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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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34

2018.11
#봄내를 품다
김길소의그때 그 사건 23
배후령(背後嶺) 터널
봄내골 차마고도(茶馬古道)였던 배후령 ‘마(魔)의 고갯길’이란 오명을 벗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많은 사회 변화가 이뤄진 격랑의 시기에 조용한 ‘봄의 고장’ 춘천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김길소의 그때 그 사건>은 1970년부터 40여 년간 토박이 언론인으로 이 고장에서 일어난 사건과 변화를 지켜본 필자가 그 당시의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고 숨은 일화와 뒷이야기들을 전하는 코너입니다. <편집자 주>




2012년 3월 임시 개통된 춘천시 신북읍 발산리와 화천군 간동면 간척리를 잇는 5.1㎞ 길이의 배후령터널로 차량들이 시원하게 달리고 있다.


오음리고개에서 내려다 본 옛 맥국의 도읍터(1987)


배후령(背後嶺)은 오랜 세월 봄내골에서 ‘마(魔)의 고개’로 불렸다. 신북읍 유포리와 화천군 간동면을 잇는 험로(險路)였던 이곳에 지역 주민들이 학수고대해 왔던 일직선으로 연결된 말쑥한 배후령터널이 뻥 뚫린 지도 벌써 6년이 훌쩍 지났다.


그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관통도로나 터널을 뚫어야 한다는 주장이 강조되어 왔던 곳이다. 하지만 뒤늦게 2004년에야 첫 삽을 뜬 후 8년이 흐른 지난 2012년에야 개통됐다. 워낙 난공사인데다 국토개발 우선순위에 밀려 찔끔찔끔 예산이 반영되고 하도급업체까지 부도로 말썽을 부려 당초 예상보다 훨씬 늦춰진 완공이었다. 그래서 공사를 질질 끌어온 탓으로 이 고장에서 전국 최장의 터널(길이 5.1km)이 개통됐다는 기쁨과 감흥도 그만큼 무디어질 수밖에 없었다.



산세가 험해 우마차조차 다닐 수 없었던 오음리고개 (1989.6.)



폭력배 등으로 조직된 국토건설단이 신작로 뚫어


가파른 배후령 고갯길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존재해 왔다. 높고 낮은 산이 둘러싸고 있는 봄내골 특성상 고갯길은 피할 수 없었다. 이 중에 대표적인 것이 한양 쪽의 삼악산 석파령, 원주 쪽의 대룡산 원창고개, 화천과 양구 쪽의 배후령이었다. 전통 사회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가파르고 비좁은 산길을 넓히자는 논의가 자주 검토되었다.


이렇게 주구장창 미뤄온 배후령 고갯길에 최초로 버젓한 신작로가 뚫리게 된 사연도 기구하다. 지난 1962년 4월, 5·16 군사혁명정부가 전국에서 활개치던 폭력배와 병역 기피자, 잡범들을 무더기로 붙잡아 사회기강을 바로잡는다는 명목으로 국토건설단을 조직, 이 고갯길을 닦는 노역에 강제 투입했다.


전국에서 검거된 1,000명가량의 국토건설단원의 건설장비는 100여 대의 리어카와 삽과 곡괭이가 고작이었다. 군대 이상의 엄격한 규율과 통제 속에 강행된 공사여서 시비와 말썽도 끊이지 않았다. 어쨌거나 산세(山勢)가 험해 우마차조차 다닐 수 없었던 산길이 그들의 얼룩진 땀과 눈물의 속죄 덕분에 뚫렸다.


이 고갯길의 역할은 1967년 소양강 다목적댐 공사가 착공되면서 확 바뀌었다. 공사 착공 6년 6개월 만에 거대한 소양강 다목적댐이 담수되면서 춘천시 북산면과 화천군 간동면을 이어 왔던 속칭 배치고갯길이 물에 잠겨 이설도로와 군사 작전도로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양구와 화천(간동면)을 잇는 유일한 통로의 길목인 데도 흙먼지를 뒤집어 써야 하는 비포장도로로 방치되어 왔었다. 굴곡(屈曲)과 구배(句配)가 심한 데다 정상까지 이어지는 급한 커브길은 항상 안전성 문제를 야기시켰다.


그래서 고갯길을 넘는 100여 개의 산굽이마다 ‘과속금지’, ‘급커브길’, ‘브레이크 점점’, ‘천천히’, ‘위험지역’, ‘낙석주의’, ‘차선준수’, ‘낭떠러지’를 알려주는 주의 팻말이 빽빽하게 줄을 이었다. 심지어 섬뜩한 해골을 그려놓은 그림까지 붙어 있었다. 자갈길이 아스팔트길로 바뀐 후에도 눈이 내리는 겨울철에는 제설작업에 일손이 모자라 정기 노선 버스조차 운행이 통제되기 일쑤였다.


해마다 수십 건씩 일어나는 교통사고도 대부분 대형사고여서 운전자들 사이에 ‘마(魔)의 고갯길’로 불렸다. 이처럼 교통사고가 잇따르자 도로의 선형과 경사도를 꾸준히 개선하고 교통사고 다발 특별 관리지역으로 지정해 사고 예방에 나서 악명을 씻어보려고 하였으나 궁여지책에 그쳐 오명을 벗지 못했다.


오음리 고갯길 확장공사가 90년 7월부터 착수됐다 (1990.9.) 


노폭 9m로 확장된 춘천 쪽 오음리고개 (1990.9.)


양구~오음~춘천 간 도로 확장 및 포장 공사 기공식 (1987.10.)



착공 8년 만에 최첨단 모습 드러내


한때는 배후령을 관통하는 도로와 터널 건설이 각종 선거철만 되면 화천과 양구는 물론 춘천지역 국회의원 후보자와 정치인들의 빠트릴 수 없는 선거공약 단골 메뉴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출마자들은 저마다 “4차선 도로를 건설 하겠다” 거나 “장대(長大)한 터널을 관통시키겠다”는 공약을 남발했다. 그러나 언제나 그때뿐이었다. 선거와 임기가 끝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항시 ‘공약( 公約)’이 아닌 ‘공약(空約)’에 그쳤다.


뉴밀레니엄 시대인 2000년대를 앞두고서는 이런 상황이 확 바뀌었다. 엄연히 우리 국토인 남북 접합 지역의 변방을 ‘내륙의 고도(孤都)’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기류가 팽배해졌다. 여기에 군사 전략상의 이점과 당시 국토 해양위 간사를 맡았던 지역 출신 허 천 국회의원의 입김도 한몫 거들었다.


배후령 터널 개통식 (2012.3.30.)

그 결과 드디어 지난 2004년 2월 대망의 배후령터널 공사의 첫 삽을 뜬 후 무려 8년간의 긴 공사기간을 거치면서 2012년 3월 드디어 터널이 뚫렸다. 험준한 산악지형과 강한 암반을 뚫어야 하고 터널 길이가 워낙 길어서 완공 이후에는 고진감래 끝에 여러 가지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우선 국내 최초로 황류식 환기시스템을 갖춰 화재가 발생하면 전 터널의 배기구가 연기를 뽑아내는 최첨단 기술을 갖췄다는 점이다. 또 국내 최초로 본 터널 바로 옆에 긴급상황 시 대피할 수 있는 보조 터널 (5.2㎞)을 설치한 것도 눈길을 끌었다.


왕복 2차로에 폭 11.5m, 높이 10.2m의 안전한 직선 터널의 길이가 무려 5,057m나 되어 죽령터널(4,500m)을 앞질러 당시 국내 최장의 최신 공법과 시설의 도로터널이 이 고장에서 새로 탄생하는 전기를 맞았다. 지금은 서울양양고속도로의 인제양양터널(10.9㎞)과 동해고속도로의 양북1터널(7.5㎞)에 최장(最長)의 자리를 내줘 3위를 기록(세계 최장 도로터널은 2016년 스위스 알프스 기슭에 건설한 57㎞ 터널임)하고 있다.





청평사와 오봉산 코스 전국에 인기


소양댐에서 청평사 및 오봉산을 가기 위해 관광객들이 배를 타려고 선착장으로 내려가고 있다. (1982)


배후령은 원래 봄내골 북쪽인 ‘등 뒤에 있는 뒷산의 고갯길’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진산(鎭山)인 봉의산을 기점으로 근화동(槿花洞)과 소양로(昭陽路)를 ‘앞들’이라 일컬어 전평리(前坪理)라 부른 것과 같은 맥락이다.


오봉산 능선이 용화산 줄기와 맞닿기 전에 낮은 협곡을 이루는 삼한골을 지나는 배후령 고갯길은 일명 ‘오음리 고개’로도 불렸다. 삼지사방을 산이 둘러싸고 있는 산간지역의 분지라는 지형적 특성에 따라 필연적으로 수많은 고갯길이 생겼지만 이 중에서도 원창고개와 함께 대표적인 고개로 꼽혔다.


양구와 화천군 간동면으로 향하는 길목을 가로막고 있는데다 해발 600m밖에 안 되지만 산세가 가파르고 주위 경관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고갯마루 부근에는 남과 북의 분기점임을 알리는 3·8선 표석이 세워져 있다. “이 땅을 밟은 길손과 후세 청년들에게 외세로 인하여 분단된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을 길이 전하고자 이곳에 비를 세우다”라는 전쟁의 상흔이 담긴 비문이 눈길을 끈다.


청평사로 가는 길목에 자연과 벗하며 휴식을 누릴 수 있는 청평사 유원지의 정경 (1974)


삼한골이라 부르는 한곡(韓谷) 골짜기 끄트머리에 있는 배후령 산마루는 전국 등산애호가들이 즐겨 찾 는 오봉산(五峰山) 코스가 맞닿아 있다. 바로 청평사 뒤편에 솟아 있는 문수봉, 비로봉, 보현봉, 관음봉, 나한봉의 다섯 봉우리이다. 옛 이름은 경운산이었다. 경수산, 청평산으로도 불리다 전국 등산객에게 널리 알려지면서 통칭 오봉산이라 일컫게 되었다.


등산객의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아기자기한 등산코스가 널려 있는 곳으로 유명해져 제철이 되면 원색의 등산복 물결이 줄을 이었다. 배후령 정상에서 하산하는 구송폭포 코스(4㎞, 2시간 소요)와 청평사를 거쳐 구송 폭포에 이르는 코스(6㎞, 3시간 소요), 부용계곡 코스 (7㎞, 3시간 30분 소요), 청평사 선착장에서 구송폭포와 청평사를 지나 정상에 오른 뒤 다시 하산하는 청평사 코스(7㎞, 3시간 30분 소요) 등 매우 다양하다.


뿐만 아니라 배후령과 오봉산 산줄기가 품고 있는 천년고찰 청평사(강원기념물 55호) 주변에는 유적과 관광지가 즐비하다. 회전문과 구송폭포, 중국 원(元) 나라 순제의 공주와 얽힌 상삿뱀 전설이 깃든 삼층석탑과 우리나라 연못의 시조인 영지 등이 대표적이다. 어쩌다 안개가 자욱한 날에는 소양호에서 피어오른 운무가 연출한 자연의 신비한 실루엣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배후령과 오봉산 산줄기가 품고 있는 천년고찰 청평사 (강원기념물 55호) 배후령터널이 생기면서 청평사로 가는 시간이 단축되었다.



개통 이후 교류와 소통 더욱 활발


배후령은 이제 봄내골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험준한 교역로인 차마고도(茶馬古都)와 비견(比 肩)되던 신세를 면하게 되었다. 길이 울툴불퉁하고 꼬불꼬불해 멀미를 일으키던 일도 없어지고 20여 분 이상 걸렸던 주행시간도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봄내골과 밀접한 양구와 화천도 그만큼 가까워졌다. 그러나 편리에 따르는 우려도 적지 않다. 터널 개통에 이어 봄내골에서 끊긴 철도의 영북지역 연결이 추진되자 부동산 거래가 꿈틀거리고 있다. 이미 여기저기에서 부동산 값이 몇 배가 올랐다는 얘기가 나돌기 시작한 지 오래되었다.


하루 8,292대를 예상했던 교통량이 늘어나 소통과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다. 토지의 효율성이 높아져 투자 의욕의 불씨가 살아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여러 가지 처방을 강구하며 간신히 버텨온 양구 화천 지역의 상권이 봄내골로 흡수되고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또 문물(文物)이 넘나드는 길이 깊은 산의 땅 속으로 묻혀 옛길에 발길이 뚝 끊겼듯이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배후령과 고갯길의 가치를 깡그리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옛말과 같이 배후령터널을 로마에 의해 창조된 ‘팍스 로마나(Pax Romana)’ 의 상징적 영조물로 만드는 것은 오롯이 봄내골 주민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