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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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45

2019.10
#봄내를 품다
춘천의 향토문화유산 10
봉황대 춘천의 산하에 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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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의 가을이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구나.

산 그림자 담긴 너르고 푸른 의암호로 달려가다 풍광에 취해 발길을 멈추고 선 봉황대鳳凰臺에 올랐다.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진 푸른 하늘에 솜사탕 같은 뭉게구름이 피어오른다. 내 고장 춘천이 정녕 이리도 아름다웠던가.

지금은 배가 운행하지 않는 중도 선착장 뒷산, 생긴 모양이 마치 누에머리 같아 일명 잠두봉蚕頭峰으로도 불린다.



봉황대에서 본 의암호와 춘천



높이라야 겨우 해발 126m의 나지막한 봉우리다. 대臺란 높다란 공간에서 경치 감상과 시상詩想을 떠올리며 풍류를 즐기던 곳이다. 전망대 같은 곳으로 예전 선비들은 이러한 곳을 두루 찾아다니며 글을 짓기도 했다. 시서화로 지식의 척도를 가름하던 때라 유람遊覽이나 시회詩會를 위해 찾던 문학의 산실이기도 하다. 수직의 낭떠러지인 봉황대 끄트머리에 한 그루 소나무가 시선을 조금 가리지만 오히려 정취를 더한다. 탁 트인 서, 북, 동 삼면의 너른 풍광이 시원스럽게 조망된다.


눈을 돌려 서쪽을 바라본다. 레고랜드 공사가 한창인 중도 너머로 삼악산, 계관산, 북배산, 가덕산, 몽덕산, 촉대봉, 응봉, 화악산이 어우러지며 서벽을 이루고 있다. 의암호에 새로 놓은 춘천대교 뒤편으로는 용화산, 오봉산, 마적산, 부용산이 북풍을 가로막고, 봉의산 뒤로는 구봉산, 명봉, 대룡산이 이어지면서 아늑한 분지 속의 풍경을 연출한다. 넋을 놓고 아름다운 경관에 그저 감탄사를 토할 뿐이다.


춘천의 산하山河는 그대로지만 예전의 풍경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1967년 의암댐이 만들어져 유장悠長하게 흐르던 강이 너른 호수로 변했기 때문이다. 중도를 가운데 두고 우측에는 소양강(이 지점에서는 대바지강이라 불림)이, 좌측에는 자양강紫陽江이 있었다. 두 물줄기가 각기 흘러내리다 중도 끝에서 하나의 강을 이루며 다시 신연강이란 이름으로 항진을 계속한다.


두 강이 만나는 지점, 중도 끝에는 너르고 하얀 백사장이 있었다. 곱고 깨끗한 모래톱이 마치 백로 떼가 있는 것과 같아 백로주白鷺州라 불리던 곳이다. 푸른 강과 백사장이 어우러지는 장관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던 곳이 바로 이곳 봉황대였다. 백로주는 춘천고을에 가뭄이 심해지면 춘천 부사가 직접 기우제를 지내던 유서 깊은 곳이기도 했다. 아쉽게도 지금은 모두 호수 속에 잠겨 버렸다. 이제는 볼 수 없는 풍경이지만 지금도 이곳에서 바라보는 춘천의 풍광은 여전히 아름답기만 하다.



봉황대의 자태



호수 너머로 청록색의 높고 낮은 산들이 실루엣으로 떠오르고 그 안쪽에 춘천 시내의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들어온다. 도시 한가운데 봉황 한 마리가 날아오르는 모습으로 봉긋 솟아오른 봉의산鳳儀山의 자태가 더더욱 정겹기만 하다.


봉황대란 이름은 중국 시인 이태백이 난징[南京]의 봉황대에서 쓴 한시에서 연원淵源한다. 그곳 누각樓閣인 봉황대에 오르면 장강長江가에 있는 이수삼산二水三山과 백로주가 보인다고 했다. 그 시의 풍경처럼 두 개의 물줄기와 백로주, 그리고 삼산(삼악산)까지 흡사한 풍광이기에 이곳을 봉황대라 하였다.


춘천부사 송광연은 이태백의 시를 떠올리며 한시를 짓기도 했다. 오성 이항복, 상 촌 신흠, 중암 김평묵 등 많은 문인들도 봉황대의 풍취를 글로 남겼고 청음 김상헌, 다산 정약용 선생 등이 이곳을 지나치며 기록한 문헌도 전해진다.


봉황鳳凰은 상서롭고 고귀한 의미를 가진 상상의 새이다. 태평성대를 상징하는 동물로 기린, 거북, 용과 함께 사령四靈으로 불렸다. 수컷을 봉鳳, 암컷을 황凰이라고 하는데 그 생김새는 문헌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묘사되나 다섯 색깔을 갖춘 상상의 동물이다.

봉황대는 옛 문헌, 지도 등에 춘천을 대표하는 승경 중 하나로 소개되고 있다. 이렇게 유서 깊은 명소임에도 사유지라는 이유로 접근이 불가해 안타깝기만 하다.


이제 국내에서 제일 길다는 3.6km의 삼악산 케이블카가 완성되면 이 주변이 시종착점이 된다. 시민운동으로 봉황대 정상에 정자亭子를 짓는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하루빨리 이곳이 열린 공간이 되어 시민의 휴식처는 물론 춘천의 명소로 거듭나기를 기도해 본다.






글·사진 심창섭(본지 편집위원 · 전 춘천문인협회장)

춘천에서 나고 자랐다. 춘천시청에서 문화재 업무를 전담하다 2006년 정년퇴직 후 수필가 및 사진가로 활동 중이다.

사라져 가는 춘천의 풍경과 민속 문화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기록 중이다. 저서로 포토에세이 <때론 그리움이 그립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