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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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33

2018.10
#봄내를 품다
노재현의 한소끔
아는 것, 좋아하는 것, 즐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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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누구나 1만 시간 이상 꾸준히 노력하면 한 분야의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법칙이다. 하루 3시간씩 투입해 10년 정도 지나면 1만 시간이 된다.


몇 년 전 강원도(원주) 출신의 정 상급 피아니스트 손열음 씨와 대화 하다 1만 시간의 법칙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의외로 손 씨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동료 음악인들과 그 법칙을 화제에 올린 적이 있어요. 다들 ‘그 정도로는 너무 약해’ 라며 웃더군요. 1만 시간으로는 어림도 없다고요.”


어린 시절 손 씨는 매일 10시간가량 연습했다고 한다. 무척 지겨웠지만 “이 몸은 내 몸이 아니다”라고 자기 최면까지 걸어가며 피아노 앞을 떠나지 않을 정도로 몰두했다. 청소년기에 이미 수만 시간을 투입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냥 단순하게 생각해야겠다. 1만 시간이든 100시간이든 노력한 만큼 거둔다고 말이다. 쏟아부은 노력에 타고난 재능이 버무려져 결과가 나온다고 말이다.

한 분야를 오래 파고든 학자·예술가·체육인이라면 성과를 내는 게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아마추어인데도 프로 못지않게 빛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섬유업체 회계담당으로 일하는 정광수 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잠자리 전문가.


5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조사해 책으로 엮은 ‘한국의 잠자리 생태 도감’, 꼬박 4년을 바쳐 지은 한국 최초의 잠자리 유충 도감 ‘한국 잠자리 유충’은 학계를 놀래고 긴장시킨 역 저다. 그는 나이 마흔에 뒤늦게 잠자리에 반해 여가시간을 연구와 현장 조사에 바치기 시작했다. 정약전의 ‘현산어보(자산어보)’를 추적한 ‘현산어보를 찾아서’라는 저서(전 5권)를 2002년 펴내 화제에 오른 이태원 씨는 고교 생물교사였다.


혜성을 발견한 아마추어 천문가가 일본엔 흔하지만(‘세종’이라는 혜성도 세종대왕을 존경하는 일본인 관측가가 발견해 붙인 이름이다), 한국인으로는 2009년 ‘이 스완(Yi-SWAN)’ 혜성을 관측한 이대암 씨가 처음이다. 그는 2010년엔 역시 한국인 최초로 신성(新星)을 발견했다. 영월곤충박물관장인 이 씨는 원래 건축학자였다.


춘천 출신인 양경모 씨는 한때 잘나가던 종합금융사 간부였으나 1997년 외환위기로 직격탄을 맞았다. 직장을 잃고 숲 해설사로 변신, 지금은 생태환경 교구업체(홀씨) 경영인이자 ‘자연의 소리 전도사’로 활약하고 있다. 10년째 새(봄), 매미· 개구리(여름), 귀뚜라미·여치(가을)의 소리를 녹음하고 분류해 일반인에게 알기 쉽게 전달하는 일에 미쳐 있다. 나는 양 씨 덕분에 영어에 ‘land-scape(풍경)’ 말고 ‘soundscape(소리 풍경, 音景)’이라는 단어가 별도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 하다’는 공자의 말을 새삼 떠올려 본다. 아마추어면 어떤가. 1만 시간이든 100시간이든 좋아하고 즐긴다면 충분히 가치가 있다. 성과까지 난다면 그야말로 망외(望外)의 기쁨이다. 본업만으로는 뭔가 미진하거나 은퇴를 앞둔 분들이 특히 염두에 두 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