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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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35

2018.12
#봄내를 품다
춘천의 기념비 2
효자동 '새마을길비'
작고 초라한 도심의 비석 하나

효자동 92번길 신동아 아파트 건너편에서 동쪽으로 올라가는 길목, 소전길과 새마을길이 분리되는 작은 사거리 비탈진 길모퉁이에 작고 초라한 비석 하나가 세워져 있다. 좁은 길이 넓어지고 포장되면서 주택가로 변신한 마을역사의 한 페이지를 알려주는 비석이다. 까짓 비석 하나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희미해 가는 마을역사를 다시 한번 곱씹어 보게 하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누구 하나 거들떠 보지 않는 외로운 비석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1970~80년대 초록색 바탕의 노란색 동그라미 안에 새싹이 그려져 있는 새마을 깃발(旗)과 함께 전 국민이 애창(?)하던 ‘새마을 노래’ 일부이다. 이제는 사라진 옛 노래지만 농촌에선 아직 새마을 깃발이 펄럭이고 초록색 모자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춘천시내의 주택가에서 이제는 구시대적 산 물이 된 새마을 관련 비석을 만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높이 90cm, 폭 45cm의 작고 초라한 모습이었다. 길모퉁이에 제대로 다듬지도 않은 화강암 비석이 방치된 듯 놓여있어 오히려 눈길을 끌게 한다. 전면 상단에 「새마을길」이라 새기고 밑에는 건립일자(1972년 5월 1일)를 넣었다.


비석은 어떠한 사실을 후세에 오래도록 기억하게 하고 전하기 위하여 글을 새겨 세워 놓은 돌을 말한다. 이 비석은 기념비(記念碑) 성격으로 세워진 듯하나 뒷면에 건립이나 도로에 대한 내용을 넣지 않고 비석 건립에 참여했던 분들의 이름만 새겨져 있다. 결국 이 비석은 길을 넓히고 포장한 사실적 기록보다는 당시 이 사업에 역할을 했던 분들이 자신들의 업적을 남기고자 세워진 듯하다.


온 나라를 들썩이게 했던 새마을운동의 열기가 식어 가면서 비석 또한 관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으리라. 이제는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도 않는 길목에 홀로 서 있는 돌 하나일 뿐이었다. 세월의 부침(浮沈)속에서 금이 간 모습으로 영락(零落)의 길을 가는 비석 모습이 너무 쓸쓸하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마을길이 넓혀지면서 새로운 주택가로 변신한 효자동 골목

새마을운동으로 좁은 길이 새로운 주택가로


이 비석은 효자동 92번길 신동아 아파트 건너편에서 동쪽으로 올라가는 길목, 소전길과 새마을길이 분리되는 작은 사거리 비탈진 길모퉁이에 위치하고 있다. 좁은 길이 넓어지고 포장되면서 주택가로 변신한 마을역사의 한 페이지이기에 비석에 대한 뒷이야기를 들어보려 노인회관을 찾았지만 아시는 분이 없어 아쉽게 발길을 돌렸다.


새마을길은 효자동 천주교 뒤편에서 춘천교대부속초교 뒤편으로 이어진 주택가 골목길로 지금은 공영주차장이 된 예전 우시장 뒤편 불당골이라고 불렸던 둔덕일 대를 지칭한다. 우시장 뒤편 낮은 능선은 대체로 과수원과 앙고라토끼를 많이 기르던 곳이었다. 지금은 옛 모습을 추측하기조차 어렵지만 예전 우시장이 이곳에 있을 때만 해도 장마철에는 장화 없이는 살 수 없는 곳이라고 표현되던 마을이었다.


우시장 이전과 새마을운동으로 이 일대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좁은 마을길을 넓히고 포장하자 문화주택이 들어서면서 새로운 주택가로 변신하였다. 이렇게 새로 만들어진 마을이라 해서 새마을이란 이름으로 불렸고 언덕길은 새마을고개가 되었다.


그까짓 비석 하나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존재감을 드려내지 않으면서도 타인의 눈길을 끌어 희미해가는 마을역사를 다시 한번 곱씹어 보게 하는 지킴이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것이다. 내 고장 한편에 소리 없이 자리하고 있는 작은 것들이 때로는 큰 울림으로, 때로는 소중한 단서로 다가올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 동네에 남아 있는 옛 흔적에 사랑의 눈길을 보내보자. 애향심은 큰 것보다 작은 것으로 시작되는 것이 더 아름답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