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컨트리클럽 개장(1990.9.1.)
“천당 아래 분당이다.”
골프 마니아들 사이에 오갔던 말이다.
하늘의 별 따기처럼 부킹이 어려웠던 1980년대 이후부터 골 퍼들 사이에 즐겨 쓰였다.
분당은 서울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턱없이 부족한 주택난을 극복하기 위해 200만호 건설계획을 밀어붙였던 곳이다. 경기도 성남시에 일산과 더불어 조성된 뉴타운이다. 분당과 신분당선이 연결된 교통망과 함께 주변 인프라가 잘 갖춰져 골프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골프 8학군’으로 불렸다. 그러던 것이 세월이 지나면서 달라졌다.
싫든 좋든 알게 모르는 사이에 봄내골과 주변에 엄청난 숫자의 골프장 시설이 갖춰져 골퍼들 사이에 이제는 “천국 아래 춘천이다”는 말이 나돌 정도가 되었다.
한낱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의 우스갯소리로 여겨버리기에는 어느새 변화된 봄내골의 모습이 너무 확연하다.
관광 춘천 불씨 살리자는 취지로 건설 시작
봄내골은 1970년대 이전까지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을 찾아보기조차 어려웠다. 의사 변호사 사업가들을 주축으로 한 몇몇 지역유지들이 동호회를 만들어 골프를 동경하는 마음을 달래는 수준에 그쳤다.
관내에 골프장이라야 남이섬 잔디밭에 꾸려 놓은 6홀짜리가 유일했다. 타지의 그 많던 연습장도 삼천동에 비거리가 짧은 그물을 쳐놓고 아주머니들이 타석 옆에 앉아 공을 얹어주는 보잘것없는 수준이었다. 라운딩을 하기 위해서는 진부령 알프스스키장(6홀)과 횡성군부대 비행장(9홀)을 찾거나 속초, 대관령 쪽과 서울 주변을 기웃거려야 할 정도였다.
이렇던 상황이 1980년대 들어서 달라졌다. 제9회 소년체전 (1980년)에 이어 제66회 전국체전(1985년)을 ‘성공체전’으로 이끈 후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참에 “도청 소재지 가운데 유일하게 골프장이 없는 곳이라는 불명예를 씻어내고 지역발전을 앞당길 수 있는 골프장을 마련하자”는 공감대가 도단위 기관장 모임인 위봉회에서부터 싹텄다.
그러나 정작 구체화시켜 나가려고 하자 앞을 가로막는 장애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골프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보통 25만에서 35만 평의 수목이 우거진 땅이 필요하다. 잔디를 깔고 클럽하우스와 그늘집, 해저드 같은 부대시설을 갖추는 데도 엄청난 투자가 뒤따라야 한다. 더구나 당시만 해도 큰 이권이 걸려 있고 무분별한 산지 전용을 막기 위해 청와대가 허가권을 움켜쥐고 있었다. 환경 및 시민단체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앞에 가로막힌 이런 허들을 단숨에 극복하게 만든 것이 침체된 ‘관광 춘천’의 새로운 불씨를 살려보자는 시민들의 열망과 자신감이었다.
두산그룹이 선뜻 지역발전기금(강원학사 건설비) 희사와 함께 골프장 건설에 참여하겠다고 나선 후에는 이런 지역의 일치 된 합의가 엄청난 가속도를 가져왔다. 그래서 서둘러 1988년 사업 승인을 받은 후 이태 만에 개장할 수 있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개장 초기부터 일약 국내 10대 명문 골프장으로 이름을 떨쳐 전국 골퍼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두산그룹의 ▲라데 나CC(27홀·신동면 칠전동길 72)는 해마다 총상금 7억원을 놓고 박인비를 비롯한 국내 골프 여제들이 총출동해 KLPGA의 유일한 매치플레이를 펼치는 국내 최고의 골프장으로 도약했다.
한때 시민들의 휴식처로 사랑을 받아 온 삼천동의 두산콘도는 이 시기에 패키지로 건설됐다. 지금은 그룹직원들의 연수원으로 개축하다 공사가 중단돼 있다.
첫 테이프를 화려하게 끊은 봄내골 골프장 건설은 멈출 줄 몰랐다. 수도권에서 가깝고 땅값이 싼 야트막한 구릉지가 많은 데다 북한강이 휘감아 흘러 용수 공급이 수월한 골프장 건설의 최적지였기 때문이다.
경춘가도 건너편 남산면 북한강변길에 GS건설은 1989년 ▲엘리시안 강촌CC(27홀·북한강변길 688)의 사업 승인을 받아 스키장과 함께 운영 중이다. 이때 ▲엘리시안 강촌 대중제 CC(10홀)도 함께 개장했다.
지난 8월에는 코로나19 여파를 이겨내고 강촌엘리시안 GS칼텍스 매경 오픈경기를 펼쳤다.
한때 골프황제 타이거우즈가 한국에서 나이키 골프레슨 행사를 열었던 한화그룹의 ▲제이드펠리스CC(18홀·남산면 경춘로 212)는 골퍼라면 누구나 한번 라운딩하기를 원하는 명품 골프장으로 꼽힌다. 중세의 멋진 성城을 연상시키는 클럽하우스가 인상적이다. 하지만 철저한 회원제로 운영돼 부킹이 어렵고 대중의 접근이 쉽지 않다.
이처럼 국내의 이목을 집중시킨 굵직한 골프장이 둥지를 틀기 시작하면서 한때 봄내골이 한국 골프 꿈나무들의 요람으로 각광을 받았다. 1990년대 우리나라 대표팀 감독을 도맡았던 한연희 프로가 만천리에 PGA 연습장을 개설하면서부터였다. 이때 육성된 김경태 김영희 조아람 김효주 프로 등이 당대 국내 무대를 주름잡았다.
뉴밀레니엄시대에 접어들어 박세리 최경주 효과로 골프가 새로운 스포츠로 각광을 받아 골프장과 골퍼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 시기에 연속적으로 탄생된 골프장이 ▲남춘천CC(18홀·신동면 오봉길 156) ▲휘슬링락CC(27홀·남산면 동촌로 501) ▲오너스CC(18홀·남산면 동촌로 667) ▲파카니카CC(18홀· 남산면 소주고개로 145) ▲플레이어스CC(27홀·동산면 새술막길 438) ▲스프링베일리조트(9홀·동면 금베이길 93) ▲로드힐스 CC(27홀·신동면 혈동리 산 49·조건부 등록) 등이다.
이 밖에 한국의 전통미를 살려 품격있게 꾸며진 ▲라비에벨 CC(36홀·동산면 조양리 산 156)는 지난 2015년 개장 직후부터 골퍼들 사이에 유명세를 탔다. 국내 골프장 건설의 귀재로 불렸던 오너가 일생일대의 명작을 만들겠다는 다부진 포부를 가지고 덤벼들었다. 그러나 자금력 부족으로 중도에 코오롱그룹이 인수해 완공했다. 클럽하우스와 그늘집만 한옥으로 꾸민 것이 아니다. 프런트 등 내부와 정원과 코스를 모두 전통미가 스며있는 독특한 콘셉트로 가꿔 놓아 이곳을 찾은 골퍼들마다 감탄사를 연발케 하고 있다.
현재는 80만평의 관광단지를 중국복합문화타운으로 조성할 계획이라는 설이 나돌아 주목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이런 봄내골의 골프장이 남면과 남산면, 동면과 동산면 등 소양강 이남의 동남쪽에 편중돼 있다는 것도 이채롭다.
라비에벨 컨트리클럽 전경(2015.4.)
우리나라 최초의 골프장은 강원도에 마련됐다. 서울이나 관광지인 제주도가 아니다. 강원도가 그 시초였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골프왕국으로 꼽히는 일본에 골프를 전파 시킨 것도 우리나라였다는 사실이 자못 흥미롭다.
1937년 경성골프클럽 소속 다카바다케 씨는 조선은 일본의 골프 발상지라는 글을 발표했다. 이 글에는 “일본에 처음 골프가 만들어진 것이 1903년인데 조선은 그보다 6년 앞서 1897년 원산元山(현재 북강원)항 근처에 한국 세관 관리로 고용된 영국인이 구내에 6홀 코스를 만들어 처음으로 골프를 즐겼다”고 못 박았다. 이로써 일본 골프의 뿌리가 한국임이 굳어졌다.
골프의 기원설도 여러 갈래로 나뉜다. 스코틀랜드 목동들이 지팡이로 돌을 쳐서 구멍에 넣는 것이 발전되었다는 설과 네덜란드의 아이스하키와 비슷한 놀이가 진화했다는 설 등이다.
굳이 ‘놀이에는 국경이 없다’는 어느 민속학자의 주장을 앞세우면 우리나라도 한 발 끼어들 수 있는 놀이가 있었다. 막대기를 들고 나무토막이나 짚을 뭉쳐서 만든 공을 이리저리 치고 놀았던 ‘장杖치기 놀이’도 흡사하다.
그러나 현대와 같은 골프가 시작된 것은 15세기 중엽 스코틀랜드의 왕족들이 즐기면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정설로 꼽힌다.
그 이후부터 줄곧 왕족이나 귀족과 같은 상류층의 전유물이 되어 왔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영친왕 이은李垠이 지난 1929년 서울 군자리(현 어린이공원)의 땅과 건설비를 하사해 서울컨트리클럽을 개장했으나 특수계층만 즐길 수 있었다.
이러는 사이 경제부흥과 함께 골프장과 골퍼들이 부쩍 늘어났다. 여기에다 서울아시안게임(1986년)과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2016년)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고 박세리를 시발로 최경주 박인비 등 걸출한 선수들의 세계무대 석권이 골프 붐에 기름을 부었다.
골프가 새로운 스포츠로 각광받으면서 정부의 정책도 한몫 거들었다. 돈 많은 사람이 즐기는 특별한 시설(회원제)이 아니라 누구나 싸게 즐길 수 있는 대중제 퍼블릭골프장을 늘려나갔다. 그 결과 현재 강원도는 경기도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61개의 골프장(홀수 1,112개)이 운영 중이고 봄내골은 21%가 넘는 13개를 차지하고 있다.
가까운 홍천(8개), 횡성(6개)을 비롯, 경기도 가평과 양평 등을 포함하면 거의 50여 개소가 넘는 골프장이 주변에 널려 있다. 그리고 아직도 골프장 개발 적지가 주변에 수두룩하다.
강원도와 봄내골이 한국 골프의 뿌리요, 본고장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 격세지감을 자아낸다.
대중화와 미래지향적 좌표 찾아야
한때는 ‘골프장 건설 = 황금 거위’라는 인식이 팽배했었다. 주민들은 지역발전을 가져올 호기로 여기고 감독관청에서도 허가를 막지 않았다. 이런 연유로 전국적으로 골프장이 부쩍 늘어났다.
하지만 경기 침체와 희소성 감소로 프리미엄이 붙었던 회원권 가치가 떨어지고 신규 회원권 모집도 예전 같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엄청난 면적의 산지 전용도 부작용을 낳고 있다. 내방객 감소로 이용률이 줄어들어 도산하는 골프장이 속출해 요즘은 신규 골프장 건설도 정체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다 지역주민들마저 고용 창출과 지역경제와 발전의 파급효과가 기대에 못 미쳐 시큰둥한 상태이다.
수요와 공급의 밸런스가 깨져 공급 과잉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일본의 사례가 남의 얘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회원제 골프장의 경우 다른 스포츠와 견줘 그린피green fee가 비싸 대중화의 물결을 가로막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몰고 온 언택트untact 시대에도 골프장은 큰 타격을 받지 않고 있다. 그린피가 싼 해외로 원정에 나섰던 골퍼들의 발이 묶이고, 코로나 사태로 찌들은 마음을 풀고 힐링하려는 내방객이 오히려 늘고 있는 추세이다.
무작정 반겼던 시대 분위기가 몰고 온 달갑지 않은 ‘공급 과잉’이라는 문제 제기가 변곡점이 되어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좌표를 넘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