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밍햄에서 온 시인
미국에서 한 사람이 왔다. 그니는 시인이고 아동학박사이다. 앨라배마 버밍햄 샘포드 대학교수를 역임했다.
버밍햄 한글학교 교장 직책은 작년에 내놓았다. 그래서 그니는 시인과 박사의 명함만으로 글을 쓰며 자유롭게 살고 있다.
나는 작년 춘천시립교향악단 연주회에서 그니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니는 1년에 한 번 부모님을 뵈러 온다.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 늘 아버지 어머니가 그리워 비행기를 탄다고 한다.
버밍햄은 마거릿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중심 무대인 애틀랜타와 바로 이웃해 있다.
선량한 외모에 차분하고 분명한 말씨, 어느 것 하나 흐트러짐 없는 태도에서 그니의 성품이 조용히 드러난다.
그니의 손엔 기행에세이 <그리스 유적지를 돌아보며>란, 좀 긴 제목의 책 한 권이 들려 있다.
도서출판 ‘산책’에서 방금 며칠 전에 낸 책이라 했다.
‘산책’ 은 춘천에서 20여 년 동안 유익하고 좋은 책을 많이 내는 지역 출판사로 알려져 있다. 나는 고맙게 그 책을 받았다.
윤재영 시인.
그니가 우리 일행과 동행하게 된 것은 운교동 골목 순례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귀국하여 인천공항에서 코로나19로 14일간 격리 생활을 하고 나서 곧장 춘천 어머니에게로 왔다. 그리고 운교동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왔다고 했다.
윤 시인은 그니가 살았던 운교동 옛집을 찾고 싶어 했다.
4년 전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시고 어머니 혼자 빈집을 지키는 것이 안쓰러워 자식들이 운교동 집을 팔아 퇴계동 아파트로 어머니를 모셨다.
어머니는 늘 옛집을 그리워했다. 몸이 불편해 나서지 못할 뿐이지 마음은 늘 옛집을 향해 있다고 했다.
어머니가 그니보다 더 들뜬 마음이 되어, 어서 가보라며 등을 떠미셨다고 한다.
이형재 조각가, 정지인 화가, 윤재영 시인, 그리고 나와 아내 이렇게 다섯이 모였다.
우리는 출발했다. 운교동의 등뼈라 불리는 길을 따라 약간 경사진 골목을 걸어 올라갔다.
윤시인은 얼마나 조심스레 주위를 살피며 걷는지 마치 시간 이 정지해버린 느낌이었다.
조운동 엄마의 일기
사라져버렸군요. 감쪽같이.
2년 전에 헐린 옛 집터를 바라보며 윤 시인이 말했다.
수학교사였던 아버지가 원주에서 교편생활을 하다 춘천고로 발령이 나자 마련한 집이 없어져 버렸다.
파란 대문의 디귿자 형태의 집, 가운데 화단이 있고 늘 어머니가 꽃을 가꾸었던 집,
윤 시인이 춘천여고와 강원대를 걸어서 다녔던 집, 언덕빼기 골목을 돌아가면 가까이에 운교성당과 닿게 되어 있는 집.
집 왼쪽 골목으로 나서면 운교사거리가 나오고, 오른쪽 언덕 계단을 오르면 육림고개가 한눈에 들어왔다.
시장도 가깝고 학교도 그리 멀지 않아서 집터를 잘 잡았다고 어머니가 늘 자랑하곤 했다.
그리 넓지 않은 마당의 화초밭은 어머니의 유일한 동무였다. 크고 작은 백일홍, 맨드라미, 사르비아 등을 심었다.
가을이면 그것들이 짙붉은 꽃을 피워내곤 했다. 꽃대와 꽃대 사이로 거미줄 친 무당거미와 오줌싸개라 불리는 사마귀도 함께 살았다.
어머니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거미와 사마귀를 관찰하는 재미로 가을 한철을 보냈다.
다른 곤충과 벌레를 잡아먹는 장면, 거미와 사마귀 간의 내밀한 기싸움을 일기장에 자세히 묘사했다.
어느 날 큰아들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곳도 화단이 있는 집에서였다. 어머니는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나는 얼이 반은 빠졌고, 혼은 반이 나갔다. 얼과 혼은 같이 동일한 단어인가?
아들아. 마음이 아직 너와 같이 있구나.
훗날 팔순 기념으로 자식들은 <엄마의 일기>를 출판해 증정해 드렸다.
어머니는 떨리는 손길로 자신의 지나온 기쁨과 슬픔, 그리고 뼈아픈 기록들을 자식들의 손에서 넘겨받았다.
집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터엔 들깨와 콩 포기가 무성했다. 빈 의자 하나가 외롭게 놓여 있었다.
어머니는 저 의자에 앉아 사라진 집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사마귀와 거미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이 되어 있을까.
성당으로 가는 길
성당으로 가는 골목길은 허망했다. 낯설고 멀었다. 벽이 허물어져 안이 들여다보이는 집이 있었다.
아직 유리문이 깨지지 않아 깨끗해 보였다. 환삼덩굴이 벽을 감싸고서 늘어진 감나무 가지를 덮기 시작했다.
이 집도 빈집이었다. 골목을 돌아가니 새끼 고양이 세 마리가 모여 있었다. 어미 고양이는 먹이를 구하러 나간 것일까.
아, 빈집 처마에 거미줄이 잔뜩 쳐져 있었다. 무당거미들이 여기저기 매달려 거미의 왕국을 구축해 놓았다.
그런데 우리가 걷고 있는 길바닥에 초록색 사마귀 한 마리가 납작 엎드려 있는 게 아닌가.
어머니의 일기는 계속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거의 시간이 현재의 시간 속에 존재하듯이.
그 광경은 지난날 감쪽같이 사라진 화단의 풍경을 우리의 눈앞에 선연히 떠올려주고 있었다.
채송화 아주머니
우연히 만나, 우연히 말을 나누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게 마련이다.
일면식도 없던 사이임에도 십년지기처럼 다정한 사이가 되는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 법이다.
하얀 벽의 기와집 곁을 지나다 화분에 채송화가 곱게 피어 있는 것을 보았다. 참 보기 좋아요. 윤 시인이 말했다.
그런데 어느새 나타났는지 기와집 채송화 아주머니가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건 꺾꽂이한 거예요. 겨울에도 방 안에 두면 활짝 펴요. 그리고 물었다. 가져갈래요?
채송화를 화분에서 뽑아 신문지에 곱게 싸서 윤 시인에게 주며 말했다.
예쁜 건 같이 보는 게 좋아요.
넌 할 수 있어
회색구름이 몰려와 군데군데 그늘이 졌다. 하늘은 거대한 회색구름 군단이 점령했다.
봉의산이 그늘진 부분과 환한 부분으로 확연히 구분되어 일렁였다.
이 길을 걸어서 성당에 갈 때 전 결심했어요.
윤 시인이 걸으며 조용히 말했다.
윤 시인은 미국에 가서 공부를 하고 싶었다. 미지의 너른 세계는 그니가 꿈꾸는 희망과 설렘의 세계였다.
성당의 아일랜드 신부님께 주일에 두 번씩 영어를 배웠다. 마침내 자신의 꿈을 어머니께 말씀드렸을 때 어머니는 힘주어 말했다.
그래. 넌 할 수 있어.
힘들고 어려울 때 어머니의 말은 그니에게 용기를 주었다. 어머니는 딸에게 자유를 주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말 못 할 고독 속에 맺히고 맺혔던 응어리. 그것을 부숴버리는 한 여인의 외침이 윤 시인의 가슴을 쳤다고 한다.
아, 마침 구름의 조화인가. 누구랄 것도 없이 일제히 탄성을 발했다.
눈앞에 무지개가 선명히 떠올랐던 것이다.
회색구름 사이로 군데군데 내비치는 햇살이 참으로 눈부셨다. 도시는 오렌지 빛깔로 수채화처럼 밝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