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에 적극 개입해 보호, 치료, 맞춤관리까지
몇 달 전까지도 아빠의 퇴근시간이 다가오면 민주(가명·중학생)의 가슴은 자동으로 쿵쾅거렸다. 술만 마시면 욕을 해대며 자신을 때리는 아빠. 너무 무섭고 두려웠다. 반복되는 폭력에 몸과 마음이 스러져갈 때 이웃이 경찰에 신고를 했다. 경찰과 함께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이 집으로 찾아왔다. 아빠와 민주를 상대로 대면조사가 이뤄졌고 민주는 학대후유증에 대한 심리치료를, 아빠는 20회의 부모교육을 받았다. 가족치료 프로그램에도 함께 참여해 관계 회복의 시간을 가졌다. 모든 일정이 끝나는 날, 아빠는 “사실 엄격하게 대할 때가 많았다. 아이의 좋은 점을 놓쳐온 것 같아 미안하다”며 힘들었을 딸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무섭기만 하던 아빠가 변하면서 민주의 표정은 밝아졌고 웃는 날도 많아졌다. 민주에게 아빠는 더 이상 무섭거나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그저 사랑을 주고받는 평범한 부녀지간일 뿐이다.
아동학대가 의심되면 즉시 신고해 주세요
강원도아동보호전문기관(관장 정동환)은 아이들이 학대에서 벗어나 정신적, 육체적으로 맑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돕는 곳이다. 학대상황에 적극 개입해 피해아동을 보호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치료해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한다. 신고가 접수되면 경찰과 함께 신속히 현장에 출동, 다각적인 조사를 벌인다. 상태가 심각하다고 판단되면 아이를 가해자로부터 즉시 분리하고 학대행위자는 사법절차를 거쳐 법적 처분도 받게 된다. 사안이 경미한 경우엔 다시는 학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맞춤사례관리를 하고 있다. 보다 정확하고 객관적인 사례판단을 위해 지역사회 내 의료, 법률, 교육 등 각 분야의 전문가와의 연계도 이뤄진다.
현재 우리나라엔 총 65개의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있다. 2000년 설립된 강원도아동보호전문기관은 춘천, 홍천, 화천, 양구, 철원지역을 관할한다. 춘천시의 경우 올해 1월부터 3월까지의 아동학대 신고접수는 54건. 한 달 평균 18건인 셈이다. 가족들의 방관 속에 덮어지거나 남의 가정사로 치부해 버리는 현실로 보면 실제 학대피해 어린이는 헤아리기 어려울 것이다.
사례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김보경 대리는 “실제 뉴스나 소설 속에서나 봄직한 사례도 많습니다. 학대는 대개 가정 내에서 보호자에 의해 가장 많이 이뤄지기 때문에 아이 스스로 고통을 감내하죠. 계속적으로 폭력을 당하게 되면 무기력해지고 두려워서 무조건 복종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멍하니 있거나 때론 공격적으로 변하기도 하죠. 이러한 후유증이 아이의 바른 성장에 큰 장애물이 될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초기 학대가 있을 때 빠른 조치가 이뤄지지 못하는 게 너무 안타까워요”라며 주변의 적극적인 신고를 당부했다.
어디까지가 아동학대인가요
프란시스코 페레의 일생을 다룬 책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는 그 제목만으로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동을 신체적, 정서적, 성적으로 학대하거나 돌보지 않고 방치하는 것’으로 정의되는 아동학대의 범위는 아주 포괄적이다. 적극적인 가해행위뿐만 아니라 단순체벌이나 훈육까지도 아동학대에 해당된다. 때려서라도 아이의 버릇을 고치겠다는 생각이나 훈육을 한답시고 자신의 스트레스를 푸는 일은 버려야한다.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이나 화풀이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폭력적인 말로 아동을 힘들게 하거나 아이의 나이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강요하는 것, 아이가 보는 앞에서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것, 다른 사람과 비교하거나 차별·편애·왕따 시키는 행위 또한 엄연한 정서학대다. 성학대는 직접적인 성폭력뿐만 아니라 성적 만족을 위해 아동을 관찰, 추행하거나 성적 노출을 하는 행위, 아동에게 음행을 시키거나 음행을 매개하는 행위를 포함한다. 겉으로 드러내놓기가 쉽지 않아 피해자 혼자 속앓이를 하는 경우가 많고 아주 일부만 아동보호기관에 신고 되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정동환 관장은 “어린이도 하나의 인격체입니다. 부모의 소유물이 아닌 거죠. 훈육과 양육의 대상이 아닌 권리의 주체로 보는 어른들의 인식 변화가 필요해요. 아이들이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어린이가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게 어른들의 책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했다.