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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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32

2018.9
#봄내를 품다
김길소의 그때 그사건 21
중앙고속도로 개통
태백준령에 뚫린 대동맥

한반도 등줄기인 태백준령을 질주할 수 있는 춘천~대구 간 중앙고속도로가 1989년 11월 착공해 2001년 12월 완전 개통됐다. 워낙 공사 규모가 방대한데다 예산마저 찔끔찔끔 투입돼 진척이 더뎌져 착공 12년 만에 느끼는 기쁨이었다. 이로써 봄내골 주민들은 전국 도청 소재지 가운데 유일하게 고속도로가 닿지 않는 아웃사이더라는 갈증을 씻을 수 있었다. 강원도와 충청 경상도는 물론 전라도까지 ‘반나절 생활권’으로 끌어들이는 효과를 가져왔다. 개통 초기부터 수천억 원에 이르는 물류비용 절약과 강원도의 산업과 생활에 엄청난 변화를 초래하는 계기가 되었다.



1989년 11월 6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 충북 제천 봉양면에서 중앙고속도로(대구~제천~춘천) 건설 기공식이 열렸다.

1983년 12월 건설 계획 발표 후 실제 6년 만의 착공이었다.



춘천~대구 280㎞ 구간의 장리(長里)


중앙고속도로는 춘천시 동내면 학곡리 춘천IC에서 대구 칠곡에 이르는 280㎞ 구간에 뚫린 민족의 대동맥이다. 정부 차원에서 최초로 건설계획을 발표한 것은 최초 착공 시기보다 4년 이 앞선 1983년 12월이었다. 제5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을 수정, 발표하면서 이 계획을 포함시켰다. 춘천~홍천~원주~단양~제천~영주~안동~대구로 가는 장리(長里)를 ‘1987년에 착공, 1991년에 완공하겠다’는 당차고 다부진 계획이었다.


낙후한 동부내륙산간지역에 고속도로를 뚫어 전국을 1일 생활권으로 묶어 국토의 효율적인 개발을 유도하고 촉진시키겠다는 원대한 꿈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계획 추진은 그렇게 순탄치 못했다. 당초 4,000억 원을 계상했던 공사비가 착공과 공사기간이 늦춰지면서 계속 불어났다. 투자 우선순위에 밀려나면서 덩달아 개통 시기까지 늦춰졌다. 우선 당초 2차선에 콘크리트 포장을 하려던 노선과 설계 변경을 비롯, 보상 문제를 야기 시킨 일부 편입용지 지주들의 반발이 발목을 잡았다. 노선마다 험준한 산맥이 가로놓여 있어 평지나 구릉지보다 예산이 많이 드는 난공사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자연보호와 안전보장이 필수적으로 뒤따랐다.


장기 공사로 시대적 상황이 바뀌면서 기본계획까지 흔들렸다. 교통량 폭증이 불을 보듯 뻔해 일부 구간의 콘크리트 포장 2차선을 4차선으로 넓히고 높이 61.5m에 이르는 치악교를 세우는 설계와 공사 시행 과정에서 공사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춘천을 포함한 중앙고속도로 4구간 개통식이 2000년 6월 1일 춘천시 동산면 만남의 광장에서 열렸다. 구간 전체 완공은 다음해 12월이었다. 착공 후 무려 12년 만의 결실이었다.



험준한 내륙산악지대를 관통하다


춘천IC부터 대구 칠곡까지 280㎞의 중앙고속도로가 무려 총 공사비 3조 6,659억 원을 들여 완공되자 시속 100㎞로 달려 2시간 50분 만에 주파할 수 있도록 가까워졌다.


지난 1989년 3개 공구로 나눠 본격적인 착공이 이뤄진 후 대구~영주 구간과 제천~춘천 구간, 제천~풍기 구간의 대역사(大役事)가 순차적으로 마무리됐다. 국내 최초로 연속압출 공법의 밀어내기 식으로 가설된 치악7교는 높이만 61.5m에 이르는 난공사였다.


험준한 내륙산악지대를 관통하는 만큼 다른 고속도로에 비해 유난히 산과 산을 잇고, 넓은 강을 뛰어넘어야 하는 공사구간이 많아 시공사들이 숱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영동고속도로와 교차하는 원주시 호저면 만종IC는 국내 최대 규모(13만평)로 가장 넓은 녹지공간을 확보, 새로운 명소로 가꿔졌다.


공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이후에는 우리나라 토목공사와 고속도로공사 기술력이 크게 향상돼 해외로 진출하는 길이 활짝 열렸다. 그러나 공사 기간 내내 봄내골 주민들 사이에서는 고속도로가 윤곽을 드러내고 있음에도 떨떠름한 반응이 내재돼 있었다. 최우선 숙원사업으로 30여 년을 끌어온 서울춘천 고속도로(2009년 7월 완공)가 더욱 긴요한 사업으로 여겨져 소외의식을 느껴 왔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경부와 호남고속 도로에 이어 국토의 등뼈인 중앙고속도로 개통 이후에는 엄청 난 생활풍속도의 변화를 직접 체험하면서 이러한 인식을 불식시킬 수 있었다.



1995년 치악산을 통과하는 중앙고속도로 7공구 구간의 원주대교 상판이 완전히 연결된 모습이다. 중앙고속도로 공사 중 가장 난공사로 꼽혔던 구간이다.

국내 최초로 밀어내기 식의 연속압출공법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1992년 당시 원주군 판부면 금대리 치악3교 교각의 모습이다. 깊은 협곡을 메우기 위해 다리가 높게 설치됐다.




당시 7공구 치악7교 건설을 담당했던 건설회사 직원 김종환 씨가 힘든 공사를 기념하며 1993년 10월, 이 곳에서 결혼식을 올려 화제가 되었었다.



강원 등 4개 시·도 이웃으로 친숙해져


강원도는 주력산업인 농수산과 관광산업에 충청은 물론 영·호남 주민들을 끌어들이는 획기적인 전기를 가져왔다. 동해안 해수욕장과 스키장, 설악산, 오대산 등이 주5일 근무제 시행과 함께 4계절 관광지로 확고한 위치를 굳혔다.


2018평창 동계올림픽 개최로 숙박시설과 관광시설이 크게 확충되고 주변 인프라가 개선돼 지금은 개통 20년을 앞두고 제2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이 중 영동고속도로가 교차하는 원주시를 물류 유통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는데 큰 몫을 해냈다.


충청북도도 마찬가지다. 강원도와 함께 교통의 사각지대에 놓여 개발이 뒤쳐져 있다가 제천과 단양 지역의 충주호 주변과 북부권 내륙관광지 개발이 활기를 맞았다. 단양팔경과 충주호 산악지역 유원지를 찾는 관광객이 해마다 늘어나고 개통 이후 설치한 농산물 직판장의 판매량 증가도 침체된 지역경기를 활성화시키고 있다.


대구를 중심으로 한 경북지역은 중부권과 영남권을 잇는 물류와 관광의 중심지로 다시 부활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경주의 신라문화권, 안동과 영주의 유교문화유적지, 고령의 가야유적지를 비롯한 문화관광지 투자가 꾸준히 이뤄졌다. 대구는 서울~부산 간 경부고속도로에 다소 소외되고 섬유산업 침체에 허덕이다 개통과 함께 물류산업 기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4개 시·도는 고속도로 개통으로 단축된 주행 시간만큼 교류도 활성화되고 지역 간 친숙감도 더 깊어졌다. 춘천에서 대구와 부산으로 떠나는 직행 우등과 일반버스가 1일 20여 회 운행되고 있어 한층 가까워졌다. 개통 이전에는 영남권 주민들이 엄두도 내지 못했던 봄내골 향토음식(닭갈비 막국수) 즐기기 여행객 모습을 이제는 자주 볼 수 있게 되었다.




하늘에서 바라본 중앙고속도로 7공구 구간 건설현장.

경향신문 1995.2.13



‘열엿새 길’이 ‘3시간 길’로 뻥 뚫려


이중환이 1751년(영조27년)에 쓴 택리지는 우리나라 인문 지리서의 귀중한 고전이다. 이를 근거로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조선시대 영남대로 이야기가 시중에 나돈다. 바로 열나흘(14일), 보름(15일), 열엿새(16일) 길이다.


열나흘 길은 청도와 상주를 거쳐 험한 문경새재를 넘어야 한다. 보름 길은 울산을 거쳐 풍기와 죽령을 넘어 단양에서 배를 타고 가야 한다. 열엿새 길은 김해와 상주를 거쳐 구름도 쉬어 간다는 추풍령을 넘어야 하는 난코스를 꼽았다.


손수 발로 찾아다니면서 자연환경과 인간관계를 뛰어난 시문체로 쓴 종합 지리서인 <택리지>를 근거해 서울로 과거를 보러가는 선비들이 보름과 열엿새 길을 피해 다녔다는 것이다. 죽령을 넘으면 ‘쭉’ 미끄러지고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고 꺼렸다는 것이다. 반면 열나흘 길에는 문경새재가 있어 경사스런 일(慶)을 듣게 된다(聞)고 반겼다고 적고 있다.


높은 산과 산을 잇고 넓고 깊은 강을 뛰어넘어야 하는 난공사를 이겨내고 국토의 중부내륙 산간지역을 관통하는 대동맥이 뚫려 교통의 사각지대에서 벗어나게 된 강원 충청 경상도 지역에서는 저마다 침체된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킬 적극적인 대응전략을 마련하게 되는 기폭제가 되었다. 열엿새 길보다 멀고 험한 3시간 길인 중앙고속도로가 뚫린 것을 계기로 주변 주민들의 생활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1995년 당시의 중앙고속도로 춘천 인터체인지 입구이다. 지금과는 달리 매우 한적한 풍경이다.



철원까지 연장, 통일 대비해야


길이 훤히 뚫리고 차량이 한달음에 오고 갈 수 있어 지역 발전의 새로운 동력이 마련되었다고 만사가 형통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위기와 기회는 함께 따라오기 마련이다. 여태껏 겪어왔던 마이너와 이웃사이더로서의 설움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빨라진 속도만큼 잃어버린 주위 풍경을 되찾기 위한 세심한 노력을 계속 기울여나가야 한다. 그 맨 앞에 봄내골에서 멈춘 중앙고속도로를 화천을 거쳐 철원까지 총 63㎞ 연장시키는데 있음은 물론이다.


봄내골에서 끊긴 도로를 철원까지 개통한 이후에는 남북교류 활성화와 통일에 대비하는 거시적 차원의 사업이 시급히 모색되어야 할 시점이다. 민자로 닦은 서울춘천고속도로는 서울~양양 간 고속도로에 포함돼 봄내골이 교통의 흐름에서 비 켜 선 형국이 되어버렸다. 주민의 편익과 요구를 도외시한 시 설은 언제나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봄내골이 더 이상 고속도로 건설의 시험무대(Test Bed)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최적의 효용성을 담아내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