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로리 천자 전설 묘
집터나 묘터에 따라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이 달라진다는 풍수지리설. 북산면 물로리에 풍수지리와 관련한 전설이 있다고 해서 근원지를 찾아 나섰다. 묘 하나 잘 써 중국(한나라)의 천자(임금)가 된 곳이라고 해서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것 같았다.
물로리 천자 전설 묘 오른는 곳에 있는 산신각
북산면 물로리는 소양댐에서 배를 타거나 육로로 홍천군 원동에서 북산면 조교리를 거쳐 가야 한다. 중국의 천자를 만들었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는 가리산 자락의 명당 묘를 찾아 구불구불 가파른 고갯길을 넘고 또 넘었다.
보물 찾기를 하듯 어렵사리 마주친 명당은 생각보다 너무 초라했다. 발길마저 뜸한 깊은 산속의 이 묘소가 명당지라니? 외형적으로 초라하고 보잘것없었지만 묘소는 깔끔했다.
묘소 앞에 누군가 갖다 놓은 빈 술잔과 향로가 말없이 길손을 반긴다. 후손이 없음에도 입신양명立身揚名의 소원 성취를 비는 이들과 심마니들이 남 모르게 성묘를 하는 곳이다. 묘소 전면의 안내판이 을씨년스럽지만 이곳이 천자 묘라 불리는 곳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옛날 춘천시 북산면 내평리에 한 머슴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이 집에 두 분의 스님이 찾아와 하룻밤 쉬어 가게 해달라고 했다. 주인은 별도의 방이 없으니 머슴방이라도 좋다면 거기서 묵어 가라고 했다. 봇짐을 푼 스님이 달걀 세 알만 달라고 했다. 머슴은 스님들이 배가 고파 달걀이라도 먹으려나 보다 싶어 부리나케 쇠죽 끓이는 데다 삶아서 갖다 드렸다. 잠자리에 든 머슴은 스님들이 나누는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달걀을 묻어 닭이 부화하는 곳이 바로 명당이라는 이야기였다.
한밤중이 되자 스님들이 일어나 집을 나섰다. 자는 척하던 머슴도 슬그머니 뒤를 따랐다. 스님은 강을 건너 물로리의 가리산 자락에 이르더니 “맨 윗자리는 천자天子의 자리이고 그 다음은 왕王의 자리야, 또 세 번째 자리는 정승판서政丞判書가 날 자리이지”라며 달걀을 하나씩 파묻었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무소식이었다.
머슴은 자신이 달걀을 삶아서 드린 것이 떠올랐다. 어둠 속에서 한동안 침묵이 흐른다 싶더니 첫 번째 달걀을 묻은 자리에서 닭이 날갯짓을 하면서 우는소리가 들려왔다. 스님이 격앙된 어조로 “그렇지, 틀림없어! 이곳이 바로 천자가 날 자리야! 하지만 이 자리는 금으로 만든 관金棺을 써야 하고 투구를 쓴 사람이 곡哭을 해야 해, 게다가 황소 백 마리를 잡아 제사를 지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사람이 쉽지 않겠지”라며 산을 내려가 버렸다.
소양강댐에서 본 가리산
머슴은 스님들의 이야기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 얼마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시신屍身을 그곳에 옮겨 묻기로 했다. 스님이 하라는 대로 장례를 치를 수는 없지만 머슴 신세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온갖 궁리 끝에 노란 귀리 짚으로 금관金棺처럼 만들어 시신을 싸고 투구 대신 솥뚜껑을 쓴 채 곡을 하며 장례를 치렀다. 하지만 소를 잡아 제사를 지낼 수 있는 형편은 아니었다.
신세 한탄을 하며 주저앉자 담배를 피우던 중 몸이 근질근질해 옷을 벗고 이를 잡기 시작했다. 이가 어찌나 크고 많은지 이를 잡으며 무심코 ‘어따 이놈의 이, 꼭 황소 만하네’라며 백여 마리를 잡아 무덤 앞에 떨어뜨렸다. 엉겁결에 황소 만한 이를 제물로 올린 셈이 되었다.
머슴은 그렇게 아버지의 유택幽宅을 마련하고 산에서 내려왔다. 그 후 오랜 세월이 흘러도 아무런 이변도 일어나지 않자 머슴은 길을 떠났다. 길을 가다 중국 어느 도시에 이르자 많은 사람들이 짚으로 싼 북 앞에 모여 있었다. 중국의 천자(임금)가 후계자 없이 죽어 새 왕을 뽑아야 하는데 이 짚 북을 쳐서 소리가 나는 사람만이 천자의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너도나도 짚 북을 쳤지만 소리가 전혀 나지 않았다.
불현듯 스님의 말씀이 떠오른 머슴이 용기를 내어 짚 북을 치자 우렁차게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갑자기 천지가 컴컴해지면서 뇌성벽력이 치며 하늘과 땅이 흔들렸다. 모두 깜짝 놀라 머슴 앞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머슴은 중국의 천자에 등극하였다.
이후 머슴 아버지의 묘소는 중국 천자 전설 묘로 불리게 되어 오늘날까지 전해 오고 있다. 그 영험靈驗을 얻고자 지금도 많은 사람이 비밀스럽게 찾아와 소원을 비는 곳이라 한다.
머슴이 천자가 된 이야기는 그저 전설일 뿐이다. 묘 하나 잘 쓴다고 어찌 후손들이 복을 받을 수 있을까? 정 붙이고 마음의 평온을 얻으며 살 수 있는 곳이 곧 명당이라 했다. 남다른 노력과 실천이 있다면 굳이 명당 운운할 이유가 없는 시대이다.
글·사진 심창섭(본지 편집위원 · 전 춘천문인협회장)
춘천에서 나고 자랐다. 춘천시청에서 문화재 업무를 전담하다 2006년 정년퇴직 후 수필가 및 사진가로 활동 중이다.
사라져 가는 춘천의 풍경과 민속 문화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기록 중이다. 저서로 포토에세이 <때론 그리움이 그립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