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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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58

2020.11
#봄내를 품다
김길소의 그때 그 사건 47
오일장
닷새마다 꽃피우는 삶의 현장


춘천 풍물시장 개장(1989.8.)



봄내골에는 전국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유별난 ‘5일장’이 있다.

수도권과 직결된 경춘선이 지나는 고가철도 밑에 둥지를 틀고 있는 ‘춘천풍물시장’이다.

주변에 빼곡한 고층빌딩들이 들어찬 일본 도쿄 시가지 한복 판을 가로지른 고속도로 아래 자리 잡은 상가를 연상시킨다.

가을걷이를 끝내고 겨우살이 채비에 들어가는 이맘때마다 가장 풍성한 상거래가 이뤄졌던 곳이다.

지난 21년간의 약사천 시대를 마감하고 온의동으로 보금자리를 옮긴 지도 벌써 10년이 훌쩍 지났다.

아득한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우리나라 5일장은 깊은 역사만큼 그 고장의 모습을 담고 있는 삶의 현장이기도 하다.


샘밭시장


고층빌딩 숲속에 둥지 튼 랜드마크

‘춘천풍물시장’(2, 7일장)의 뿌리는 약사동 복개 하천 위에 있었던 5일장이 효시이다.

봄내골 상권의 중심축을 이뤘던 중앙시장(현 낭만시장)과 간선도로였던 중앙로 주변과 약사리고개를

채 넘지 못해 눌러앉았던 온의·효자·퇴계동 쪽의 노점상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1989년 정부의 도심 노점상 정비계획에 힘입어 약사천 복개공간에 모여든 노점상들은 전통 5일장의 정취를 살려 2일과 7일에 장을 폈다.

초기에는 약사리고개 넘어 중앙시장의 부설장터 같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찾는 사람이 늘어 장날에는 으레 인산인해를 이뤘다. 철 따라 수확한 산나물과 농산물뿐만 아니다.

농가에서 담은 된장과 막장 장아찌와 직접 짠 참기름 들기름 같은 식재료를 비롯, 전국 5일장을 순회하는 잡화상까지 몰려들었다.

싼값에 끼니를 때울 수 있는 맛깔난 장국밥과 닭갈비 잔치 국수 영양탕 돼지고기집이 입소문을 타고 손님을 끌었다.

여기에다 친구나 가까운 사람끼리 추렴해 큰 부담 없이 술을 마시려는 술꾼들까지 몰려들었다.

이 덕분에 한때 약사동에 새로운 상권이 형성될 정도로 북적거렸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하였던가. 호황을 누리던 약사5일장의 존폐를 가를 먹구름이 드리웠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오염된 약사천을 깨끗한 개천으로 복원하는 사업이 추진돼 설 땅을 잃게 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왁자지껄한 장터가 도심 주택가의 분위기를 그르치고 있다는 눈총을 받아오던 터였다.


이에 사업을 추진할 춘천시가 발 빠르게 상인들과 협의, 갈등을 조율해 이전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 후 철도시설공단으로부터 고가철도 하부공간 부지 사용허가를 받아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깨끗하게 이전을 성공시켰다.

이로써 지난 21년간의 ‘약사동 시대’를 마감하고 춘천풍물시장의 ‘온의동 시대’를 활짝 열었다.

서울 동대문운동장에 있던 축구장이 올림픽경기장 이전으로 빈자리가 되자 풍물시장이 섰다가

도심지 정비를 위해 신설동의 폐교 자리로 옮긴 사례와 닮았다.



경기침체와 코로나 여파로 움츠러든 상경기

 강남동 온의사거리에서 공지천 호반교에 이르는 700여m의 일자형 구간에 마련된 13동 143개에 이르는 말끔한 점포와

좌판 공간을 마련한 춘천풍물시장은 봄내골 사람들만 이용하는 게 아니다.

바로 옆에 있는 전철의 남춘천역과 춘천버스터미널을 통해 수도권과 인근 지역 주민들이 장터를 찾는 더블 역세권의 소문 난 5일장으로 발돋움했다.

이 주변에서 간편한 차림을 한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 검은 비닐봉투를 들고 있거나 등산가방을 메고 있으면

십중팔구 영락없이 장날에 풍물시장 장터에 들른 사람들이다.

종합운동장이 자리 잡았던 드넓은 온의벌에 빼곡히 들어찬 수십 층짜리의 고층빌딩 숲과 아파트촌 인근에 둥지를 튼 후에는

여느 곳의 5일장과 다른 여러 가지 특징을 지녔다.



고가철도 밑에 전통적이고 견고한 상설점포를 세웠다는 것 이외에 평일에도 운영되는 상시常時시장 체계를 갖췄다.

도심 한가운데 초현대식 대형마트 바로 옆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배후세력(소비자) 안에 공존하고 있다는 점도 특이하다.

장날마다 차량이 넘쳐 심각한 주차난을 겪었던 어려움도 2018년 102억원을 들여 춘천시가 5층짜리 주차건물(차량 232대 수용)을 완공시켜 해소시켰다.

장날을 택해 코로나19가 몰고 온 팬데믹pandemic 사태 이후 어려움에 놓여 있을 풍물시장을 찾았다.

사회적 거리두기 여파로 장기 휴장했던 탓인지 도로변 주차공간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없었던 좌판도 헐렁해 보였다. 발 디딜 틈이 없었던 장거리 전체 분위기도 예전 같지 않았다.

그러나 흩어져 있는 좌판 가운데 10여 개소에 이르는 송이버섯 판매장에 사람들이 몰려 있고 흥정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된 삶에 지쳐 방전된 몸을 이끌고 여유 시간에 짬을 내 두런두런 살펴보던 재미를 즐겨온 탓이었을까.

눈요기하기 무섭게 의욕이 솟구치고 장마당의 생동감에 빨려 들어갔다.

온갖 풍상을 견디며 22년간 풍물생고기집을 운영해온 박민숙 씨(13동 100호)의 “로또 당첨과도 바꾸지 않을 소중한 나의 직업”이라는 강변에 진한 애착이 묻어났다.


(왼쪽) 약사천 복개공사(1982.10.) / (오른쪽) 약사천 복원 후 모습(2013.6.)


상설시장의 뿌리는 모두 전통 5일장

 풍물시장과 쌍벽을 이루는 봄내골 제2의 5일장은 신북읍 ‘샘밭장’(4, 9일장)이다.

신북사거리에서 여우고개 중간의 국토변에 자리 잡고 있다.

읍사무소 옆에 있던 전통장터를 2004년 새로 꾸몄다가 2011년 춘천시가 정부에서 추진하는 소도읍 육성사업의 일환으로 현 위치로 옮겼다.

새롭게 꾸민 샘밭장은 2,200㎡ 규모로 130여 개에 이르는 노점이 4열로 늘어선 구조이다.

이때 노점의 비가림 시설을 갖추고 체육시설(축구장 족구장 배드민턴장 등)과 공연장 주차장(차량 305대 수용) 등 각종 편의시설도 함께 대폭 확충했다.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제공해 고객을 더 많이 찾아오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지금은 낭만시장으로 이름을 바꾼 옛 중앙시장도 거슬러 올라가면 전통사회의 5일장과 맞닿는다.

조선 시대에는 읍내 장이었다가 상설화된 시장을 6·25 전쟁 직후인 1952년 미군들이 점포를 지어줘 상권의 중심을 이뤘다.

그 후 1960년 현 위치에 335개의 번듯한 점포를 지어 봄내 골 상권의 중심축으로 오랫동안 영화를 누렸다.



번개시장(1988.11.)


게릴라전 방불케 하는 번개시장

동이 트기 전에 장이 섰다가 해가 중천을 넘어설 무렵 장을 접어 번개시장으로 불리는 장마당도 두 곳이 있다.

광복 이전부터 봄내골의 채소창고 노릇을 톡톡히 해 온 ‘소양로 번개시장’과 급격한 도시 확장에 따라 자연스레 생성된 ‘애막골 새벽시장’이다.

역사가 깊은 소양로 번개시장은 1980년대 이전까지 초겨울이 되면 이 고장 최대의 김장시장으로도 꼽혔다.

현재는 묵은 때를 씻어내고 낡은 상점들을 햇빛 가림막을 갖춘 산뜻한 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개축해

인근 근화동 지역의 도시재생사업과 어우러진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변두리 지역에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고 4차선 대로가 뚫려 새벽부터

넓고 한적한 인도 변에 장이 서는 애막골 새벽시장은 맛깔진 김밥말이 노점상이 많기로 유명하다.

오후가 되기 무섭게 모든 상인들이 주변을 말끔히 치운 후 철시해 떠들썩했던 장의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제철에 나오는 이 고장 특산물의 집결지 노릇을 하고 있는 전통5일장과 번개시장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이 고장 풍속도를 그려나갈지 자못 궁금하다.


새로운 상거래기법 개발로 설 땅 위축

 고도성장에 따른 경제 발전과 더불어 1980년대 이후 급변하기 시작한 유통 근대화로 상거래 형태가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

재래시장과 슈퍼마켓 백화점에 집중됐던 상거래가 대형마트와 유통점 공판장으로 세분화되어 경쟁적으로 확산 중이다.

지금은 디지털시대와 코로나 확산에 이은 언택트 시대를 맞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새로운 상거래기법이 넘쳐나 점차 설 땅을 잃어 가고 있는 중이다.

정부 차원의 다양한 지원에 힘입어 전통상거래 문화와 텃밭을 지켜 나가려고 몸부림치고 있지만 어딘지 버겁고 힘겨워 보이는 게 현실이다.

갖가지 수익 창출을 위한 회생 대책이 추진되고 있어 백약이 무효가 아니기를 바라게 만든다.

 이 시점에서 문득 몇 년 전 가족과 함께 유럽을 다녀왔을 때 일이 떠올랐다. 골동에 관심이 있어 애써 몇 나라의 풍물시장을 찾았다.

거의 모든 나라에서 버리기는 아깝고 남에게는 필요한 물건을 사고파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이 가운데서도 스위스 취리히는 압권이었다. 넓은 광장에 집안에서 쓰지 않는 물건을 가지고 나와 싼값에 새 주인에게 물려주는 광경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커다란 장마당 축제를 방불케 했다.

봄내골 아파트촌마다 반듯한 물건을 버리는 경우가 부쩍 잦아졌다. 이사철인 요즘에 더 많이 눈에 띈다.

일본에서는 고장의 상공회의소와 같은 조직이 경매제도까지 동원해 물자재 활용에 큰 성과를 거두고 있는 중이다.

언뜻 침체된 5일장 분위기를 되살리기 위해 장이 서지 않는 날 이를 활성화시켜 봄이 어떨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어느 시인은 5일장을 가리켜 삶의 집합이요, 현주소인 온갖 거리 장단이 지천이라며 이렇게 읊었다.


“(중략)
닷새의 여백이
옹기종기 들꾀
요긴함 찾기가 보물찾기보다 신난다
정갈히 모셨다가
치열에 순응하는 거래 내역에
어느새 삶이 취해 든다
오금이 저려오는 온갖 애환이
에너지로 일렁이는 갱신의 현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