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동 92번길 신동아 아파트 건너편에서 동쪽으로 올라가는 길목, 소전길과 새마을길이 분리되는 작은 사거리 비탈진 길모퉁이에 작고 초라한 비석 하나가 세워져 있다. 좁은 길이 넓어지고 포장되면서 주택가로 변신한 마을역사의 한 페이지를 알려주는 비석이다. 까짓 비석 하나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희미해 가는 마을역사를 다시 한번 곱씹어 보게 하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누구 하나 거들떠 보지 않는 외로운 비석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1970~80년대 초록색 바탕의 노란색 동그라미 안에 새싹이 그려져 있는 새마을 깃발(旗)과 함께 전 국민이 애창(?)하던 ‘새마을 노래’ 일부이다. 이제는 사라진 옛 노래지만 농촌에선 아직 새마을 깃발이 펄럭이고 초록색 모자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춘천시내의 주택가에서 이제는 구시대적 산 물이 된 새마을 관련 비석을 만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높이 90cm, 폭 45cm의 작고 초라한 모습이었다. 길모퉁이에 제대로 다듬지도 않은 화강암 비석이 방치된 듯 놓여있어 오히려 눈길을 끌게 한다. 전면 상단에 「새마을길」이라 새기고 밑에는 건립일자(1972년 5월 1일)를 넣었다.
비석은 어떠한 사실을 후세에 오래도록 기억하게 하고 전하기 위하여 글을 새겨 세워 놓은 돌을 말한다. 이 비석은 기념비(記念碑) 성격으로 세워진 듯하나 뒷면에 건립이나 도로에 대한 내용을 넣지 않고 비석 건립에 참여했던 분들의 이름만 새겨져 있다. 결국 이 비석은 길을 넓히고 포장한 사실적 기록보다는 당시 이 사업에 역할을 했던 분들이 자신들의 업적을 남기고자 세워진 듯하다.
온 나라를 들썩이게 했던 새마을운동의 열기가 식어 가면서 비석 또한 관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으리라. 이제는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도 않는 길목에 홀로 서 있는 돌 하나일 뿐이었다. 세월의 부침(浮沈)속에서 금이 간 모습으로 영락(零落)의 길을 가는 비석 모습이 너무 쓸쓸하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마을길이 넓혀지면서 새로운 주택가로 변신한 효자동 골목
새마을운동으로 좁은 길이 새로운 주택가로
이 비석은 효자동 92번길 신동아 아파트 건너편에서 동쪽으로 올라가는 길목, 소전길과 새마을길이 분리되는 작은 사거리 비탈진 길모퉁이에 위치하고 있다. 좁은 길이 넓어지고 포장되면서 주택가로 변신한 마을역사의 한 페이지이기에 비석에 대한 뒷이야기를 들어보려 노인회관을 찾았지만 아시는 분이 없어 아쉽게 발길을 돌렸다.
새마을길은 효자동 천주교 뒤편에서 춘천교대부속초교 뒤편으로 이어진 주택가 골목길로 지금은 공영주차장이 된 예전 우시장 뒤편 불당골이라고 불렸던 둔덕일 대를 지칭한다. 우시장 뒤편 낮은 능선은 대체로 과수원과 앙고라토끼를 많이 기르던 곳이었다. 지금은 옛 모습을 추측하기조차 어렵지만 예전 우시장이 이곳에 있을 때만 해도 장마철에는 장화 없이는 살 수 없는 곳이라고 표현되던 마을이었다.
우시장 이전과 새마을운동으로 이 일대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좁은 마을길을 넓히고 포장하자 문화주택이 들어서면서 새로운 주택가로 변신하였다. 이렇게 새로 만들어진 마을이라 해서 새마을이란 이름으로 불렸고 언덕길은 새마을고개가 되었다.
그까짓 비석 하나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존재감을 드려내지 않으면서도 타인의 눈길을 끌어 희미해가는 마을역사를 다시 한번 곱씹어 보게 하는 지킴이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것이다. 내 고장 한편에 소리 없이 자리하고 있는 작은 것들이 때로는 큰 울림으로, 때로는 소중한 단서로 다가올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 동네에 남아 있는 옛 흔적에 사랑의 눈길을 보내보자. 애향심은 큰 것보다 작은 것으로 시작되는 것이 더 아름답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