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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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57

2020.10
#봄내를 즐기다
명예시민기자가 만난 우리 이웃
한글 서예 40년… 알아주지 않아도 홀로 즐거웠다
하루 4시간 글쓰기, 독학으로 국전초대작가 된 윤태휘 씨

‘아무것도 못 듣고 못 보는’ 집중·몰입의 즐거움이 서예의 매력


가장 정직하고 치열한 예술 장르가 있다면 그것은 어쩌면서 예일지도 모른다.

하얀 종이 위에 써 내려가는 검은 글씨로 아름다움을 표현해야 하는 정직함이 그것이요,

한 글자만 삐끗해도 잠시 머뭇대도 먹물이 번져 전체가 무너져버리기에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 그렇다.

‘너, 필체가 아주 좋구나!’라는 칭찬 한마디는 소년의 삶을 서예가로 만들어버렸다.

40여 년 전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갈래초등학교에 다녔던 그는 5학년 특활시간에 난생처음 붓글씨를 썼다.

먹을 갈고 붓을 잡아 종이 위에 글자를 쓰기 시작했는데, 아이들을 둘러보던 선생님이 반색을 했던 것이다.


우리 시대의 ‘명필’인 서예가 정선 윤태휘 씨(50·온의동)의 이야기다.

“그렇게 서예를 시작했어요. 친구들은 지루해했지만, 저는 한 글자 한 글자 정성 들여 써나가는 게 무척 재미있었어요.”

그의 남다른 재능은 일취월장했다. 각종 붓글씨 대회에 나가 상을 휩쓸었고, 이후 고한중학교를 거쳐 춘천기계공고 정밀기계 과에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직장에 취직했지만, 붓을 쉽게 놓지 못했다. 스승 없이 독학으로 10여 년간 글씨를 썼고, 늘 부족한 연습시간을 아쉬워했다.

“직장이 부업이고 서예가 본업인 셈이었죠. 고민 끝에 직장생활을 접고 전기온돌판넬 대리점을 시작한 30대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서예에 매진했습니다.”


이후 20년간 각종 서예대회에 출전했던 그의 수상 경력은 화려하고 다채롭다.

추사김정휘추모 전국휘호대회 초대작가, 세종 대왕 전국한글휘호대회 대상 등 각종 대회에서 수십 차례 이름을 드날렸다.

특히 각종 ‘휘호대회’ 우승 경력이 많은데,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작품을 심사하는 공모전과는 달리 휘호대회는 현장에서 직접 쓴 작품을 놓고 수상자를 결정한다.


윤 씨는 지난 7월 열렸던 제32회 대한민국서예대전(국전)에서 우수상 5점(한글 전서 예서 행초 문인화) 가운데

한글 부문 1위 수상자로 뽑혀 마침내 국전 초대작가 반열에 오르는 결실을 거뒀다.

이번 국전에 총 3,483점이 출품됐으니 ‘명필’ 칭호가 오히려 가벼울 정도다.

출품작은 진흘림체로 쓴 ‘서기 이씨 봉서’라는 작품으로, 사진의 오른쪽 배경글씨가 진흘림체다.

“서예가 체질에 맞았죠. 글씨를 쓸 때가 가장 즐겁거든요. 숨소리조차 잦아드는 몰아沒我의 즐거움은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모릅니다.

글씨를 써 내려갈 때는 아무것도 못 듣고 못 보는 사람처럼 변해버리는데….”

현재 1주일에 4일은 대리점 운영, 나머지 3일은 온의동에 마련한 작업실에서 글쓰기와 함께 한글서예동호회를 운영한다.


40성상星霜을 오로지 한글 서예와 함께 보낸 그는 지천명의 나이를 맞아 새로운 시간을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글씨를 팔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국전 초대작가가 되기 전엔 ‘배우는 학생’이라는 원칙을 세웠기 때문인데,

목표를 이뤘으니 이제부터는 글씨를 ‘남겨도’ 되겠죠? 기회가 주어지면 모교인 춘천기계공고 후배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글서예의 매력을 알리려고 합니다.”

올해로 훈민정음, 즉 한글 탄생 574돌을 맞았다.

세계의 여러 언어 가운데 탄생한 시기와 만든 사람, 문자의 원리 등이 명확히 밝혀진 유일한 언어가 한글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우리 글의 위대함이 바로 여기에 있다.


‘쓰고 또 써도, 쓸수록 아름다운 게 한글이다.’

춘천에서 탄생한 한글 명필의 우리말 예찬은 끝없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