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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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66

2021.7
#봄내를 품다
이병한의 생명살림도시 춘천⑦
‘지구법’을 선도하는 미래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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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법' : 자연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



1. P4G부터 ESG까지

 지난 5월 말, P4G 정상 회의가 서울에서 열렸다.

기후 위기와 탄소중립을 화두로 삼은 국제적 행사를 한국이 유치한 것이다.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 가장 먼저 열린 회의 또한 기후정상회의였다.

그만큼 기후재난은 이제 전 세계의 모든 나라와 모든 사람이 지혜를 모아야 하는 가장 큰 의제가 된 것이다.

코로나 이전, 국제적 논의의 핵심이 전쟁과 평화였다면 코로나 이후에는 기후와 환경과 생태가 될 것이다.

2050년, 앞으로 한 세대가 넘도록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도 동참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

쓰레기 없는 삶, 지구에 무해한 삶을 지향하는 제로 웨이스트 운동이 활발하다.

가급적 자동차를 몰고 다니지 않고 대중교통을 활용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의 수도 늘어나고 있다.

‘비건’Vegan이라고 불리는 채식 문화도 활성화되고 있는 추세다.

철저한 채식은 아니더라도 가급적 육식을 줄이고 채식을 지향하는 사람들도 확산일로다.

 

제로 웨이스트 운동, 삶의 방식 변화시켜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이 바뀌면 생산과 유통, 소비도 바뀐다.

새로운 시장이 창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들도 앞 다투어 ESG1) 경영에 나서고 있다.

주요 4대 대기업을 포함해 지속 가능한 경영을 실천하고자 하는 CEO들의 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환경을 해치는 산업이 아니라 환경을 보호하고 생태를 되살리는 비즈니스가 가장 각광받는 사업이 될 것이다.

그런 일을 하고자 하는 스타트업에 종잣돈을 제공하는 ‘임팩트 투자’ 역시 활발해지고 있다.

국가와 기업과 시민이, 생각과 생활과 생산이 모두 지속 가능한 삶을 향하여 대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춘천은 한국의 주요 도시 가운데서도 이런 생명살림으로의 전환에 가장 앞장서고 있는 선도도시라고 하겠다.



강은 산에서 발원하여 바다로 흘러나가는 것이 자연적 권리이다. 강을 가로지르는 댐을 지나치게 많이 건설하고,
강에서 지나치게 많은 물을 끌어다 써 바다로 흘러 들어가지 못하게 되면 강의 기본권에 대한 침해가 될 수 있다.
사진은 제13회 춘천 관광 전국사진 공모전서 입선한 김기경 씨의 ‘승호대 풍경’



2. 지구법 선도 도시

 생각과 생활과 생산이 바뀌는 만큼 궁극적으로 달라져야 하는 것은 ‘법’이다.

현대사회는 뭐니 뭐니 해도 법치사회이기 때문이다. 사상과 일상을 매개하는 것이 법이고, 이상을 일상으로 착근시키는 것 역시 법이다.

20세기에는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정도의 ‘환경법’이 있었다면, 21세기에는 환경보호의 수준을 넘어서

인간이 아닌 존재들도 법의 대상으로 확장시키는 ‘지구법’이 주목받고 있다.

한국에서 이 지구법의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 곳이 바로 춘천에 자리하고 있는 강원대학교의 법학전문대학원이다.

지구법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이러하다.

현재의 법 시스템은 인간 또는 회사(법인)가 아닌 그 밖의 모든 것을 권리를 가질 수 없는 재산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인간이 자연의 한 부분이 아니라는 생각을 길러 왔고, 인간의 지구 지배와 파괴를 정당화해 왔다는 것이다.

법에 대한 사고를 생명 중심적, 또는 지구 중심적 관점에서 전면적으로 재개념화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법이 인정한 권리만이 법정에서 집행 가능하고, 이러한 권리는 인간 또는 회사와 같은 법인만이 보유할 수 있다면,

이는 지구상의 수백만 종이 법의 보호를 받을 자격을 갖지 못한 채 취급됨을 뜻한다.

법 시스템은 그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으며, 따라서 그들은 존재할 수 있거나 서식지를 가질 수 있는 내재적 권리를 갖는, 공동체나 사회의 한 부분이 아닌 것이다.
 가령 지난 20세기 인간은 집단학살 genocide을 인륜에 반하는 범죄로 불법화했다.

이제 전쟁과 학살 등 반인류적 범죄는 세계 어디에서든 범죄로 기소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종 내지 살아있는 생태계를 절멸하는 것은 어떠한가?

생물 학살 biocide 또는 생태 학살 ecocide이라 부를 수 있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

즉, 지구 위 생명의 절멸은 합법적이다. 매해 반복되는 소, 돼지, 닭, 오리 등의 살처분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지구의 모든 생명에는 ‘자연적 권리’가 있다

 즉, 지구 법학이 제기하는 도전은 인간에 의한 지구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이 기본적 권리의 침해를 방지하는 거버넌스의 수단과 방법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가령 인권에 버금가는 강江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강은 산에서 발원하여 바다로 흘러나가는 것이 자연적 권리이다.

흐를 권리 right to flow를 법적으로 보장받는다면, 강을 가로지르는 댐을 지나치게 많이 건설하고,

강에서 지나치게 많은 물을 끌어다 써 바다로 흘러들어 가지 못하게 되면 강의 기본권에 대한 침해가 될 수 있다.

자연권을 보장함으로써 인권의 독주에 대한 견제와 균형을 작동시키는 것이다.

인간의 기득권에 대한 도전과 저항이라고도 하겠다.

혹은 더 깊은 인간으로 진일보하는 방편이라고도 하겠다.

산처럼 사고하고, 나무처럼 숨을 쉬고, 물처럼 마음이 흐르는 인간성의 고양에 지구법이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춘천은 30만 남짓의 그 인구에 비하여 광활한 면적을 소유하고 있는 도시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산과 물에는 수없이 많은 동식물이 함께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이들에게 선도적으로 시민권을 승인하는 혁신적인 미래도시의 지구법을 구현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강원대 로스쿨과 춘천시가 협력하여 한국에서 가장 먼저 생태 학살 모의법정을 구현해 보고,

상징적인 동식물이나 산과 강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조례도 제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시의 다양한 정책과 시민들의 생활운동을 넘어서서 생명살림 도시로서 춘천이 우뚝 돋보이는 첩경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1) ‘Environment, Social, Governance’의 머리글자를 딴 단어로 기업 활동에 친환경, 사회적 책임 경영, 지배 구조 개선 등

투명 경영을 고려해야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다는 철학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