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골목이 낯설어질 때
골목과 거리는 현재의 풍경만 간직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에겐 묘하게도 지금 보고 있는 풍경이 낯설어질 때가 있다.
현재의 골목이 해체되고, 지난날 기억의 풍경이 떠올라 다시금 재생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땐 그랬는데….
이제는 없는 그때의 풍경과 그때의 사람들을 그리움처럼 부르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다.
그것들은 모두 사라져버린 풍경들이다. 하지만 우리 잠시 생각에 잠겨서 낡은 필름이 돌아가는 소리를 아득히 들어보자.
어쩌면 잊을 수 없는, 그 정겨운 냄새가 은은히 풍겨올지도 모르지 않는가.
눈 내리는 낙원동 골목길
낙원동, 경춘서점을 기억하는 사람들
낙원동.
겉으로 춘천에서 제일 화려한 곳은 단연 명동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중앙로 명동보다 더 깊은 이야기가 숨어 있는 낙원동을 떠올린다. 먼 외지로 떠난 분들에겐 더욱 그러하다.
지금 우리가 명동에서 낙원동을 가려면 중앙로 횡단보도를 건너거나 지하도를 내려가 지하시장을 천천히 지나 빼꼼히 뚫린 출입구를 통해 올라가면 된다.
이전, 지하도가 없었을 때는 건너편 초록색 신호등을 기다리면서 건널목 찐빵집의 구름처럼 솟는 하얀 김을 바라보곤 했다.
솥에서 쪄지는 찐빵 냄새가 냉기를 타고 건너와 코끝을 자극했다.
그때면 플라타너스의 겨울나무가 흔들려 보였다. 앙상하게 팔 벌린 나목이 받아 들은 것은 탐스런 눈이었다.
펑펑 내리는 눈발 속에 낙원동 골목 헌책방 간판이 흐릿해져 갔다. 나목도 서서히 하얀 나무로 모습을 바꾸었다.
그림 이형재
40년 전, 한 청년이 경춘서점을 들어섰다. 그는 헌책 더미 속으로 스며들 듯 들어갔다.
청년은 1978년 강원대를 졸업하자 갈 길이 막막했다. 당장 취직을 하려 해도, 당시엔 소아마비를 가진 장애인을 받아 줄 곳이 아무데도 없었다.
장애인을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그래서 학자가 될 결심으로 교육대학원에 입학했다.
종합학원 강사 일을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벌었다. 그는 경춘서점을 자주 이용했다. 좁은 서점 안은 헌책 들로 가득 차 있었다.
존 크라우트의 속 페이지
존 크라우트가 쓴 .
‘1865년 이후의 미국’이란 그 책을 펼쳐 든 순간, 그는 온몸에 전율이 이는 것을 느꼈다.
1865년은 미국의 내전인 남북전쟁이 끝난 해였다. 115년 전의 이야기였으나 그 시대가 바로 청년이 가야 할 길을 알려주었다.
‘미국! 그래, 미국이다. 거긴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는다더라’ 청년은 마음속으로 외쳤다. 청년은 서가에 몸을 기댄 채 그 원서를 훑어 내려갔다.
미국 생활은 청년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었다. 그는 열심히 공부했다.
그가 택한 전공은 미국외교사로 1995년 북텍사스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귀국한 그는 평택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미국학의 원조로서 많은 학문적 업적을 남겼다. 2020년 9월 1일 그는 정년퇴임을 했다.
김남균 박사.
지금도 그는 그를 이끈 책 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책 한 권이 한 인생을 바꾼 이야기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책을 경춘서점에 들고 와 팔았을 어느 가난한 지식인을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한 가난한 대학원생이 그 책을 뽑아 읽고 자신의 미래를 떠올렸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 책이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꾸었다면 그 얼마나 가슴 저릿한 감동인가.
어느 누구는 책을 팔아 요긴한 데 썼고, 어느 누구는 그 책으로 미래의 꿈을 키웠다. 한때 나도 귀하게 읽었던 책을 경춘서점에 판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헌책방에서 내가 필요한 책을 구입하곤 했다.
청년 김남균과 현재 김남균 박사 모습
학창시절엔 경춘서점 안의 어둡고 좁은 통로를 즐겼었다.
오래된 책들은 특유의 곰팡이 냄새를 꽃피웠다. 냄새나는 눅눅한 책들 속에 있노라면 코끝이 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비밀스런 탐험은 무한한 상상력을 키우는 법이었다. 얼마나 깊은, 얼마나 신비로운, 얼마나 설레는 책동굴의 체험인가.
비록 나는 가난한 시인이 되었을 뿐이지만 문학서적을 늘 곁에 두고 살았다. 그것이 나의 푸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경춘서점이 사라져 버렸다.
이름이 ‘경춘서점’에서 ‘경춘서적’으로 바뀌어 있었다. 놀랍게도 경춘서적은 책방이 아니었다. 그 집은 경양식 요릿집이었다.
그 많던 책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춘천 명동의 큰 책방인 청구서점과 학문사가 문을 닫은 지 벌써 오래인데, 그럼에도 낙원동 골목 경춘서점은 독야청청 한자리를 지켜 왔었다.
비록 쓸쓸할 정도로 초라했지만 눈물겹도록 그 초라한 모습이 아름답게 보였다. 경춘서점은 하루에 두서너 명 찾아오는 손님을 고요히 받을 뿐이었다.
그 고고함이 마치 범접할 수 없는 침묵 같았었다.
석양 무렵이면 헌책방엔 더욱 짙은 그늘이 드리우곤 했다.
성냥불소녀가 켜댄 불꽃이 사라지자마자 모든 것이 다 꺼져버리듯이 경춘서점은 경춘서적이란 희한한 이름을 남기고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이제 내부는 깔끔히 디자인된 주방과 식탁으로 채워져 있다. 바깥 입구 칠판엔 연어덮밥과 돈가스, 육회라는 글자가 하얀 백묵글씨로 써져 있다.
어느 날 경춘서점이 그리워서 그 앞에 서 있을 추억의 사람은, 과연 그 경춘서적의 문을 조용히 밀고 들어설 수 있을까.
아마도 십중팔구 실망한 나머지 돌아서겠지만, 몇몇은 문을 밀고 들어가 연어덮밥을 주문하고 나서 넌지시 주인에게 경춘서점 이야기를 꺼낼지도 모른다.
어디로 간 거예요?
어디 이사를 떠났을 거라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유일한 촛불 같은 서점.
그 서점이 춘천 어느 골목엔가 다시금 둥지를 틀고 자리하고 있을 거라는 믿음, 그것 하나로.
어디로 간 거예요?
그 물음은 물론 자기 자신에게 묻는 물음일 것이다. 사라져버린 것은 기억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걸 추억의 사람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경춘서점(2017) 경춘서적(2020)
낙원동 뒷골목에 눈 내리네
밖을 나서니 눈이 내린다.
2020년 첫눈이다. 뒷골목 거리의 간판을 흐리게 하는 눈은 쓸쓸하다.
녹슨 생철지붕에도, 뾰족한 교회당 첨탑에도, 담쟁이덩굴에 몸이 감싸인 낡은 집에도, 조그만 약국에도,
진열된 사진에만 있는 박제된 미소의 미소사진관에도, 어둡고 허름한 고모네 주점에도, 주인 떠난 기와지붕의 빈집에도,
간판 없는 유리뿐인 초록시간의 작은 커피점에도 눈이 내린다.
아직도 옛날 옛적의 찐빵집은 성업 중이다. 비록 그 빵집 주인은 아닐지라도 그곳에 찐빵을 찌는 가게만 있어도 사람들 마음이 얼마나 훈훈해지겠는가.
마치 이 눈 내리는 어느 골목, 성냥팔이소녀가 성냥불을 켜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만 눈시울이 붉어질 것이 아닌가.
김남균 박사가 이 낙원동의 겨울을 걷게 된다면, 그는 어떤 그리움을 소환해낼 것인가.
낙원동 뒷골목의 첫눈은 그냥 조용히 저녁을 불러와 가로 등에 머문다. 눈을 맞고 있던 가로등이 눈을 반짝 뜬다.
가로 등에 모인 꽃송이 같은 눈은, 한밤 내내 쏟아질 것만 같다. *
경춘서적(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