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국왕의 글씨에 이어 이번 호에는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들의 휘호를 찾아본다.
1948년 대통령제가 실시된 이후 현재 제19대 대통령을 포함해 열두 명의 대통령 중 춘천 곳곳에 휘호를 남긴 대통령은 현재까지 네 명이다. 지금은 대통령의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생각을 국민과 공유할 수 있는 시대이다. 그러나 인터넷, SNS(온라인 인맥 구축 서비스) 등이 발달하기 이전에 통치철학을 국민에게 전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휘호’는 국정 의지나 개인적 사고를 직접적이고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었고 치적과 이름을 동시에 남길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그 시절엔 신년 휘호를 통해 국정의 방향을 엿볼 수 있었고 산업 현장을 방문할 때 휘호로 의지를 드려내기도 했다. 지자체에서는 대규모 사업 준공에 맞추어 대통령이 각별한 관심을 가진 곳이라는 증거로 휘호를 받기 위해 다각적으로 접근하기도 했었다. 그러던 것이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방송 통신기술의 발달로 인해 대통령의 휘호는 점차 줄어들었다.
대통령 휘호는 예술성에 앞서 정치성과 역사성 그리고 통치철학과 성품이 잘 반영된 문구이다. 업적에 관계없이 후일 한 시대의 흐름을 대변하는 문화자원이기도 하다.
네 명의 대통령이 남긴 14점의 글씨
우리 고장에서 확인된 대통령의 휘호는 네 명의 대통령이 쓴 14점이다. 이승만(재임기간 1948~1960) 전 대통령 재임기간은 붓글씨에서 신문물로 넘어가는 시대였다. 서예에 대한 그의 애정도 남달랐지만 그때만 해도 시·서·화가 인격과 교양을 가늠하는 척도 이기도 했다. 한학을 배우고 평생 서예와 함께한 이 전 대통령의 필체글씨는 굳세면서도 부드럽고 강한 의지 와 완숙함을 엿볼 수 있어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뛰어난 글씨라고 평가되고 있다.
박정희(재임기간 1963~1979) 전 대통령은 재임 중 무려 1,200점이라는 엄청난 수의 휘호를 남겼고 춘천에도 9점이 남아있다. 군 출신답게 군더더기 없이 흐트러짐 없는 부드러움과 굳센 느낌을 주는 필체라 평한다. 그의 휘호가 유독 많은 이유는 필체가 좋기도 했지만 18년이라는 물리적인 재임기간에서 연유된다고 볼 수 있다.
강원도 출신인 최규하(재임기간 1979~1980)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이 짧아 휘호는 많지 않으나 한학자였던 조부에게 한학과 예절을 익힌 분으로 한자뿐만 아니라 고문학 실력이 뛰어난 전통적인 필체로 평가받는다.
전통적 서법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독창적인 필체를 구사한 이는 김영삼(재임기간 1993~1998) 전 대통령이다. 여백을 거의 두지 않는 굵은 체로 기교가 거의 없고 정확한 정사각 형태로 쓰는 올곧은 성격이 배어 있다고 한다.
이렇게 네 명의 역대 대통령이 춘천에 남긴 글씨 중 요선터널 휘호는 관심 부족으로 이미 망실되어 아쉬움이 크기만 하다.
대통령의 휘호가 꼭 필요하거나 가치를 계량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나라의 최고위 선출직 공무원으로 통치권자의 흔적이기에 후세에는 무시할 수 없는 자원이 되기도 한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
5~9대 박정희 전 대통령
10대 최규하 전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