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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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57

2020.10
#봄내를 꿈꾸다
백세시대 멋진 골드 10
인생3막 즐기는 김광춘·정갑녀 부부
꽃 가꾸고 시 쓰며 웃고 삽니다. 허허
노년에 텃밭을 가꾸고 길가에 코스모스를 심는 아내.


“왜 깨를 심지 꽃을 심냐”는 남편의 농담에 “여보, 나는 깨 없이는 살아도 꽃 없이는 못 살아”라며 아이처럼 깔깔 웃는 아내.

이번 달 백세시대 멋진 골드의 주인공은 인생 3막을 즐기며 행복하게 사는 김광춘·정갑녀 부부다.



아프면 고치며 사는 거지

얼마 전 봄내편집실로 노부부가 손을 잡고 찾아왔다. 아내 정갑녀 씨가 수필집을 냈는데 평소 봄내 소식지를 좋아해서 봄내편집실에 꼭 전해주고 싶어 왔다고 했다. 그 모습이 무척 애틋하고 보기 좋았을 뿐 아니라 책 내용도 좋아서 이번 달 백세시대 멋진 골드의 주인공으로 모셨다.

인터뷰를 위해 전화를 했더니 대뜸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해서 부부가 사는 동네로 갔다. 남편 김광춘 씨는 87세, 아내 정갑녀 씨는 89세인데 두 사람 모두 걷는 모습이 너무 정정해 건강은 괜찮으신가 물었다. 수필집에 분명 남편이 뇌경색에 걸려 절망에 빠진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 그건 10년 전 얘기고 다 나았어. 근데 지난봄에 심장이며 장이며 큰 탈이 나서 고생을 많이 했어. 수술을 세 번이나 해서 다 뜯어고쳤으니 앞으로 백수까지 살 거야. 다 그렇게 사는 거야. 사람도 자동차 수리하듯 고치며 사는 거지.”

아픈 사람도, 옆에서 수발하는 사람도 힘들기는 마찬가질 텐데 유머까지 곁들이며 덤덤함을 잃지 않는 정갑녀 씨. 다행히 그녀는 아직 건강하다고 했다.


주말농장 오가며 인생 3막 즐긴다

정갑녀 씨가 89세에 낸 수필집



부부는 평창 대화가 고향이다. 정갑녀 씨 마당에 있는 배나무의 배를 김광춘 씨가 따 먹다 걸리면서 사랑이 싹튼 두 사람은 슬하에 4남 1녀의 자녀가 있다. 당시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가 유행하던 시기였는데 다섯이나 낳았다며 웃었다.

“이 사람이 아이 셋을 낳고 군대에 갔어요. 살길이 막막한데 어떡해. 먹고 살아야 하니까 무작정 나갔지. 건어물상에 가서 건어물을 떼다 봇짐 장사를 했어. 꼬박 3년 동안. 다행히 남편이 제대하고 바로 취직을 했어. 교편을 잡다가 정년퇴직을 했지.”

서로 마주 보며 고생이 많았다고 다독이는 두 사람은 쑥스러워서 지금까지 ‘사랑해’라는 말을 한 번도 못 해봤단다. 대신 한 사람이 ‘서렁해’라고 말하면 나머지 한 사람도 ‘나도 서렁해’ 하며 웃는 게 고작 할 수 있는 사랑의 표현이다. 어떻게 하는지 한번 보여 달라고 했더니 서로 어깨를 감싸고 웃으며 ‘서렁해’라고 말한다.

이토록 사랑하는 두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일은 양구에 있는 주말농장에 가는 일이다. 텃밭이 조금 있고 주거용 컨테이너가 있는데 거기 가서 한 일주일씩 쉬고 오는 것이 이들의 인생 3막이다. 아무리 텃밭이라지만 농사짓는 건데 힘들지 않냐고 물었더니 전혀 그럴 일이 없단다.

“누가 힘들 만큼 해? 하고 싶음 하고, 말고 싶음 말고 그러는 거지. 그리고 나는 먹을 거부터 심는 게 아니고 꽃부터 심어. 백일홍, 봉선화 같은 거. 양구 텃밭 가는 길에 코스모스를 심었더니 남편이 웃더라고. 왜 깨를 안 심고 꽃을 심었냐고. 호호호.”



글 쓰는 아내, 응원하는 남편

이번에 정갑녀 씨가 낸 수필집 제목은 ‘아름다운 춘천’이다. 2009년에는 ‘꿈을 안고 달린 세월’이라는 수필집을 냈고 이번이 두 번째다. 수필집에 이런 내용이 있다.

‘내 인생의 1막은 철모르고 천방지축 연습 없이 끝났다. 철이 좀 들 즈음에는 시간에 쫓겨 허둥대다 인생 2막도 끝나 버렸다. 인생 3막은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누리면서 마음껏 매일매일 멋있고 흥미진진하게 살 것이다.’


사실 그녀는 2007년 문학세계로 등단한 수필가다. 춘천문화원에서 11년간 박종숙 강원문인협회장의 수업을 받았는데 이제는 스승과 제자 사이라기보다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친구가 됐다.

아내는 글을 쓰고 남편은 그런 아내를 응원한다. 남편에게는 바둑과 게이트볼이라는 취미가 있다.

“이제 다 내려놔야지. 옛날 90이면 앉았다 일어나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건강하게 지내는 것만으로 감사해야지.”

말은 그렇게 하지만 아직 그녀가 내려놓지 않은 게 있다. 그건 바로 ‘시’다. 수필보다 더 쓰고 싶었지만 어려워서 쓰지 못했던 시를 쓰며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한다.

“주말농장 왔다 갔다 하며 꽃 보고 시 쓰며 살아야지”라고 말하는 그녀와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남편에게 어떤 아득함이 느껴졌다.

인터뷰 내내 옛날이야기를 꺼낼 때면 “그때 생각하면 아득하지”라고 말하던 두 사람. 아득한 젊은 날을 뒤로하고 백수를 바라보며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내내 건강하시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