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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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56

2020.9
#봄내를 품다
김길소의 그때 그 사건 45
봄내골과 동고동락한 소양강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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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통 앞둔 소양2교(1997)


초췌했던 소양1교가 건강진단과 치료를 받고 말끔한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7월부터 안전정밀검사를 받은 후 하부 교각과 상부 구조물의 보수공사를 마쳤다. 사람으로 치더라도 벌써 나이가 백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초라한 겉모습과 달리 봄내골의 대동맥으로 파란만장한 근대사를 버텨 오면서 온갖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담고 있어 오히려 대견스럽기 그지없다.

발전과 쇠퇴의 모더니티modernity적인 이중성이 그동안 줄달음쳐 온 지난 역사와 함께 다시 한번 소양1교의 앞날을 내다보게 만든다.


소양1교(1986.10.)


맏형 격인 1교는 봄내골의 산증인

소양강 물줄기 위에 세워진 다리의 맏형 격인 ▲소양1교는 3년간의 공사 끝에 지난 1933년 12월 개통됐다. 화천댐 건설이 논의되기 시작한 이후이다. 총 공사비는 당시 화폐로 18만 1,000원이 투입됐다.

길이 395m에 1차선밖에 되지 않는 다리였다. 하지만 차량 통행이 뜸해 오히려 강남북을 잇는 보행자 인도교 노릇을 했다. 봄내골의 유일한 대규모 공장으로 종업원이 수백 명에 이르렀던 동방제사가 강 건너 우두동에 버티고 있어서였다.

그러나 한발 더 나아가면 당시 길이 험했던 철원과 양구 화천 인제 쪽의 막힌 길목을 뚫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포니브릿지 기념비(2014)


어린 시절 유원지로 이름을 날렸던 소양강으로 달려가 물놀이를 즐기고 봉의산 그루터기에 걸터앉아 수심이 얕은 자갈밭 여울목을 힘겹게 관통하는 뗏목의 모습을 스릴 넘치게 구경하던 추억이 삼삼하다.

산자수려山紫水麗하고 빼어난 풍광을 지녀 금강산을 찾는 시대의 명인들이 빠트리지 않고 들렀던 곳이다.

‘춘천대첩’으로 불리는 소양강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낙동강의 마지막 방어선이었던 △다부동전투와 △인천상륙작전과 함께 3대 전투로 꼽히고 있다.

아직도 교각 여기저기에 움푹 파인 당시의 탄흔이 선명하다. 근화동 소양강변에 후세들을 위해 춘천대첩기념평화공원(2000년 조성)을 만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춘천대교로 새로운 발전 기대

소양강 물줄기는 인제군 서화면 북쪽 설악산 자락의 무산巫山에서 발원해 내린천內麟川의 지류와 합류한 후 소양댐에 머물렀다가 봄내골을 휘감아 흐른다.

금강산에서 흘러내린 물은 화천을 지나 북한강 줄기를 이뤄 춘천댐에 모였다가 모진강이 되어 봄내골을 적신다.

이 두 물줄기는 의암댐 합수지점에 이르러 두물머리를 지나 대룡산에서 흘러내린 공지천과 삼천동三川洞 앞에서 세 몸을 섞어 한 몸이 된다. 그리고 잠시 의암호에 쉬었다 서쪽의 한강을 향해 치닫는다.

매월당 김시습은 한시 반도소양返棹昭陽에서 강에 기대 살아가는 봄내골 모습을, 다산 정약용은 산행일기山行日記를 통해, 송강 정철은 관동팔경 유람길에 아름다운 풍광을 읊조린 역사의 강이다.

서울 쪽 삼악산 어귀에 놓였던 신연강철교(1931년 건설)와 함께 20년 가까이 강북으로 가는 유일한 다리로 독보적 위치를 누렸던 소양1교의 위상은 6·25동란 이후에야 깨졌다.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지만 1951년 7월 미 62공병대가 전방의 병참루트 확보를 위해 작전용 목교木橋(길이573m)를 놓으면서 비롯됐다. 이 다리는 1960년대 초까지 봄내골 주민들이 강북으로 넘나드는 데 없어서 안 될 주요한 교통수단으로 사랑을 받았다.(다리 이름은 미 62공병대 지휘관으로 전쟁 중 전사한 포니Forney 대령의 희생을 추모해 포니브릿지로 명명)

그 이후 봄내골에 처음으로 다리다운 다리가 놓이게 된 것이 실로 소양1교가 놓인 지 64년 만인 1997년 12월에 완공한 ▲소양2교였다.

총연장 510m로 소양로1가와 우두동을 잇는 번듯한 6차선 교량을 총 사업비 192억원을 들여 완공시켜 시민들의 편의와 경제 발전에 큰 몫을 해냈다.

이어 ▲소양3교(동면 장학리~우두동·1999년) ▲소양5교 (동면 장학리~신북면 율문리·2001년) ▲소양6교(동면 지내리~신북면 천전리·2005년)가 연거푸 세워졌다.(소양4교는 없음)

소양댐 건설에 큰 몫을 한 추억의 콧구멍다리 발치에 지난해 12월 ▲소양7교(동면 지내리~신북면 천전리)를 완공한 후부터는 소양댐 방류 시 수해 문제 등으로 콧구멍다리 철거를 검토 중이다.

중도 레고랜드 조성사업의 기반시설로 지난 2018년 우여곡절 끝에 서둘러 완공한 ▲춘천대교(길이 996m에 총 사업비 834억원)는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봄내골의 상징으로 큰 기대를 모았었다. 레고 모형의 원형을 모티브한 춘천대교는 경관성, 환경성, 경제성을 갖춘 최신 공법을 동원한 대교여서 더욱 그랬다.

여기에다 레고랜드 개장 후 연간 200만명의 관람객이 찾아올 것에 대비한 서면대교 건설사업(길이 750m 총 사업비 1,244 억원 예상) 추진이 시급한 상황이다.

또 춘천역 아래쪽에 마련된 지하차도도 도심에서 10분 거리밖에 되지 않아 개장 후 도시 전체가 차량 통행에 영향을 받게 되는 이른바 도플러 현상에 빠지게 되지 않나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어쨌든 지난 8월 물폭탄을 안겨준 장마를 무사히 견뎌낸 것이 대견스럽다.


세계 최고의 루체른 목조다리

춘천대교(2019.5.)

소양7교(2019.10.)소양7교(2019.10.)


역사가 오래된 다리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 나라들이 많다. 영국의 타워브리지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현수교, 시드니항의 하버브리지 등 세계 곳곳에 널려 있다. 모두 그동안 쌓아 온 역사의 흔적을 알뜰하게 간직하고 있다. 세계 문명사가 강을 중심으로 꽃피워졌음을 드러낸다.

얼마 전 집사람과 스위스 루체른에 들러 카펠Kapell교를 건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다리였다. 하지만 겉모양은 조금 규모가 큰 징검다리 수준으로 여겨질 정도로 초라했다. 원래는 길이가 200m였던 걸 170m로 줄여 규모도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1333년 외침하는 적을 막기 위해 세웠다는 다리 내부를 건너면서 느낌이 확 바뀌었다.

다리에 지붕을 씌워 천장에 루체른 역사의 의미있는 장면들의 그림을 전시해 놓았다. 다리 선형이 살짝 구부러져 있는 볼품없는 겉모습과는 딴판이었다. 그 안에는 루체른의 수호성인인 성 레오데기르 등의 일대기 100여 점이 연작판화 형식으로 전시돼 있었다. 그리고 중세의 모습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주변 환경과 야릇한 하모니를 이뤘다.


세계 패션 무대를 주도하고 있는 인근 이탈리아 밀라노와 견줘 루체른이 어떤 연유로 가장 모던한 관광지로 꼽히고 이곳에서 카펠교가 가장 먼저 꼭 들르는 필수 관광지요, 최상의 랜드마크가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 만했다. 호수와 다리가 고풍스러운 주변과 잘 어우러져 언제나 ‘루체른 대축제’의 현장이 되었다.

세계 곳곳에 있는 나라들이 모두 다리를 가지고 있다. 템스 강을 지나는 선박에게 126년 동안 길을 터줘 온 타워브릿지는 지금까지 한 번도 고장나지 않은 다리로 유명하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긴 다리는 총연장이 55㎞인 강주아오港珠澳 대교이다. 홍콩과 마카오 주하이를 잇는 다리로 우리나라 인천대교 (21.4㎞)보다 세 곱절에 가깝다.

우리나라 최초의 대교는 한강철교로 1900년에 세웠다. 그 후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강남 개발이 이뤄져 집중적으로 건설됐다. 한강 상류 팔당대교에서 하류 일산대교에 이르는 구간에 무려 32개 다리가 촘촘히 세워졌다.


소양2교 불꽃놀이 (2018.1.14.)


지역 발전과 함께한 그랜드플랜 마련

 소양강 물줄기는 신비롭기 그지없다. 상류 다목적댐 방출수의 수온 차이로 사시사철 먼동이 틀 무렵이면 수면에서 하늘로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이른 봄부터 한여름까지는 구름이 내려앉은 듯한 운무雲霧를 뿜어낸다. 가을에는 붉은 석양과 어울려 선경仙境을 연출하고 겨울에는 하얀 눈과 수정을 닮은 서리꽃(상고대)을 피운다.

류머티즘성관절염 발병의 원인이 된다는 지적도 없지 않지만 봄내골은 동양의 베네치아를 꿈꾸는 도시이다.

이런 별유선경別有仙境에 놓인 다리에 1,2,3… 숫자를 붙여 부르는 것은 왠지 어색하고 궁색해 보인다. 일부 지역 언론에서 다리 이름을 지어주자는 지적이 제기되었으나 시행되지 않고 있다.

개통 순서에 따라 이리저리 숫자를 붙여 부르고 있어 토박이들도 헷갈리기 일쑤다. 편의주의에 매몰돼서였을까? 아니면 가요 ‘제3한강교’의 인기 때문이었을까?

견우직녀가 만난다는 오작교烏鵲橋가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는 좋은 이름을 지어줄 소재가 얼마나 많이 있는가.

격랑의 현대사를 오롯이 버텨 온 싱그러운 소양강 다리의 어제와 오늘을 살펴보다 만난 짙은 안개가 소양강에 놓인 다리 전체의 시급한 그랜드 디자인grand design 마련과 함께 네이밍 naming을 위해 하루빨리 ‘번호표를 떼어주자’는 몽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