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폐지 줍는 노인들과 함께 서로 챙기며 살아가는 삶 뭉클
“고물 팔러 오시는 어르신들과 매일 만나는 일, 그게 가장 즐겁다”는 원현숙 씨
“언니, 115킬로니 4,600원!”
할머니 한 분이 손수레 가득 종이박스를 싣고 오자 수레째 저울에 올려 무게를 잰 광명고물상 원현숙(51·후평동) 씨는 곧바로 값을 치른다.
“코로나 때문에 외국 수출을 못 해 고물값이 너무 없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폐지가 킬로당 30원이었는데, 어제부터 40원으로 올랐네요.
박스 한 수레 모으려면 반나절 이상 돌아다녀야 하는데 최저임금은 고사하고 한 끼 밥값에도 부족한 돈이죠.”
원 씨는 “그동안 주로 중국으로 고물을 수출했는데 그 길이 막혔다”고 한다.
고물 유통은 동네 고물상들이 생활 주변의 파지나 고철 등을 수집해 중간상에게 넘기면,
중간상들이 대량으로 모아 수출 혹은 재활용업체에 파는 식으로 이뤄진다.
박스나 폐지 수거는 주로 저소득층 어르신들의 용돈벌이 수단인데, 고물 시세가 낮아 걱정이라는 것이다.
“지저분하다고 고물상을 싫어하는 분들도 있는데, 제 눈에는 고물이 보물처럼 보입니다.
버려지는 물건을 수집해 환경도 개선하고 자원을 아끼고, 사고파는 사람들도 먹여 살리는 등 장점이 더 많죠.
폐지·고철·옷가지·이불 등 그냥 내다 버릴 것은 하나도 없어요. 종류별로 가격 차이는 있죠. 고철만 해도 킬로당 180원부터 시작해서….”
원 씨 부부의 고물상 경력은 약 20년. 춘천 출신인 원 씨는 결혼 후 경기도 광명시에서 남편과 인테리어사업을 했는데,
1998년 IMF 외환위기 당시 공사대금을 못 받는 일이 누적돼 도산했다.
“남편이 너무 착해 돈 달라는 말을 잘 못 해요(웃음). 고물상을 하셨던 이모님의 권유로 이 일을 시작했는데,
처음엔 부끄럽기도 하고 고물상이란 일 자체도 썩 내키지 않았었죠.”
부부는 트럭을 몰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박스·고철 등을 수거해 되파는 일부터 시작했다.
불규칙한 식생활과 과로 등으로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10여 년을 열심히 살았고, 2010년 현재의 자리(소양로 120번길 5)에 관련 설비를 갖춰 고물상을 차렸다.
남편 이동진 대표는 입찰·철거 등 주로 대형거래를 맡고, 원 씨는 장애인 직원 2명과 폐지나 고철 등
생활 주변 고물을 매집하고 분류해 중간상들에게 넘기는 일을 담당한다.
“어르신들과 매일 만나는 일, 그게 가장 즐겁죠. 남편이 할머니 밑에서 자라서인지 할머니들을 아주 좋아해요.
처음엔 이해가 잘 안 됐지만 이제는 저도 그래요(웃음). 고물 팔러 오면서 채소도 갖다주시고, 나물거리도 다듬어주면서 한 식구처럼 지냅니다.”
폐지를 모아 팔러 오는 어르신들은 하루 10여 명 내외.
고물상 한쪽의 컨테이너 사무실은 아침 7시부터 어둑해질 때까지, 커피나 음료를 제공하는 동네 사랑방이다.
누군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문병 가고 돌아가시면 문상을 한다.
얼마 전 홀로 살다 세상을 뜬 어르신의 경우, 연고자가 없어 세 들어 살던 집 살림을 대신 정리해 주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 만남의 직접적 계기가 된 ‘조용한 나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소양동 광명고물상(대표 이동진)은 5월 7일 소양동 행정복지 센터를 방문해
관내 저소득 가구에 전달해 달라며 컵라면 130박스를 기탁했다.’ - 6월호 <봄내>지 ‘봄내골 소식’
오랜 세월, 어려운 형편의 사람들과 동고동락하며 살아온 부모를 보며 자랐던 까닭일까.
외동딸(27)은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후, 현재 신북읍 소재 ‘참사랑의집’에서 시각장애인 재활을 돕는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