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북부노인복지관 3층에 ‘로맨틱’이라는 예쁜 카페가 있다. 이곳에서 일주일에 2번, 8시간 바리스타 봉사를 하는 최영남 씨. 69세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게 젊어 보여 이번 달 백세시대 멋진 골드의 주인공을 잘못 찾은 줄 알았다.
“순복음춘천교회 권사로 있으면서 예전에는 주로 교회에서 봉사를 했어요. 그런데 목사님이 복지관에서 커피 봉사할 사람을 찾는다고 해서 자원을 했어요.”
원래 커피를 좋아했기 때문에 선뜻 나섰다고 했다. 복지관에서 바리스타 교육과 고객 응대 교육을 받았고 바로 카페에 투입돼 커피 만드는 봉사를 하게 됐다.
최영남 씨를 이번 달 주인공으로 추천해준 복지관 김경희 사회 복지사는 “노인복지관이다 보니 고객층이 대부분 또래세요. 봉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나이시지만 봉사의 주체가 되신 거죠. 커피 봉사 이외에 선배시민 춘천 메이트라는 복지관 프로그램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주고 계십니다”라며 워낙 솔선수범해서 봉사하기 때문에 주변 분들에게 귀감이 된다고 말했다.
‘선배시민 춘천 메이트’는 고령화 사회를 맞아 지혜와 경험이 많은 시니어들이 고령친화적 사회를 선도하기 위해 권리 실천 활동을 하는 모임으로 춘천 4개 노인복지관 모두 이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그림책 놀이 지도사 되다
복지관 커피봉사 모임인 ‘커피장이 봉사단’의 일이 너무 좋아서 그만두라고 하기 전까지는 평생 이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최영남 씨. 라테를 만들 때 하트 등을 그려 넣는 아트 작업도 너무 재밌고 커피 맛있다는 말을 듣는 것도 행복하다.
“그런데 요즘 더 재미있는 일은 아이들과 그림책을 가지고 노는 일이에요.”
복지관 평생교육 프로그램 중에 ‘스토리텔링과 책놀이’ 과정이 있어 수강을 하고 수업에서 만난 친구들과 ‘그림책놀이 지도사’ 자격증도 땄다.
국공립 유치원에서 책놀이 독서지도사 일을 하는 최영남 씨.
자격증을 따자 복지관에서 국공립 유치원에 수업을 나갈 수 있게 알선해 줬다. 그리고 그 경력을 토대로 시에서 운영하는 드림스타트 ‘찾아가는 책놀이 독서지도사’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다른 일들은 모두 봉사지만 이 일은 소정의 강사료가 지급되는 활동이다.
“미혼모, 다문화, 다둥이 등 사회적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가정에 독서지도사를 보내 영유아들과 책놀이를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수업시간은 30분이지만 준비하는 데만 3시간 이상 걸려요. 하지만 너무 보람 있는 일이라 열심히 하고 있어요.”
수업을 하러 가면 아이들이 정말 좋아한다고 했다. 미리 나와서 담벼락에 매달려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도 있다고 한다. 본인이 하는 일이 정서든 창의력이든, 어휘력이든 어떤 식으로든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 사명감을 갖고 있단다.
시니어 기자단으로 뛴다
최영남 씨는 복지관에 봉사를 하러 왔다가 우연히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듣고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된 것이 무척 감사하다고 했다. 나이들어 봉사하는 사람이 많지만 늘 봉사가 봉사로 끝나는 것에 뭔가 아쉬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결혼 후 줄곧 전업주부로 살았던 그녀는 슬하에 1남 1녀가 있다. 자식들이 다 커서 손주도 봤지만 다들 자기 사느라 바빠 1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하는데 그게 처음에는 무척 섭섭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잘 키워서 결혼까지 시켰으면 부모로 할 일 다 했지’ 하며 마음을 비웠더니 섭섭함이 덜해졌다.
“근데 지금은 하나도 안 섭섭해요. 오히려 좋아. 내가 바빠서 자식들 못 만나줄 참이라니까요.”
내 손주는 못 보지만 그림책 지도사를 하면서 손주 같은 아이들을 만나기 때문에 너무 좋다고 했다.
그림책을 보면서 스스로 힐링이 되는 것도 큰 힘이 된단다. 어려서부터 부모님 말씀 잘 듣는 맏딸 소리 들으며 자라서 자신의 욕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살았다는 그녀. 그림책을 보면서 어린 시절이 생각나고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치유를 받는 것 같다고 한다.
그녀는 요즘 새로운 일을 또 도모 중이다. 강원도민일보와 함께 하는 ‘시니어 기자단’ 일이다. 버스를 타면 늙었다고 함부로 막 대하는 기사들이 있는데 그런 일부터 기사로 쓰고 싶다고 했다.
아무리 바빠도 매일 서너 시간은 꼭 책을 읽는다는 그녀. 그래서 친구들 만나서 수다 떨 시간도 없단다. 바쁜 시간을 쪼개 의미 있는 일을 하는 모습이 무척 존경스러웠다. 나이가 들어도 그녀처럼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