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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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65

2021.6
#봄내를 꿈꾸다
2030 춘천일기
프레임 속에 감정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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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이야기할 나의 춘천에서의 삶은 그다지 밝고 유쾌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인고의 시간을 겪고서 마주한 나의 모습은 그만큼 값지다는 것을 나를 비롯한 여러 청춘에게 말해주고 싶다.

나의 유년 시절은 따뜻한 봄 날씨의 춘천만큼 행복하지 않았다.

학창 시절 또래 친구들이 경험하지 못했던 여러 실패를 겪었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의 진학 실패, 고등학교에서 원하던 대학으로의 진학 실패,

그리고 다시 한번 도전한 대입 시험에서의 실패.

실패들이 쌓이면서 좌절에 익숙해졌고 자존감 또한 현저히 낮아졌다.

10대에서 20대 초반 나에게 춘천은 가시방석 그 자체였다.

 

차라리 춘천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가면 이 모든 것이 해결될까 하는 생각에 진지하게 유학을 생각하기도 했다.

결국 국내 대학으로 진학하긴 했지만 원하던 과도 아니었고

관심 분야가 전혀 아니었던 학교 수업은 무의미하게 보내는 시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학교에서의 따분함은 곧 목적 없는 휴학의 반복이 되었고

그렇게 도피하듯 떠난 군대를 전역하고 나와서는 학교에 정착하지 못하고 또다시 장기 휴학으로 이어졌다.

 


광고 촬영의 빼력에 빠지다

휴학 도중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다가 우연찮게 광고 촬영을 제안받았다.

어리고 조급한 마음에 뭐든 해보고 싶었던 나는 그렇게 친구와 함께 팀에 소속되어 광고 촬영에 입문했다.

춘천을 거점 삼아 지방 곳곳을 돌며 촬영하면서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에 매료되었다.

촬영 기획부터 연출 그리고 마무리 편집 작업까지 광고의 시작과 끝을 모두 경험했다.

연예인과 모델을 직접 마주하고 그들을 카메라에 담아 내면서 처음엔 긴장도 됐지만 항상 다음 촬영이 기대될 만큼 재미있었다.

촬영이 지속되면서 우리가 만들어 낸 결과물들이 매스컴과 오프라인 매장에 노출되고

광고주가 마음에 들어 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그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밤낮없이 지내 왔던 탓일까? 몸 상태가 극도로 나빠지기 시작했고

이내 촬영을 할 수 없을 만큼 몸이 상해 결국 건강상의 이유로 팀을 나올 수 밖에 없었다.

팀을 나오고 3개월간 휴식을 취하면서 촬영에 관한 여러 가지 직업을 찾아보았다.

비록 촬영팀을 나왔지만 카메라로 할 수 있는 또 다른 일을 하고 싶었다.

내 가슴을 성취와 열정으로 뛰게 했던 일을 멈추고 싶지 않았다.


(좌) 강원대 어느 골목 테스트 촬영 중 다른 작가님이 찍어주신 사진

(우) 친구를 모델로 찍은 사진이 프랑스 ‘Circle Art Magazine’의 표지로 선정됐다.

표정이나 제스처는 연출이 아닌 무의식중에 보이는 그대로를 찍은 사진이다.



나를 사진작가로 만들어준 가족, 친구 그리고 춘천

팀을 나오고 사진을 찍었다. 처음엔 웨딩숍에서 근무하며 스냅사진 등을 촬영했지만 모두 재미가 없었다.

매일같이 똑같은 포즈, 똑같은 분위기를 찍어야 했고 그런 일들의 반복은 나를 더 무료하게 만들었다.

팀에 있을 때처럼 획기적이고 창의적인 작업을 하고 싶었고

사진 안에 나의 감정 또는 나처럼 힘든 시기를 겪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었다.

그래서 웨딩 사진을 미련 없이 접고 춘천에서 오랫동안 친하게 지낸 나의 친구를 섭외했다.

사진을 찍게 된다면 꼭 이 친구를 찍고 싶었다. 담아낼 것이 많은 친구라 생각해서 그의 감정을 나의 프레임에 담고 싶었다.

친구는 흔쾌히 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부모님께 허락을 받고 돌아가신 조부모님의 생가에서 10일간의 촬영 준비를 했다.

페인트칠을 하고 벽면에 천을 박아 나만의 세트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3일간에 걸친 촬영 끝에 나의 첫 작품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게 됐다.

촬영을 할 때 나는 피사체와의 공감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만 찍어내는 사진보다 온전히 그들의 감정 상태를 담아내는 사진을 찍길 원한다.

그런 마음이 전해졌는지 운이 좋게도 첫 작품이 프랑스 ‘Circle Art Magazine’의 표지에 선정됐다.

가시방석 같았던 춘천에서 이뤄낸 첫 성과였다. 누구나 시작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얼마나 끈기 있게 최선을 다하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올 6월 그리고 7월에 이탈리아 ‘MUSA international art space’와 김포 CICA미술관에서 난생처음 전시를 하게 됐다.

내 인생 처음으로 대외적인 성취의 시작을 내가 나고 자란 곳에서 촬영한 사진으로 알리기에 더욱이 뜻깊은 전시다.


올 7월 김포 CICA미술관에 전시될 For whitecollar 시리즈 사진들



춘천은 내게 내 인생 그 자체인 공간이다.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힘들 때마다 일어날 수 있는 원동력을 준 곳은 언제나 춘천이었다.

힘들 때면 모든 것이 밉고 싫었다. 하지만 춘천은 언제나 그런 나를 반겨주었다.

엊그제 난생처음 봉의산에 올라 춘천 야경을 바라보았다.

화려한 네온사인도 높은 빌딩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 자체로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이제야 나는 깨닫는다. 내가 바뀌면 세상도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이제 다시 나에게 묻는다. 춘천은 내게 어떤 장소가 되었는지를.



2020년 발매한 가수 차우(CHAWOO)의 EP 앨범 커버사진

필름 카메라로 찍어 원하는 느낌을 만들어냈다.

비가 정말 많이 왔던 작년 6월 새벽 4시부터 8시까지 해를 기다리다가

촬영한 사진이다. 운이 좋게 비가 잠깐 그쳤을 때를 이용해 찍었다.


 


김정환은 올해 28살로 강원대학교 불어불문학과 재학 중이다.

춘천에 거주하며 개인 작업을 하고 있다.

https://circle-arts.com/qimjungh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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