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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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65

2021.6
#봄내를 품다
최돈선의 골목이야기⑱
석사동, 국립춘천박물관은 천년의 골목길로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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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으로 가는 길


박물관 골목은 수천 년의 신비를 간직한 곳이다.

선사시대에서 중세로 가려면 수천 가닥의 골목길과 수 세기의 시간을 품은 골목길을 지나야 닿을 수 있다.

그러면 그때의 사람들이 남긴 유물들이 우리 앞에 조용히 다가온다.

우리는 그 유물들을 통해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했는지, 그 시대는 어떤 신앙과 철학을 가졌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건 무척이나 설레는 일이고, 우리의 내면을 아주 깊이 들여다보는 일이다.

우리가 걷는 한 걸음은 수천 년의 걸음이다. 우리가 걷는 일분일초는 아름다운 상상의 길이다.

우리는 그 흐름을 송어 떼처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국립춘천박물관으로 가는 길은 두 개의 길이 있다.

자동차로 오려면 신축한 신관 앞 주차장에서 내려, 긴 계단을 이용하거나 아니면 신관 내부 승강기를 타고 본관 언덕으로 오르면 된다.

하지만 걸어서 박물관에 오는 사람이라면 옛길을 통해 완만한 오름길을 걷는 것이 좋다.

그렇게 천천히 오르노라면 오른쪽 숲에서 솔바람 소리가 오래 묵은 천년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렇게 바람 이야기를 들으며 야외공연장을 지나면 문득 장엄히 솟은 박물관이 눈앞에 불쑥 나타난다.

그 초입 왼쪽에 청동기시대 고인돌 하나가 낮게 엎드려 방문객을 맞이한다. 

사동 중앙고속도로 나들목 주변에서 발견된 고인돌이다. 그런데 가운데가 깨져 있다.

어떤 이는 이런 기발한 상상을 할 수도 있다.

 

어쩌면, 수만 년 전의 고인돌 사람이 돌을 가르고 튀어나온 게 아닐까.

그 고인돌 사람은 박물관 그 어디든 나타나 그 시대의 상황을 재현하고 있는지도 몰라.

영화 ‘박물관이 살아 있다’를 본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여기 국립춘천박물관도 고대의 사람들이 방문객의 상상 속으로 스며들어와, 그 시대의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줄지도 모를 일이다.

상상은 확장되기 마련이어서 어느 순간 방문객은 돌도끼를 든 선사시대 사람이 되거나,

오랜 기억의 나한羅漢이 되어 선정禪定에 깊이 든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 어찌 알겠는가.

그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상상이고 꿈이다. 사실 이 춘천박물관은 그 어떤 지역 박물관보다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을 간직하고 있다.

 


현묘의 정원은 모란이 붉게 시들고


긴 장방형의 본관 건물은 단순하고 간결한 모습이다. 그 건물에 다가가려면 길고 넓은 다리를 건너야 한다.

마치 성을 에워싼 해자垓子를 건너는 느낌이다.

연한 황갈색 사암으로 촘촘하게 감싸인 건물은, 정중앙 검은 유리판과 현격히 대비되어 현대적이면서도 깊은 신비감을 자아낸다.

출입문 위 건물 가운데로 둥근 원형이 보이는데 그것이 천창天窓이라 했다.

이 건축물이 2003년 한국건축가협회상 본상을 수상한 건물이다. 나는 출입문에서 잠시 망설였다.

이대로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왼쪽 ‘현묘의 정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자연석의 질감이 그대로 드러난 건물 옆에 비밀스레 현묘의 정원은 감춰져 있었다.

모란이 시들고 있었다. 햇빛은 투명하게 모란 꽃잎 하나하나를 비춰 주었다. 마치 현미경을 들여다보듯.

그리 크지 않은 정원은 적요했다. 두 손을 둥글게 모으고 앉은 아미타 부처를 중심으로 소도구 같은 느낌의 석물들이 한가롭게 놓여 있었다.

삼층석탑과 석탑 지붕, 연꽃 대좌와 빗물이 고인 약 절구, 은은한 광배, 받침돌과 맷돌, 향로석이 제가끔 간격을 유지하며 놓여 있었다.

아미타 부치만이 온전할 뿐 나머지는 모두 분리된 석물이었다.

그중 흥미를 끄는 것은 태실의 석함인데, 왕세자나 왕세손의 태는 석실을 만들어 석함에 보관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태아를 출산한 뒤에도 태를 소중히 보관하는 풍습이 있었다.

보관하는 방법이 신분의 차이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태아의 태는 그 아이의 생명이나 다름없이 귀히 여겼다.

석함 웅덩이엔 태가 아닌 빗물이 고여 있었다. 구름 한점, 고인 물속에 외로이 떠서 어디론가 흘러갔다.

주위를 둘러보니 정원에 맞닿은 벽이 트여 있었다. 긴 장방형의 유리로 가로막힌 저쪽은 건물의 내부였다.

건물안에서 바깥 정원을 내다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있다는 것을 이내 알 수 있었다.

건물 안에서 고요하고 비밀스러운 정원을 바라보는 일은 경이로움과 신비로움, 시간도 잊은 무아의 경지, 바로 그것이 아닐까.


 

뒤안길에서 만난 참새들


박물관에 왔으면 박물관 내부로 들어가 유물을 볼 일이다.

그럼에도 건물 외곽을 한 바퀴 비잉 돌기로 한 것은 뒤란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다.

옛날 우리네 집 뒤란은 은밀한 세계로 여겨져 왔다. 그렇다면 박물관 뒤란은 어떤 모습일까.

박물관 뒤란은 울창한 소나무 숲이었다. 오솔길 옆 단풍나무 초록 이파리가 아이의 볼처럼 싱그러웠다.

노란 송홧가루가 작은 웅덩이 가장자리로 둥글게 모여 있다. 나무숲으로 에워싸인 울창한 골목길.

참새 네 마리가 길바닥에 앉아 무언가를 쪼고 있다. 내가 그들 가까이 다가가자 참새들은 포롱포롱 몇 발짝씩 앞장선다.

참새를 따라 나는 오래 걸었다. 그다지 먼 길은 아니건만, 그렇게 기억되었다.

마침내 나는 ‘현묘의 정원’ 반대편이 있는 ‘기억의 정원’에 닿았다.

 


장명등은 언제 켜질 것인가


숲속에 서 있는 문인석들은 저마다 홀을 양손에 들고 있다.

기억의 정원은 현묘의 정원처럼 적요하다. 현묘의 정원이 햇빛 밝은 고요의 정원이라면, 기억의 정원은 숲 그늘에 덮인 망자의 정원이다.

현묘의 정원에 정좌한 아미타 부처는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법을 설하고 있지만,

무덤 없는 기억의 정원은 불 꺼진 장명등 하나와 문인석만 눈에 띈다.

장명등은 망주석 한 단 아래 세워져 묘역의 불을 밝히는 역할을 하는데 사악한 기운을 쫓는다는 벽시辭邪의 의미가 있다.

현묘의 정원은 불교의 세계로서 내세적이요, 기억의 정원은 유교의 세계로서 현실적이다.

불교가 피안을 꿈꾸는 세계 라면, 유교는 과거와 현재가 함께 공존하는 세계이다.

이 두 세계를 곁에 둔 박물관은 과연 어떤 세계일까.

나는 본관 출입문을 열고 박물관 안으로 들어섰다.


(좌)뒤란 단풍나무 사이로 (중)현묘의 정원 아미타불 (우)기억의 정원 장명등



햇빛이 모이는 천창의 신비


저것을 홍예라 해야 하나. 아니면 탁 트인 궁륭이라 해야 하나. 정문을 들어서니 둥글게 하늘이 보였다.

3층 높이의 천창으로 햇빛이 쏴아아 쏟아져 들어왔다. 햇빛의 무늬가 주황색 벽면에 아롱아롱 새겨졌다.

마치 네모지거나 세모난 창窓이 군데군데 모여, 주황색 벽돌을 하얗게 지우고 있는 듯싶었다.

이 둥근 공간은 넓은 지름을 가진 원형극장 같았다. 2층 카페 옆은 임근우 화가의 고고학적 기상도가 그려진 공간이다.

아래층에선 음악회가 자주 열린다는데, 방문객들은 2층이나 3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음악회를 관람한다.

놀라운 것은, 3층 높이의 둥그런 벽면 거의 절반이 거대한 스크린으로 채워졌다는 사실이다.

그 화면엔 동해의 절경이 자욱이 펼쳐지고, 금강산과 총석정이 장관을 이루며, 오백 나한이 깊은 숲속에 앉아 선정에 들어 있다.

그러므로 이 공간은 강원도와 춘천의 깊디깊은 내면이라 할 수 있다.

이제 나는 선사시대의 주먹도끼 이야기와 국보 문수보살의 수난사에 얽힌 기막한 사연,

그리고 창령사 오백나한의 미소를 찾아 천년의 골목길을 떠나려 한다.

 

 

(이 이야기는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