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남매는 최우수 모범생이었다. 그런데 전교 1, 2 등을 다투던 아들이 고3 때 갑자기 자퇴를 선언했다. 곧바로 고2 딸까지 자퇴했다. 남매는 집에 틀어박혀 게임만 했다. 딸은 폭식 습관이 생겨 체중이 80kg까지 불었다. 저자는 하 이 꺼지는 충격을 받았고,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는지 처음부터 반성하기 시작했다. 아들이 공황장애를 앓았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았다. 그동안 저자가 강조한 가훈은 ‘SKSK(시키면 시키는 대로)’였다. 잘하라고 닦달만 했지 인정·존중·칭찬이나 자존감 고양과는 거리가 먼 교육을 해 왔던 것이다.
얼마 전 춘천 출신 후배 최준영 씨로부터 저서 한 권을 받았다. <백점 아들 육식동물 아빠>라는 책이었다. 영재 아들을 키우는 데 온갖 정성을 쏟았으나 결과적으로 잘못이었다는 반성으로 가득 찬 내용이었다. 최 씨의 아들은 생후 21개월에 글을 읽을 정도로 천재였다. 특히 수학·음악에 뛰어났다. 해외지사에 발령 난 아버지를 따라 간 영국·미국 학교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수능시험격인 미국 ACT에서 한국인 최초로 만점을 받았고, 토플 성적은 국내 최연소(중 2) 만점이었다. 특목고에 수석 입학해 학부모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그리고 미국 명문대로 유학 가 수학을 전공했다.
그런 아들이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맥없이 귀국했다. 틱 장애를 앓고 있었고 대인기피증도 있었다. 병원에서 상담한 결과는 더 충격적이었다. 천재아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바로 ‘육식동물’ 아버지라는 진단이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아들의 일과를 지시하고 일거수일투족을 체크한 것은 물론, 해외에서도 이메일로 아들 생활을 꼼꼼히 챙긴 것이 오히려 독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근본적인 반성과 사고 전환을 해야 했다. 새 삶을 찾아 나선 아들은 좋아하는 음악을 하고 싶다며 인디밴드를 꾸려 서울 홍대 앞에서 연주하기 시작했다. 집안에 다시 웃음이 찾아왔다.
한국전쟁 전후에 태어난 기성세대는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정글 논리를 당연시하며 살아왔다. 치열한 생존경쟁을 치열한 노력으로 감당해왔다. 왜 사는지, 나는 무엇을 진정으로 좋아하는지 등은 뒷전이었다. 그런 사고방식을 자식 교육에도 투사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교육 아닌 ‘사육’의 길로 빠져드는 것은 아닐까. 20세기 방식으로 21세기 아이를 키우는 것은 아닐까. 좋은 의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자식교육. 예나 지금이나 참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