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좋아서 한 일, 주는 것보다 얻는 게 더 많아”
“건강이 허락하는 한 70세까지 헌혈할 생각”이라는 이순만 씨
함께 일하던 동료가 사고로 병원에 실려 갔고, 뒤이어 ‘O형 혈액이 필요하다’는 화급한 연락이 온다.
이때 같은 혈액형을 가진 동료들이 우르르 몰려가 팔뚝을 걷어붙이는 일은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인지상정이다.
1980년대 초 대학 졸업 후 삼척시 도계읍 소재 경동탄광에서 근무했던 이순만(63·동내면) 씨가 기억하는 ‘첫 헌혈’ 때의 상황이다.
하지만 이 씨의 경우는 다른 동료들과 좀 달랐다. 그날의 헌혈 이후 40년간에 걸쳐 무려 639회 헌혈이라는 놀라운 기록의 출발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헌혈이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귀한 일이라는 점에 마음이 크게 끌렸죠.
그때부터 거리에서 헌혈 권유를 받거나 이런저런 기회가 생길 때마다 적극적으로 헌혈에 참여하게 됩니다.”
20대 중반이던 1984년, 현대건설로 직장을 옮긴 그는 중동에 파견되어 1990년까지 6년간 이라크에서 근무했다.
이라크에서 일할 때도 한국인 근로자가 교통사고로 다쳤다는 소식에 달려가 흔쾌히 팔뚝을 걷었다.
“본격적인 헌혈은 이라크에서 귀국해 춘천에 새로운 직장을 잡았던 1992년경부터 시작했죠.
적십자 단체인 방울봉사회에 가입했고, 그때부터 정기적으로 헌혈 활동에 참여하게 됩니다.”
매달 2회 규칙적으로 헌혈을 시작했다. 헌혈 방식은 혈액 그대로 기증하는 전혈헌혈과 혈장만 추출하는 성분헌혈 등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전혈헌혈의 경우는 2개월 간격, 성분헌혈의 경우는 2주 단위로 헌혈이 가능하다. 그는 더 자주 더 많은 헌혈을 하기 위해 성분헌혈을 택했다.
한 달에 2회면 1년에 총 24회 헌혈이 가능하다.
따라서 639회 헌혈이라는 기록은, 27년간 단 한 차례로 빠뜨리지 않고 늘 헌혈이 가능한 ‘건강상태’를 유지해야 달성할 수 있는 결코 쉽지 않은 기록이다.
그동안 그가 기부한 혈액양은 약 30만㎖로, 성인 남성 60여 명분의 혈액총량에 해당한다.
“헌혈 중독이라고 하면 좀 이상하고, 어느 순간부터 습관처럼 되었다고 봐야겠죠? 헌혈에 의도나 목적이란 게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요.
스스로 좋아서 한 일이었고, 밥 먹고 양치질 안 하면 개운치 않듯이, 헌혈을 해야 한 달을 잘 보낸 것 같았죠.”
현재 춘천 중앙로 소재 (주)산E&C건축사무소에서 상무로 재직 중이며, 다양한 사회봉사 활동에도 적극 참여해 왔다.
저소득층 구호 활동, 수해복구지원, 의용소방대 20년 근무, (사)춘천연탄은행 창립 때부터 시작한 연탄배달 봉사, 장애인 대상 봉사 등
약 1만 4,000여 시간에 달하는 봉사활동 기록을 갖고 있다.
“가족들의 걱정이요? 헌혈과 봉사활동이란 제 삶의 방식을 이해하지만 ‘나이도 있으니 헌혈은 이제 그만하지’라고 말하긴 합니다.
그런데 헌혈 제한 나이인 70세까지 계속하게 될 것 같아서…, 하하.”
키 180cm에 85kg의 체중을 지닌 그는 “젊었을 때부터 술·담 배는 전혀 하지 않았고,
혈액형도 누구에게나 줄 수 있는 O형이니 헌혈하기 딱 좋은 조건이죠?”라며 웃는다.
강원도 정선 출신으로 탄광촌에서 이웃들의 고단한 삶을 보며 자랐다.
아프고 힘든 사람들을 돕겠다는 어린 시절의 ‘마음’은 헌혈이라는 ‘행동’으로 이어졌고,
정기적 헌혈이라는 ‘습관’으로 정착돼 마침내 ‘운명’처럼 그의 삶을 관통했던 것일까.
검게 얼룩진 두 팔뚝의 주사 바늘 자국은 자랑스러운 삶의 흔적일 테고….
“고통받는 사람들과 ‘피를 나누는’ 연대감, 나의 작은 수고로 귀한 생명을 살리는 수단이 된다는 자부심….
돌이켜보면 헌혈을 통해 얻은 게 더 많았던 그런 세월을 살아온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