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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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56

2020.9
#봄내를 즐기다
명예시민기자가 만난 우리 이웃
‘뿌리 드러낸 국화’ 와 사랑에 빠진 중년 남자의 늦바람
국화 이용 석부작·목부작 등 700여점 가꾸는 박왕재 씨

두 달 꽃 보려고 10개월 동안 이어지는 돌봄과 기다림 

이제 막 꽃봉오리가 맺히기 시작한 국화 석부작


가을꽃 국화의 계절이다. 일찍이 시인 미당未堂은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려면 소쩍새 울음, 천둥소리, 그리고 무서리가 필요하다고 노래했다. 어찌 이런 것만 필요할까. 적당한 햇볕과 바람, 빗줄기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박왕재 씨(59)에게 국화는 ‘숱한 땀방울과 각별한 애정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서면 서상로 369, 북한강변에 자리 잡은 음식점 ‘샘물가든’ 대표이자 국화 애호가인 그의 요즘 일과는 새벽 5시에 시작된다. 식당 뒤편 비닐하우스와 노지에서 키우는 국화 700여 분盆이 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비닐하우스에 차광막을 내려 아침 햇볕을 가리거나 실내 온도를 살핀 후 수백 개의 화분 상태를 하나하나 점검하는데, 이런 작업은 이른 봄부터 가을까지 대략 7~8개월가량 이어진다. 애를 써 가며 그렇게까지 국화를 돌보는 이유는 단순하다.

“국화는 본래 10월 중순부터 한 달 정도 피는데, 9월 중순경부터 꽃을 피우기 위해서죠. 개화를 앞당기려면 가을 날씨처럼 일 조량과 온도를 맞춰야 하기 때문인데, 그렇게 해도 꽃을 감상하는 기간은 두 달 남짓에 불과하죠. 나머지 10개월은 키우고 돌보는 시간이구요.”

꽃송이가 18cm 이상인 대륜, 9cm 내외의 중륜, 동전보다 작은 소륜 등 다양한 크기와 색상의 국화를 키우지만 그의 주된 관심사는 소국小菊을 이용한 석부작·목부작 작품들이다. 땅에 묻혀야 할 뿌리가 자태를 송두리째 드러낸 채 기다랗게 바위를 휘감고, 뿌리 끝부분만 흙에 살짝 닿아 있는 이채롭고 독특한 분재 들이다.

매일 아침저녁 습도와 온도를 점검하고, 뿌리를 조금씩 드러내 가며 모양을 다듬어 줘야 하는 이런 국화들이 무려 700여 점에 달한다고 하니, 웬만큼 부지런하지 않으면 하기 힘든 취미생활일 것이다. 도대체 국화의 어떤 매력이 ‘꽃과는 좀 거리가 멀어 보이는’ 우람한 팔뚝과 부리부리한 눈매를 지닌 중년남성을 송두리째 사로잡은 것일까.

“하하, 제가 생각해도 좀 이상하긴 합니다. 5년 전쯤 국화전시회에 갔다가 뿌리를 드러낸 분재를 처음 구경했는데, 보는 순간 쿵 하고 가슴에 뭔가 다가왔죠. 그때부터 운명처럼 국화와 사랑에 빠져들었죠.”

3년쯤 열심히 배우고 키우다 보니 ‘작품’들이 하나하나 생기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도립화목원에서 개최한 국화전시회에 처음으로 15점을 출품했고 올해도 출품을 앞두고 있다. 9월 중순경 부터는 오가는 사람들을 위해 식당 주차장 대로변에 전시대를 설치, 꽃이 만개한 분재 작품들을 선보일 계획이다.

“국화를 키워 보겠다고 하니 처음엔 생뚱맞게 여기던 아내도 이제는 아주 좋아합니다. 국화 돌보느라 하루 종일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고 식당 일도 열심히 도와주니 좋아할 수밖에 없겠죠.”

그랬다. 환갑을 앞둔 나이에 홀딱 빠져든 그의 새삼스러운 국화사랑은 미당의 시구를 그대로 빼닮은 듯하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아름다운 국화가 누군가에게 기쁨을 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박왕재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