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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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35

2018.12
#봄내를 품다
노재현의 한소끔
실패는 나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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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정부가 지원하는 연구개발(R&D) 과제는 매년 5만 건이 넘는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4.23%(2015년 기준)로 우리나라가 세계 1위다. 한 가지 더. 우리 정부가 지원하는 R&D 과제의 성공률은 무려 98%(선진국은 20~30%)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과학기술로 벌써 선진국들을 압도하고 신지식·신기술로 무장한 벤처기업들로 넘쳐났어야 한다. 매년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건 일도 아니었어야 한다. 불행히도 현실은 전혀 다르다. 왜 그럴까. 우선 짚이는 게 ‘과제 성공률 98%’가 가짜 통계 아니면 속 빈 강정이라는 점이다. 대통령 책상에까지 올라갔다니 통계 조작은 아닐 것이다.


세금을 들였으니 눈에 보이는 성과가 나야 한다는 관료들의 조급함과 면피주의, 이런 관료들의 입맛을 의식한 연구자들의 안이함과 기회주의가 짝짜꿍을 이루었을 것이다. 박사급 연구자들이 절대 실패할 리 없는 중학생 수준의 연구과제를 택해 적당히 주물렀고, 관료들은 알면서도 넘어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카우보이들 사이에 전해지는 재미있는 금언이 있다.

‘좋은 판단은 경험에서 나온다. 문제는 많은 경험들이 나쁜 판단 덕분에 얻어진다는 점이다.’


미국이 창업과 혁신의 메카처럼 군림하는 데는 실패를 경험이자 귀중한 자산으로 대접하는 문화가 깔려 있다. 올해 9월 열린 ‘대한민국 균형발전 정책박람회’에서 임형백 교수(성결대 국제개발협력학부)가 발표한 데 따르면 미국 실리콘밸리 벤처기업의 생존율은 5%다. 기업의 경우 3,000개의 초기 아이디어 중에서 성공하는 것은 단 1개라 한다.


임 교수는 “미국에서 실패는 좋은 경력으로 통한다. 새 고용주는 실패해 본 지원자가 실패에서 배운 교훈을 이용할 수 있다고 여긴다”고 말한다. 창업이 활성화된 나라로 유명한 이스라엘 역시 ‘후츠파’ 정신을 바탕으로 실패를 경험한 창업자에게 적극 투자한다(후츠파는 ‘주제넘은, 당돌한, 뻔뻔스러운, 오만한’ 등의 뜻을 가진 히브리어).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실패에 너무 가혹하다. 과학기술 투자부터 교육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패자부활전이 거의 없다. 실패를 경험 아닌 돌이킬 수 없는 좌절로 간주한다. 그러니 청소년부터 대학교수까지 모든 분야에서 실패를 두려워하고, 실패가 두렵다 보니 쉽고 뻔하고 확실한 길만 찾게 된다.


세계로 우주로 온갖 상상을 뻗쳐도 모자랄 수많은 젊은이들이 안정된 공무원·교사 직업에 매달리는 비정상적 현실 뒤에는 실패에 가혹한 풍토가 깔려 있다. 정당한 실패는 우리 사회의 소중한 자산이다. 그만한 대접을 받을 가치가 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지 않는가. 기형 도의 시 제목에 빗대자면 ‘실패는 나의 힘’이라고 외치고 싶다.


벌써 한 해가 저물어간다. 올해 뜻하지 않은 실패를 맛보고 마음 아파하는 분들께 위로와 격려를 드린다. 동시에 지난 2년간 졸필로 지면을 어지럽힌 점,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