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푸르른 춘천미술관 앞 위성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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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동玉泉洞은 옥같은 샘물이 솟는 동네란 뜻이다. 동네는 춘천의 진산 봉의산 아래 비스듬히 누워 있는 형상이다.
지금은 샘물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지만 아마도 시청 뒤 춘천미술관 쪽에 샘물이 있지 않았나 싶다. 50년도 더 된 이야기지만 예전엔 미술관 건너편으로 옥천목욕탕이 있었다. 지하수를 뽑아 목욕탕을 운영했던 그곳은 지금 건물이 헐리고 음식점이 들어섰다.
그때나 지금이나 미술관 앞엔 위성류란 이름의 버드나무가 여전히 푸르르다. 현재의 미술관은 이전에 중앙교회였다. 중앙교회가 다른 곳으로 이전한 뒤 교회는 미술관으로 바뀌었다. 버드나무는 누가 심어 놓았는지 이젠 고목이 되었다. 우리나라 버들이 아니어서 어떤 나무인지 아는 이는 드물다.
중국 서안西安 동북쪽 25킬로 떨어진 곳에 함양咸陽이란 진秦나라 수도가 있었다. 이곳을 위성渭城이라 불렀는데 버들이 많았다고 한다. 가지가 늘어지는 모양이 꼭 우리의 수양버들을 닮았다. 하지만 가지가 우리 수양버들보다 더 가늘어서 그 흔들림이 여인의 몸매처럼 낭창낭창한 것이 특징이다. 이 버들을 소재로 중국 당나라 시인 왕유가 지은 시가 전해진다. <송원이사안서送元二使安西>가 그것인데 유명한 이별의 시다.
위성에 아침비 내려 먼지를 씻어내니
객사의 버들잎은 더욱 푸르르네
그대에게 술 한 잔 권해 올리니
양관을 떠나 서역으로 가게 되면/옛 친구 이제 아무도 없네
공교롭게도 중국에서 건너온 이 위성류가 있는 곳에서 골목을 따라 100여 미터 올라가면 중국화교소학교가 자리한 곳이 나타난다. 1969 년 개교하여 2005년에 폐교된 학교이다. 당시엔 150명의 학생이 공부했다고 한다. 교사도 다섯 명이 있었는데 모두 떠나고 현재 강육재 선생님만 화교소학교 건너편에서 살고 있다.
춘천미술관과 옛 옥천탕 자리
도청 턱밑에 있는 고갯길 골목은 자동차가 지나다니기에는 매우 좁은 길이다. 옥천동 골목은 시청 뒷골목과 화교소학교가 위치한 삼각골목을 지나 봉의산 쪽으로 10여 분 더 올라가면 한림대학교 입구에 닿는다. 한림대학교 공학관 뒤쪽 봉의산 기슭엔 춘천혈거유지가 있다.
1962년 건축공사 중에 발견된 곳인데 이 동굴은 신석기시대 사람이 살던 생활유적지로 판명되었다. 당시 세 사람의 뼈가 동굴 가운데 발을 모은 상태로 누워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돌도끼와 돌칼, 돌화살촉, 이음 낚시 등의 도구와 옥과 수정조각, 백마노 등의 장신구, 바닥이 편평한 빗살무늬토기 등이 함께 발견되어 현재 국립춘천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것으로 보아 이 옥천동 일대는 선사시대 주민들이 동굴을 파서 살던 전형적인 혈거지임을 알 수 있다. 들판이 한눈에 내다보이고, 봉의산 뒤로 강이 휘돌아 흐르고, 대룡산이 빙 에워싼 요지였을 터이다. 당시에도 옥천동엔 샘물터가 있었을 것이 고, 그것으로 충분한 식수를 공급받았으리라 짐작된다.
2005년에 폐교된 중국화교소학교
또한 1984년에 여기서 5기의 석곽묘의 흔적을 발견함에 따라 고고학자들은 이 지역이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고분古墳으로 확인하였다. 아마도 이 일대는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고분 이 널리 분포되었으리라 짐작된다. 이것은 역사적으로나 지형적으로나 옥천동이 매우 중요한 생활요처로서 자리했음을 알 수 있다.
옥천동 지도를 크게 들여다보면 봉의산 기슭 아래 한림대학교와 춘천시청이 자리하고 있다. 중앙로 기슭엔 강원도청이 있고, 그 뒤쪽으로 세종호텔이 자리하고 있으며, 중앙로를 좌우로 한국은행을 비롯한 다른 은행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강원도 중심수부로서 옥천동은 제일 중요한 요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 옥천동은 행정적 지명으로서의 이름을 상실했다. 다른 동에 흡수되어 버린 탓이다.
봉의산 기슭에 위치한 신석기시대 생활유적지 ‘춘천혈거유지’
적십자 뒷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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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동 골목길은 언덕을 오르고 내리는 힘든 길이다. 이 골목길들의 연속은 한 편의 동화처럼 자잘하고 여유롭다.
불교포교당 골목엔 이미 시들어가는 능소화가 햇빛을 맞고 있고, 포교당의 은은한 향내가 늙고 붉은 능소화를 애잔히 감싸고 있다.
문득 법구경 한 구절이 떠오른다.
-저 종이는 향을 가까이하여 향기가 나고, 저 새끼줄은 생선을 꿰어 비린내가 난다. 이 문구를 어느 수필가가 간단히 정리하여 수필집을 낸 적이 있다.
-향 싼 종이엔 향내 나고, 생선 싼 종이엔 비린내 난다.
골목길은 사람 하나 겨우 다닐 정도의 좁은 길이나 생각의 넓이가 무한대임을 느낀다. 문득! 무엇인가 느끼는 길이요, 걸으면서 무심히 명상하는 길이다. 하얀 철책鐵柵에 기대어 핀 접 시꽃과 윤기 나는 대추나무, 그 녹색의 여린 열매가 지금 이 간의 형상이다. 얼마 후 다시 이곳을 찾아왔을 때 그들은 여전히 그대로의 모습을 지니고 있지는 못하리라.
몽브레란 찻집은 불어로 나의 꿈이란 뜻이라는데 그 찻집 건너편 왼쪽 골목엔 거대한 문이 비밀스럽게 감춰져 있다. 가만히 보니 그냥 그림인 듯싶지만, 나는 그게 꼭 알리바바의 도적들이 잠가버린 문 같이만 느껴진다. 열려라 참깨! 라고 소리치면 그 문이 스르르 열릴 것만 같은 착각에 금세 빠져든다. 아마 어쩌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
이제 마지막 나의 여행길은 참새골목이다. 사실 이 골목 이름은 편의상 내가 붙인 이름이다. 골목길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참새 떼들이 일제히 날아오른다. 골목은 그야말로 참새천국이 다. 옛날 춘천여고 담을 끼고 돌자, 한 아주머니가 문 앞의 작은 화단에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그림 이형재
블록을 쌓고 흙을 담아 만든 작은 화단. 그곳엔 꽃이라곤 아직 피지 않은 해바라기밖엔 없고, 고추와 딸기, 토마토, 상추, 쑥갓이 싱싱히 자라고 있다. 인사를 드렸더니 매운 청양고추를 한 줌 따주신다. 길 가는 이라면 누구에게나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흰 구름처럼 마음결이 맑디맑은 분이지 싶다.
내가 찾으려 하는 ‘서툰책방’이 바로 곁에 있어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젊은이들이 일부러 찾아와 책을 읽고 마음에 드는 책을 사는 곳이다. 아무도 찾지 않을 듯한 골목에 이렇게 꽁꽁 숨어 있는 책방이 있다니! 대체 수지타산이 맞는 장사일까? 나는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조심히 두드려보았으나 답이 나오지 않았다. 벌써 3년째 잘 버티고 있다고 화단 아주머니가 말씀하신다.
말 그대로 서툰 사람들이 운영하는 서점? 그러나 그건 큰 오산이었다. 이 작은 책방은 그 어느 책방보다 아름다웠고, 깔끔했으며, 조용했다. 서가에 꽂힌 책들이 마치 숨결을 지닌 듯이 느껴졌다. 시중의 베스트셀러 위주의 책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다가간 한 귀퉁이의 서가는 좀 특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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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글씨로 쓴 ‘우리가 사랑한 여름’.
한 권의 시집과 두 권의 소설집. 이름도 반가운 권대웅 시인의 시집 ‘나는 누가 살다간 여름일까’. 그리고 두 권의 소설. 에리크 오르세나의 ‘두 해 여름’과 허성란 작가의 ‘여름의 맛’.
나는 시집과 소설집을 쓰다듬고 펼치고 하다 가만히 그 자리에 놓았다. 정확히 열흘 후 돌아오리라. 이 책들이 팔렸다면 다시 주문하고, 팔리지 않았다면 세 권 모두를 사리라 다짐하면서. 이 책들을 들고 나는 여름날의 길을 떠나리라. 내가, 아니 우리가 사랑한 여름은 가슴속에 둥둥 떠 구름처럼 흘러간 다. 와~ 정말 여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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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돈선 시인. 춘천문화재단 이사장. 춘천의 골목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그것이 궁금한 시인은 골목순례를 결심했다. 골목은 춘천시민의 가장 깊은 내면이며 참모습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