 잃어버렸다.
고려시대 칠층석탑과 서부시장
아이들은 말등타기 놀이를 잃어버렸고,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는 술래잡기 놀이를 잃어버렸다. 아이들과 함께 천방지축 뛰어다니던 강아지를 잃어버렸고, 담장 위를 어슬렁거리다가 훌쩍 지붕 위로 사라지는 얼룩무늬의 고양이를 잃어버렸다.
굴뚝에서 저녁 하늘로 솟는 시푸른 연기를 잃어버렸고, 골목 사이로 휘영청 뜨는 달을 아련히 잃어버렸고, 밥 먹어라 철수야아 목청껏 외쳐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를 잃어버렸다. 아이들은 그렇게 무언가를 잃어버리며 성장했고,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그 골목을 떠났다.
그러나 그 골목은 여전히 새로이 태어난 아이들로 재잘거렸고, 그 골목을 떠난 어른이 된 아이들에겐 그 잃어버림이 성장의 흔적으로 오래 남았다.
골목은 그렇게 상실의 곳이 되어 사람들의 가슴에 남았다. 골목은 떠남의 곳이고, 우수에 잠긴 쓸쓸함이 배어 있는 곳이다. 장 난감 자동차가 잃어버린 바퀴를 찾아 떠났을 때 그 골목은 어느새 텅 비어 있었다.
지금 나는 그 비어버린 골목으로 가려 한다. 그 골목엔 아직도 떠돌이 솜사탕장수 한 사람이, 붕붕 구름통을 돌리며 색색의 솜사탕을 만들어 팔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골목으로 가려면 서부시장으로 가야 한다.
옛날, 서부시장을 가려면 요선터널을 통과해야 했다. 터널 왼쪽 계단을 오르면 언덕 위로 조가비 같은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골목은 가파르고 좁고 구불구불했다. 눈을 들면 멀리 한 시간에 한 번씩 춘천역으로 열차가 천천히 들어오는 모습이 내다보이곤 했다.
일러스트 호비(신혜빈)
지금도 그렇지만, 철로가 둥근 호수에 면해 있 어 밤열차를 타고 춘천역으로 들어올 때는 언덕 위 판자촌 풍경이 성냥갑을 쌓아놓은 듯이 오밀조밀했다. 동화의 마을처럼 흐릿한 주황색 불빛들이 완만한 언덕을 가득 채웠었다. 그러나 지금은 반딧불이 같은 판자촌이 다 헐리고 높은 아파트가 들어섰다. 그에 따라 빼꼼한 요선터널도 헐리고, 언덕도 낮아지고, 거리의 폭도 넓어졌다.
강원일보 네거리에서 서부대성로로 쭉 뻗은 도로엔 새로이 선 서부시장 건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건너편으로 고려시대 칠층석탑이 서 있는데, 그 탑을 기점으로 내가 찾아가려는 기와집골 초입새길이 나타난다.
1953년 한국전쟁이 휴전되고 소양로 언덕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오른쪽으론 쪽방이 달린 판자촌이, 낮은 지대의 왼쪽으론 번듯한 기와집들이 들어섰다. 빈부貧富가 확연히 구분된 이 구역은 춘천의 진면목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던 것이 판자촌 구역 자리에 지금은 매머드 고층아파트가 우뚝이 서 있다. 기와집골 바로 위쪽이다. 그리고 다시 올해 기와집골마저 26층 높이의 초고층아파트가 지어질 예정이다. 이제 기와집골은 소양로2가 주택재건축정비구역으로 지정되어 이곳에 거주하던 주민들은 거의 모두가 짐을 싸서 떠났다. 단, 몇몇 집만이 떠나지 못하고 괴괴한 집에서 은거하고 있을 뿐이다. 집집의 대문마다엔 공가空家임을 알리는 빨간 선의 경고문 딱지가 완강하게 외지인을 막고 있다.
담장은 허물어졌고, 마당 안엔 두릅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우거진 잡풀들은 담과 벽을 기어올라 낡은 기와지붕을 점령하고 있었다.
흐려진 풍경의 골목
곳곳이 전쟁의 포탄을 맞은 듯했다. 폐허가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
나는 아내와 동행 중이었다. 아내는 이 소양로 인근에서 태어나 자란 춘천 토박이다. 길 안내꾼으론 딱 안성맞춤이었다. 자기도 이 기와집골을 못 본 지 꽤 오래되었다면서 기꺼이 동행해주었다. 아내는 춘천에 살고 있어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겨울연가 촬영지>가 보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우린 아무도 없는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사방 골목길은 적막했다. 요리조리 골목길은 삭은 철문과 ‘철거’라고 쓴 담벼락 스프레이 글자와 마른 담쟁이덩굴의 뼈대와 가시 돋친 엄나무와 잎도 나지 않은 앙상한 감나무 가지를 보여주었다. 이 비밀의 마을을 우린 무작정 쏘다녔다.
어느 땐 이것저것 제가끔 보느라 서로를 잃어버릴 때가 많았다. 골목 저쪽을 향해 외쳐 부르면 메아리처럼 아내의 목소리가 골목길을 타고 들려왔다. 우린 만났고 또 헤어지기를 반복했다. 우리의 술래잡기는 이따금 느닷없이 나타난 개들과 함께하기도 했다. 고양이 한 마리가 그런 우리의 술래잡기 놀이를 기와지붕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여보, 어딨어요?
감나무 있는 데요.
감나무는 어딨는 데요?
교회 옆이요.
교회는 어딨는 데요?
하늘을 봐요.
아, 저 높은 뾰족탑!
준상이네 집 전경
아내는 나를 찾았고, 나는 이 술래잡기 놀이가 마냥 즐거웠다. 우린 철문에 붙어 있던 우체통이 뜯어진 틈새로 집 안을 훔쳐보기도 했다. 화단이 있는 마당을 에워싼 집 안은 사람이 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깔끔하게 잘 정돈된 느낌이었다. 아마 이사를 한 지 그리 오래지 않은 듯했다. 아, 이집에선 누가 살았을까. 참 행복했던 집 같아. 아내는 만화경 같은 세상을 한참동안 들여다보았다. 유리문 하나 깨지지 않고 꼭꼭 닫혀 있어. 화단엔 무슨 꽃을 키웠을까. 마당도 깨끗이 쓸려 있고. 이 집 주인의 성품을 알겠어. 문에 기댄 노란 손잡이의 삽 한 자루가 주인의 수고를 이야기해 주고 있어. 그렇게 아내의 중얼거림은 고적한 집 안 공기를 마법처럼 휘저었다.
우린 여태까지 허물어진 집과 녹슨 철문과 마구 흩어진 가구와 방문이 뜯겨나간 퀭한 어둠의 공간과 잡초로 뒤덮인 폐허만을 보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깔끔하게 정돈된 집이라니…. 아마 오래 비어 있는 다른 집들도 예전엔 다 이러했을 터이다. 자존심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정결한 사람들의 집이었을 터이다. 분명.
우린 우체통이 뜯긴 집을 벗어나 골목길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다가 배용준을 만났다. 아니 배우 배용준이 분한 준상이의 집을 만났다.
담장 위로 하얀 봄꽃이 피어 있었다. 아내는 자두나무꽃 같다고 했고, 나는 배나무꽃 같다고 했다. 골목길에 아무도 지나다니는 이가 없어 누구에게라도 물어볼 수 없는 처지였다. 그냥 하얗고 순결한 봄꽃이라 부릅시다. 아내와 난 기꺼이 타협했다.
준상이네 집 내부
문이 닫혀 있어 안쪽을 들여다볼 수가 없었다. 간신히 담장 너머로 카메라를 들이밀고 사진을 찍었다. 사진엔, 드라마에서 보던 집안 풍경 그대로였다.
해외에 방영된 겨울연가로 하여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일 본, 중국, 동남아 관광객들이 파도처럼 이 집으로 밀려왔었다. 그 후 차츰차츰 관광객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이제는 배용준 사진 간판만이 이따금씩 찾아오는 낯선 객을 맞이한다.
이제 이 준상이의 집도, 준상이의 이웃집도, 요리조리 골목길을 따라 뻗은 모든 기와집도 모두 사라지고, 이곳에 거대한 공룡의 고층아파트가 우뚝 설 것이다. 오직 추억만이 아련히 명맥을 유지하다가 그마저도 기억이 희미해지면 여기 공룡은 또 다른 삶의 흔적을 이곳에 화인처럼 남기리라.
배용준과 함께 사진을 찍은 아내는 사실 겨울연가를 보지 않은, 아주 드문 사람 중의 하나임을 여기 밝혀둔다.
아내가 웃으며 말했다.
남편 잘 만나 몽마르트 언덕 대신 완전 삭은 기와집골을 다 와 보네….
그리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파란 하늘에 솜사탕 구름이 몇 송이 지나갔다.
우린 아직도 솜사탕장수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어느 골목에선가 솜사탕장수가 날리는 달콤한 구름이 자꾸만 피어 올랐다.
우린 그만 넋을 놓은 채 시간을 까마득히 잊고 말았다.*
최돈선 시인. 춘천문화재단 이사장. 춘천의 골목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그것이 궁금한 시인은 골목순례를 결심했다. 골목은 춘천시민의 가장 깊은 내면이며 참모습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