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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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34

2018.11
#봄내를 품다
춘천의 기념비 23
시신기증자 위령탑
세상에! 시신기증자 위령탑이라니요!
죽는 것도 서러운데 자신의 몸을 기증하다니!

강원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의학관 뒤편에 있는 시신기증자 위령탑.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의학 교육과 학술연구 발전을 위해 자신의 신체를 기증했다.


전혀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예상치 못했던 조형물과 마주쳤다. 후미진 모퉁이에 다소곳이 작은 몸짓으로 서 있는 모습에서 특별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호기심에 조용히 다가가 보니 의학 발전을 위해 시신을 기증한 분들의 추모 위령탑이었다. 집과 가까이 있어 저녁 운동을 위해 자주 찾던 곳임에도 이런 조형물이 존재한다는 자체를 몰랐었다. 자괴감(自愧感)이 몰려왔다. 부끄러웠다.


이런 위령탑이 있었다니 가슴이 뛰고 오금이 저렸다. 죽는 것도 서러운데 자신의 몸을 교육용으로 기증하다니, 숨이 탁 막히는 듯했다. 심호흡을 한번 하고 나서야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잠시 묵념을 올렸다. 자식이나 혈연도 아닌 누군지도 모를 남을 위해 아무 조건 없이 자신의 몸을 내어놓을 수 있는 용기와 결단력에 경의를 표했다.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부모에게 받은 것이니 함부로 다루지 말라(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는 옛글이 떠올랐다. 문득 오래전 TV 연속극 ‘허준’에서 본 장면도 떠올랐다. 스승 유의태가 위암에 걸린 자신의 몸을 제자의 의학 공부를 위해 해부하게 하던 장면이 자꾸 반복된다. 감동의 전율을 느끼며 천천히 조형물을 둘러본다. 전면에 새겨 놓은 ‘숭고한 넋을 기리며’라는 제목의 글을 읽는다.


강원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의학관 뒤편에 서 있는 이 탑은 2003년 유월에 세워졌다. 이미 건립된 지 15년이나 지났다. 조형물은 전체적으로 강원대학교 영문 K자를 형상화했고 둥근 원은 고인의 희생정신을 상징하였다. 기증자들을 애도하며 숭고한 희생정신을 떠받아 미래 의학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겠다는 굳은 의지의 표현이다.


기증자의 이름이 연도별로 벽면에 새겨져 있었다. 조형물 건립 이전인 1998년부터 현재까지 20여 년 동안 무려 226분이나 되었다. 생각보다도 많은 분이 의학교육과 학술연구 발전을 위해 자신의 신체를 기증했다. 누구나 자신의 몸을 아끼고 귀하게 여기는 게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죽음 이후라지만 신체를 훼손하도록 허락한다는 것은 특별한 용기와 결단 없이는 절대 불가한 것이다. 숙연함과 경건함 속에 심장 고동 소리만 귓전에서 요동치고 있었다.





시신 기증자들의 숭고한 넋을 기리는 시신기증자 위령탑 비문 내용



생명은 하늘과 땅이 주신 것

때가 되어 하늘과 땅으로 돌아감이 마땅한 바

여기 당신의 생명에서 사라지지 않는 몸으로

희미해져 가는 생명들의 불꽃을 다시 지피니

이 어찌 새로남과 다름이 있으리오


매년 7월, 시신 기증자의 유가족과 의대생들이 함께 합동추모제를 연다.



매년 시신 기증자들 합동추모제 열어


대학원 교내에 320기 규모의 현대식 납골당을 마련하여 시신기증자의 유골을 정중하게 안치하고 있었다. 또 매년 7월에는 감사한 마음과 영령을 위무(慰撫)하고자 기증자의 유가족과 의대생들이 함께하는 합동추모제를 연다. 추모제는 고귀한 주검과의 교감을 통해 실력 있고 참된 의사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음을 고하는 자리이다.






참된 인술 베풀 수 있게 해


우리나라의 시신기증 역사는 일천(日淺)하다. 시작은 1992년경 의과대학 학생교육용 시신이 부족해 의학 연구에 어려움이 많다는 여론이 조성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의사들에 게 가장 기본이 되는 역할은 인류 질병을 진단·치료·예방하는 일이다.


인체의 구조와 기능을 살피고자 보통은 영상이나 모형, 동물을 실험 대상체로 이용하지만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최근 컴퓨터나 가상현실 등을 이용하면 실제 시신해부 시에 느끼는 두려움도 느끼지 않고 손쉽게 공부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인간의 몸을 공부하는 가장 훌륭한 교과서는 인간의 몸 자체라는 것은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학생들의 인체 해부 실습은 의학적 지식만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생각하고 생명의 존귀함을 느끼는 가운데 참된 인술을 베풀 수 있는 정신적 바탕을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경험의학인 해부학 발전으로 인류의 숙원이던 건강 100세 시대의 기틀을 마련해준 이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인지도 모른다. 거룩한 희생에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 참고 : 시신기증이란 본인의 유언이나 유가족의 뜻에 따라 아무런 조건과 보상 없이 해부학 교육과 연구를 위해 죽은 후 몸을 내놓는 것을 말한다.

시신기증은 학문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훌륭한 의사를 길러내는 밑거름이 되어 인류의 건강에 이바지하는 고귀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