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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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59

2020.12
#봄내를 품다
최돈선의 골목이야기 12
아름다운 날의 가을 그 골목, 우두동
시든 꽃들이 아름다운 날의 가을 그 골목, 우두동 

동네 수호수인 메타세콰이어와 우두산 그림 이형재 



사소한 개인사도 이따금 전설이 된다

한 사람이 있었다.

그니는 이지적인 용모에 호기심이 많은 여성이었다. 그니는 투명한 햇빛과 그 햇빛을 온몸에 받고 있는 꽃들의 색채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니는 물들어 가는 것들에 대해 깊은 애정을 지니고 있었다.

나무가 지닌 푸름과 그 푸름이 어느 날 시나브로 색깔을 머금고서 조락한다는 것을 그니는 조용히 생각하곤 했다.

눈 오는 날이면 알몸의 나무가 한겨울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도 그니는 생각하곤 했다. 그렇게 하얀 나무는 그니의 마음속에 늘 사려 깊게 자랐다.


우두 상리에 있는 집. 반밖에 안 남은 밤나무가 고즈넉하니 인상적이었다.
가을에 옆집 대문 앞에 접시꽃이 담장 위까지 만발해서 아름다웠다.


그니는 책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30년 전, 남편과 함께 호수를 안은 춘천의 도시 한 골목에서 문학서적을 만들었다.
문학서적은 팔리지 않았다.


소설이나 시집이 마른 나무에 매달려 시들어 가는 꿈을 꾸곤 했다. 남편이 출판업에서 손을 떼자, 그니는 혼자서 깊은 밤까지 책을 만들었다.

이따금씩 창밖으로 비가 내렸고, 계절이 바뀌어 골목 저쪽의 가로등에선 눈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어느 날 봄엔 벚나무 꽃비가 하루 종일 자욱이 뿌려질 때도 있었다.

그렇게 그는 혼자서 30년 동안 책을 만들었다.
강원도의 모든 인문지리와 지역의 역사가 그니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었다. 그니의 책 만드는 솜씨는 꼼꼼하기로 유명했다.

일감이 심심찮게 들어왔고, 출판사도 튼튼히 자리를 잡아 갔다.

바빴다. 혼자 하는 일이라 늘 그랬는지도 몰랐다.

언제는 바쁘지 않았던가.


우두상리 강변 산책길 옆 ‘머슴빱’의 봄 풍경이다. 자연을 사랑하고 옛 풍경들을 사랑하는 주인의 마음이 보이는 집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그니는 어느 봄날, 그니의 출판사 <산책>의 문을 조심스레 열고 나왔다.

인근 마을을 산책하기로 마음 먹은 때문이었다. 외출에 몹시 인색했던 그니가 눈을 뜬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변화는 내면으로부터 문득, 왔다.
 그니의 이름은 원미경.

그 원미경 님은 그니 스스로를 세하라 부르길 좋아했다. 그니는 나직이 그니를 향해 “세하, 떠나볼까?”라고 중얼거렸다.

60을 바라보는 세하의 외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왼쪽) 우두 하리 코아루아파트 옆 골목길에 있는 집이다.
벽화와 대문에 그려진 그림이 인상적이어서 알아봤더니 옆집 주인이자 근처 음식점 주인의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오른쪽) 우유 가방이 걸린 집





세하의 그림일기

마을은 고요했다.

자전거를 타고 할아버지 한 분이 어디론가 갔다.

마을은 적막했다. 봄 햇살이 시멘트 담을 몰래 타고 넘어가 안쪽을 비췄다. 마당엔 나무들이 새순을 틔우고 있었다.

개가 낮게 짖었다. 그냥 반가운 인사인 듯싶었다. 봄날은 나른했고, 봄날은 겨드랑이에 날개를 단 듯이 둥둥 떴다.

설렘은 청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날 이후로 세하의 모습이 마을 사람들 눈에 어른거렸다.

이 집은 지붕에 얹은 늙은 호박에 눈이 가 그림을 그렸었는데,
어느 날 앞에 핀 강낭 꽃 덩굴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아름다움을 강조하다보니 장미꽃처럼 커져버렸다.


생전 단 한 번의 만남도 없었던 중년의 한 여인이 보랏빛 자전거를 타고 골목길을 물고기처럼 유영했다.

그리고 하나하나 스케치북에 집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봄꽃들이 지고, 나무가 무성히 잎을 다투어 뻗었다.

여름장마가 요란히 스쳐 갔다. 천둥이 쳐 우두산이 나직이 신음하자, 놀란 우두산 매 한 마리가 소양강 버드나무 숲을 건너 솔밭으로 날아갔다.


우두산 가기 전 큰길에서 동네로 들어서는 샛길로 들어가다 만났던 집이다. 플라타너스가 여름을 아직 담은 채 가을을 기다리고 있었다.
담을 타고 오르는 나팔꽃도 예쁘고 이제 얼굴을 드러내는 쑥부쟁이도 고왔다.


세하나무

가을이 왔다.

나무들이 제 몸의 변화를 느끼기 시작했다. 나무들은 저마다 제 색깔로 엽서를 써 갔다. 물들어감은 어떤 예감을 불러오는 법이다.

집 안의 나무나 바깥의 나무나 모두들 하나같이 침묵했다. 그들은 철학자처럼 조용히 사색에 잠겨 있었다.

그래서 햇빛은 더욱 투명해졌고, 그늘은 더욱 묵지처럼 짙어졌다.

그러나 세하의 나무는 여전히 푸르렀다.

우람한 나무였다. 그 나무를 죽은 한 노인이 젊었을 적 심었다고 했다. 100살이 넘은 나무였다.

나무의 이름은 메타세콰이어. 하지만 세하는 그 나무를 세하나무라 불렀다.

메타세콰이어는 모든 사람들의 나무이지만, 세하나무는 이 세상 단 하나뿐인 세하의 것이었다.

세하는 어릴 적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읽고 자랐다. 세하는 하이디의 오두막집을 늘 꿈꾸곤 했다.

하이디의 오두막 뒤란엔 아름드리 전나무가 높이높이 자랐다. 그 전나무는 바람의 손길에 의해 우우우, 울곤 했다.

세하나무는 알프스의 나무라 생각되었고, 세하는 그렇게 상상만으로도 알프스를 그리워했다.

세하는 그런 세하나무가 이 마을을 지키는 수호수라고 굳게 믿었다.



시드는 꽃들에 대한 경의

우두동 상리, 중리, 하리의 골목길들은 세하의 눈에 환히 잡혔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를 기록하는 일은 세하를 늘 즐겁게 했다.

일을 하다가도 불현듯 골목길이 그리워지면 보랏빛 자전거를 타고 달려갔다.

마을 골목길마다 소양강 둑에 닿게 되어 있었다. 그 둑을 천천히 자전거를 타고 주유했다.

벚나무 이파리들이 곱게 물들어 갔다. 나룻배를 타고 건너던 강 위로 다리가 놓인 지 오래였다. 강 가운데로 버드나무 숲이 무성했다.

겨울이면 그 버드나무에 소금버캐 같은 꽃이 하얗게 필 터였다. 그것을 사람들은 상고대라 불렀다.

조락은 멈출 수가 없다.

그것이 자연의 순환임을 나무도 사람도 날아가는 새도 안다. 세하는 그린다.

지붕 위의 늙은 호박도 강낭콩 덩굴도 나팔꽃과 쑥부쟁이도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 지붕을 타고 오르는 한삼덩굴도.

세하는 그림을 다 그린 다음, 화가가 사인하듯 이렇게 썼다.

감나무, 대추나무, 고염나무, 멀리 벚나무도 보인다. 우두동 집들은 모두 나무를 품고 있어 아름답다.



시드는 것은 나무뿐만이 아니다. 시드는 것은 사람뿐만이 아니다.

시드는 것은 이 세상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다. 시드는 것은 그래서 경건하고, 깊고, 종교적이다.

시듦으로 여물어지고, 시듦으로 색깔을 감추나, 시듦은 놀랍게도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설렘을 가지게 한다.

서리가 내려앉은 꽃들에게 우리가 무언의 경건을 보냄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생의 마감을 깨닫는 일은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것 같은 고즈넉한 집이다. 지붕을 타고 오르는 한삼덩굴도 집과 어우러지니 가을 풍경으로 손색이 없다.


겨울예감

첫눈이 오면 세하는 눈 내리는 마을 풍경을 그릴 것이다. 첫눈이 오면 저마다 눈사람이 되어 골목길을 쏘다닐 것이다.

세하의 마음엔 매일매일 눈이 오는 마을이 있다.

그 마을 어느 창가 담벼락에 기대어 세하는 이렇게 말하리라. 꽁꽁 언 마을의 나무도, 꽃들도, 모두 하얀 꽃을 피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