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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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49

2020.2
#봄내를 품다
김길소의 그때 그 사건 38
봄내골 빙어
설원의 빙판에서 빙어를 만나다


본격적인 얼음구멍 빙어 낚시철을 맞아 의암호로 몰려든 관광객들의 모습(2002.1.13)




봄내골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추운 한랭寒冷지대로 꼽힌다.

그래서 맹추위가 몰아치면 매스콤이 어김없이 봄내골의 날씨를 들먹거린다.

이 중에서도 입춘立春(2월 4일) 추위가 가장 매섭다.

“바짝 추워져야 손맛과 입맛이 한껏 무르익는다”는 빙어氷魚는 해마다 이맘때가 제철이다.





인제빙어축제 인파(2019.1.30.)



24절기節氣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을 전후해 봄내골 호소湖沼와 강에서 넘쳐나는 빙어가 전국의 빙어낚시 마니아들을 몰려들게 만든다.

지난 1973년 소양댐 담수 이후 부쩍 늘어난 개체수로 조황釣況이 호조를 보여 동지섣달 기나긴 밤을 설렘 속에 기다려 온 전국의 마니아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면서 이 고장의 새로운 즐길 거리와 먹거리로 자리 잡았다.




신북읍 소양댐 하류 세월교에 빙어를 잡으러 몰려온 강태공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1995.12.9.)


입춘 전후 넘쳐나는 빙어잔치


전국 어디에다 내놓아도 빙어의 ‘원조元祖’로 불리는 곳이 봄내골이다. 질량質量 모든 면에서 자타가 ‘본고장’ 임을 공인한다.


북한강이 흐르는 구간 곳곳에는 민물고기를 파는 곳이 많다. 남양주와 양평, 하남 등에서 빙어를 파는 업소에는 어김없이 ‘소양강 빙어’라는 팻말이 보인다. 천혜의 청정자연 속에서 자란 깨끗한 빙어임을 내세우려는 암묵적 과시가 담겨 있다. 그만큼 질이 뛰어남이 읽힌다.


인접한 인제군은 1월 18일부터 소양댐 상류의 남면 부평리에 있는 일명 빙어호 일원에서 올해도 예외 없이 빙어축제가 열렸다. ‘함께한 20년, 함께할 20년’을 주제로 열린 이 축제에는 해마다 10만 명이 넘는 방문객 (2018년 11만 3,000명)이 몰려들었다.


또 2003년 닻을 올린 화천산천어축제는 지난해까지 무려 1,800만 명이 다녀갔다. ‘세계 4대 겨울축제’로 발돋움한 후 해마다 새로운 이벤트를 마련,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국적으로도 댐을 막아 호수가 생기거나 강물이 흘러 빙어 개체 수가 늘어난 곳이면 예외 없이 겨울철에 빙어잔치를 열고 있다.

여기에다 서울 근교의 한국민속촌과 서울랜드와 같은 유원지들도 스키와 눈썰매장에 곁들여 겨울철 묘미를 느낄 수 있는 빙어낚시 체험장을 만들어 수십 곳이 성업 중이다.


그러나 봄내골은 다르다. 얼마 전까지 낯익었던 빙어 낚시나 빙어 판매 업소들이 점점 보기 힘들어졌다. 근화동과 위도 배터 부근에 있던 전문 횟집도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겨울철이 되기 무섭게 빙어낚시꾼들이 줄줄이 매달려 있던 소양댐 하류의 명당(콧구멍다리·1967년 소양 댐 건설 당시 공사용 가도로 설치)도 철거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의암호에 배를 타고 나가 그물로 쓸어 담거나 빙판 위에 구멍을 뚫어 떼 지어 다니는 빙어잡이를 즐기던 모습도 내수면 수산계의 해체와 어획 규제에 묶여 불가능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겨울철 추억과 낭만 쌓기

빙어축제장에서 빙어낚시와 회를 즐기는 사람들(2002.1.25.)


‘호수의 요정’으로도 일컬어지는 빙어는 반짝이는 은빛에 투명한 몸을 지녔다. 토종 피라미와 흡사하다. 추운 겨울에 차디찬 얼음물 속에 산다고 동어凍魚라고도 한다. 또 공어公魚, 뱅어라고도 부른다. 공어라고 부르게 된 까닭은 일본 히타치국常陸國에서 세금 대신 빙어를 납입해 공의어용어公儀御用魚라고 부른 데서 유래됐다. 몸은 15㎝ 안팎으로 작고 가냘프며 길쭉하다. 등과 꼬리지느러미 사이에 기름지느러미가 있어 날로 먹으면 고수한 맛이 난다. 활동이 왕성해지는 입춘을 지나면 한껏 통통해진 상태로 오이 향까지 풍긴다.


땅속에서 움터오는 봄기운을 머금어서였을까? 옅은 푸른색을 띤다. 무리 지어 다니는 습성이 있어 어떤 낚시 구멍에서는 뜰채로 걷어 올릴 수 있을 정도로 많다. 그러므로 입질이 없는 포인트를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


동물성 플랑크톤을 먹어 몸집을 키운 다음 4~5월에 호수나 늪으로 물이 들어오는 얕은 냇물의 자갈밭을 찾아 나선다. 알을 낳고 죽기 위해서다. 대부분 1년생이지만 드물게 2~3년생도 잡힌다.


빙어낚시를 하며 즐거워하는 가족들의 모습(2004.1.30.)


냉수성 어종이라 봄 여름 가을에는 깊은 물속에 잠입해 버린다. 따뜻한 윗물엔 올라오지 않는다. 몸집도 키우지 않아 낚시나 그물을 아무리 던져도 걸려들지 않는다. 그래서 자연적으로 빙어잡기가 휴면기休眠期에 접어든다. 제철 빙어낚시는 우선 얼음이 두껍고 탄탄하게 얼어붙는 시점이다.


조선말의 실학자로 농학農學을 가학家學으로 이어온 서유구徐有榘(1764~1845)는 <전어지佃漁志>에 빙어를 가리켜 ‘동지를 전후해 얼음에 구멍을 내어 투망으로 잡는다. 입춘 이후 점차 푸른색을 띠다가 얼음이 녹으면 보이지 않는다’고 적었다. 이를 보면 빙어의 생태는 예나 지 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요즘은 1만 원대의 저렴한 견지낚시줄에 벌레(구데기)를 미끼로 쓴 낚시 여러 개를 달아 한꺼번에 서너 마리씩 잡아 올릴 수 있어 어린아이들과 초보자들도 손쉽게 즐기기 안성맞춤이다.

자잘한 빙어낚시에 만족하지 못하는 꾼(?)들은 송어, 향어, 산천어, 쏘가리를 비롯한 덩치 큰 물고기 잡기에 나서기도 한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겨울철 캠핑 열풍까지 가세해 요즘은 젊은이들 사이에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건전한 겨울 레저로 각광을 받고 있는 추세이다.






춘천호 빙어잡이 (1995.1.20.)


시뻘건 고추장과 어울리는 횟감


먹는 방법은 여느 물고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조리 방법도 지방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다. 하지만 줄기는 거의 비슷하다.


가장 흔한 게 즉석에서 활어로 먹는 거다. 펄떡거리며 살아 있는 걸 곧바로 초고추장을 찍어 입안에 넣는 방법이다. 우선 종이컵 바닥에 시뻘건 초고추장을 깔아 산 놈을 그 안에 집어넣고 흔든다. 초고추장에 골고루 잘 버무려지면 나무젓가락으로 한 마리씩 꺼내 우적우적 씹어먹는다. 이러다 보면 살점과 뼈에서 고수함과 오이향이 씹힌다.


다른 물고기에서 느낄 수 없는 식감에 매료된 마니아들은 “순백의 천국에서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주는 스테미너식食”이라고 극찬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생선은 살아 있어야 최고라는 등식이 여실히 적용되는 대목이다. 이 과정에서는 뼈가 굵고 큰 놈보다는 살점과 뼈가 잘 씹히고 산뜻한 오이향을 풍기는 작고 연한 걸 더 선호한다.


그러나 이 방법은 내수면 어족자원의 디스토마균 감염이라는 위험과 십악十惡 가운데 하나인 살생殺生을 가볍게 여기거나 몬도가네(혐오성 식품 섭취 등 비정상적인 식생활)와 다름없다는 비판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을 꺼리게 만든다.


그 다음이 튀김이다. 빙어에 튀김가루 반죽을 살짝 입혀 기름에 튀기면 아삭아삭하고 고수한 맛이 난다. 풍부한 칼슘을 섭취할 수 있고 디스토마균 감염 위험을 떨쳐 버릴 수 있어 초보자들이 즐긴다.


일본 홋카이도 아바시리 호수 주변에서는 꾸덕꾸덕해진 빙어를 얇은 대나무 가지에 끼워 불에 구워 먹는다. 짙은 기름향에 살맛이 묻혀버리기 때문이다.


이 밖에 샐러드의 마요네즈 대신 초고추장으로 갖은 야채를 섞어 시뻘겋게 버무려 무침으로 먹는 방법과 매운탕으로 끓여 먹는 방법이 있다. 이런 요리법들은 간편 해 주문 후 10분 안에 뚝딱 손님 앞에 대령할 수 있는 저 렴한 것들이다.






다양한 활용 방법 찾아내자



알래스카와 러시아 일본 등 비교적 추운 곳에 서식하던 빙어가 국내에서 크게 증식된 것은 1973년 소양댐 이 건설된 이후부터이다. 일본강점기에도 함경남도 용흥강에서 채집한 빙어를 호수와 저수지에 방류했으나 크게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중앙정부 차원에서 자원증식을 위해 내수면에 향어, 송어, 산천어 등과 함께 빙어를 방류한 시점이 대량 증식의 계기요, 전환점이 되었다.

겨울철에 떼 지어 다니는 빙어를 보면 ‘고기 반, 물 반’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다. 그러나 땅을 내주고 얻은 호수의 보석을 앞에 놓고도 그동안 효용성이 높은 활용방안을 찾지 못해 왔다.


다행히 최근 들어서는 여러 가지 반가운 시도試圖가 눈에 띈다. 우선 인제의 봉산식품이 지난해 10월 국내 최초로 반려동물의 사료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일본사람들이 좋아해 훈제로 가공해 수출에 나서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아울러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은 빙어에서 친환경 플라스틱을 만들 수 있는 미생물을 발견해 상용화를 서두르는 등 다양한 활용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누구나 이스라엘에 가면 꼭 먹어야 하는 현지식이 있다. 바로 갈릴리호숫가에서 파는 베드로 물고기 요리다. 2000여 년 동안 갈릴리 사람들이 즐겨온 음식이 성경과 연관돼 해외 관광객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붕어처럼 생긴 물고기를 튀겨서 향신료도 쓰지 않고 레몬과 양념을 뿌려 먹는 간편한 음식이다. 하지만 한번 먹어본 사람은 누구나 그 맛을 잊을 수 없다고 치켜세우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1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부산 기장멸치도 세월의 흐름 속에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벚꽃과 함께 봄철에 몰려드는 멸치를 찌개와 볶음, 조림뿐만 아니라 횟감으로 다양화하는 데 성공했다.

포항 구룡포는 과메기의 입맛을 부각시켜 지역경제 활성화를 진행 중이다. 앞에서 열거한 이런 사례들은 광활한 호수와 강물을 품고 있어 빙어의 대량 서식지로 발돋움한 봄내골에 안겨주는 시사점이 너무 크다. 빙어 잡기 제철을 맞아 “세상의 모든 것은 누군가의 에너지다” 라는 어느 정유업체의 광고문구를 연상하며 봄내골의 비상飛翔을 꿈꿔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